탁구장의 온도

3월 19일, 가족도 서로를 손님처럼 대하면 (feat. 불편한 편의점)

by 조이홍

요즘 한창 운동하고 있는 탁구장에 젊은 사람들이 부쩍 탁구를 치러 온다.

아마도 탁구 예능 '올탁구나' 덕분이 아닌가 싶다.

미디어의 힘이 이래서 무섭다.

주로 40~50대 위주 회원들이 운동하던 탁구장이 한층 젊어지니 실내 온도가 달라졌다.

오미크론으로 결석하는 회원들이 늘어나 썰렁해진 탁구장을 젊음의 열정이 데워주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친구들끼리 오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가끔 휴가 나온 군인도 보인다.

남자 친구들끼리 오는 탁구대는 시끌벅적하다. 종종 개의 새끼나 소의 새끼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유쾌하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탁구 실력도 수준급이라 제법 팽팽한 경기를 펼친다.

가끔 화끈한 스매싱과 불꽃같은 드라이브를 선보여 스스로들 놀라기도 한다.

이들은 '승부'에 진심이다.

젊음의 열정은 탁구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다.


연인들끼리 탁구장을 찾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탁구를 치는 것인지 우아한 발레를 하는 것인지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한 쌍의 나비처럼 나풀나풀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건 이들의 미소다.

얼굴에 신(神)이 머물고 있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가 공을 엉망으로 주더라도 말이다.

이들은 애초에 탁구에 관심이 없다. 배드민턴이든 테니스 건 상관없을 듯하다.

관심은 오직 '연인'뿐이다.

젊음의 사랑은 탁구장에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


한 번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탁구장에 왔다. 흔치 않은 경우였다.

행동 하나하나, 대화 하나하나가 이들이 부부라고 말해주었다.

흡사 면허증 있는 남편이 아내에게 '운전 수업'을 가르쳐 주는 모양새였다.

처음에는 사내의 목소리가 컸다. "그것도 못 치냐!" 뭐 대충 이런 말이었다.

나중에는 아내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렇게 (불친절하게) 가르쳐 줄 거면서 왜 같이 탁구장에 오자고 했냐!"

뭐 대충 이런 말이었다.

싸우고 금방 나갈 것 같더니 끝까지 탁구 라켓을 놓지 않았다.

이들은 탁구장을 시베리아 벌판 한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오들오들 떨려 계속 운동하기 힘들었다.

이들도 한때는 한 쌍의 노랑나비처럼 나풀나풀거렸을 텐데 생각하니 그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내에게 탁구를 가르치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아내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불편한 편의점>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족이라도 손님처럼 대하면 서로에게 적당히 친절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관계는 어쩌면 '불'과 같아서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태워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가족들에게 평생 모질게 굴었네. 너무 후회가 돼. 이제 만나더라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질문에 대답하려 애썼다.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래서일까 무어라 말이 터지질 않았다. 내가 씁쓸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하자 그는 괜한 말을 했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컵라면 그릇과 함께 몸을 돌렸다.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불쑥 튀어나온 말에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손님한테…… 친절하게 하시던데…… 가족한테도……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그럼…… 될 겁니다."

"손님에게라……. 그렇군 여기서 접객을 더 배워야겠네."

곽 씨가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뒷모습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불숙 내뱉은 말이지만 그에게 답이 되었다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내게도 답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감히 손님이라도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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