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공모전 미당선작
여든한 번째 생신을 맞은 어머니께 온 가족이 마음을 담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각자의 삶에 스며있는 그녀의 흔적을 조금은 낯선 방식인 글로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해서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하는 몽글몽글한 감정의 질감을 왠지 글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단지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 어머니 생신 때 깜짝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낭독회를 개최하려고 했지요. 평생 자식, 손주들에게 베풀기만 하셨던 어머니께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대가족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여섯 명의 자식, 열세 명의 손주, 다섯 명의 증손주까지 모이면 부모님 댁은 마치 시골 오일장처럼 시끌벅적했으니까요.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런 멋진 생각을 해내다니 혼자서 무척이나 흐뭇했습니다.
애 엄마가 된 조카부터 중학생까지 모두 열한 명의 조카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취지와 방법을 설명하고 한 달여 기간을 정해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각자 엄마(저에게 누나)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글을 받아내는 임무까지 부여했습니다. 형식에는 제한을 두지 않지만, 가능하면 A4 한 장은 채워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이 되기 위해 각자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몫이자 어머니(할머니)와의 추억을 글쓰기라는 과정을 통해 되짚어 보기를 바랐습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소식을 접한 가족들에게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글을 쓰냐?'며 나이로 누르는 누나가 있는가 하면, 너무 좋은 취지라며 적극 참여를 약속한 누나도 있었습니다. 무관심으로 일관한 누나도 있었습니다. 삼촌 마음을 알아챈 조카들은 동참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는데 아무도 약속한 글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가족 대화방에 분노의 이모티콘을 마구마구 올렸습니다. 각자 핑곗거리를 한 뭉텅이씩 쏟아냈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습니다. '글쓰기 어렵다'였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났습니다. 누나들은 오랫동안 글 쓸 일이 없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아직 어린 조카들까지 어려움을 토로하니 큰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습니다. 대부분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쩔쩔매는 상황이었습니다. 책으로 만든다니까 글쓰기에 부담을 느껴서였을까? 걱정이 깊어갔습니다. 마침 그날 저녁 여덟째 조카에게서 첫 번째 글이 도착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조카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다 읽고 한참 컴퓨터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무척 아름답고 따뜻한 글이었지만, 마지막 부분이 압권이었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툭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할머니 이름을 소재로 할머니와의 추억에 생명을 불어넣은 조카가 무척이나 대견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했지만, 나는 한동안 그녀의 이름을 몰랐거나 까먹었었다. 오랜 시간 엄마이고 또 할머니였던 그녀의 이름은 장, 순, 자다. 그녀는 장순자다. 장순자의 만두이고, 장순자의 두부조림이며, 장순자의 호박 반지이고 장순자의 가족들이다. 그녀의 이름 석 자야말로, 어린아이였고, 소녀였으며 일찍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그녀의 전 생애를 포괄할 수 있는 공평한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과 그녀 자신이 그 이름을 더 기억하고 불러주었으면 한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그녀의 이름은 장순자입니다.”
여덟째 조카에게 연락했습니다. 칭찬도 칭찬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조카가 쓴 글을 다른 가족들이 읽어보면 좋을성싶었습니다. 다행히 조카도 허락했습니다. 글쓰기 어렵다는 이들에게 그 글은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확신했습니다. 일주일 후 하나둘씩 글이 도착했습니다. 조카의 글이 잠들어 있던 글쓰기 능력을 깨워주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글을 모으고 몇 번의 퇴고를 거쳤습니다. 책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는데 비문이나 오타는 바로잡아야 했으니까요. 퇴고하는 틈틈이 조카들과 연락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나 겨우 얼굴 한번 보는 조카들과 이렇게 자주 연락했던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어머니(할머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우리만의 새로운 이야기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원고는 완성했지만, 어머니 생신 때 깜짝 선물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강화되어 생신 맞이 가족 모임이 취소되었습니다. 명절 때도 대가족이라 한 대 모이기 힘들어, 어머니 여든한 번째 생신 때 조카들과 증손주들까지 모두 참석하기로 했는데 그만 모임이 취소되었습니다. 어차피 집안 행사이니까 조용히 진행하자고 말씀드렸지만, 나랏일이고 어린 손주들이 행여나 나쁜 질병에 걸리기라도 할까 봐 어머니는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늘 그렇듯이 어머니는 자기 자신보다 자식, 손주들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생신과 두 번의 명절을 건너뛰고 부모님과 자식들이 백신 접종을 완료할 때까지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올 설에 형제들끼리 순번을 정해 오랜만에 부모님 댁을 찾았습니다. 참 먼 길을 돌아갔습니다.
아내는 글쓰기 대신 그림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사실 매형들과 며느리의 참여는 자율에 맡겼습니다. 아마추어 화가인 아내는 책 표지와 삽화를 그려 주었습니다. 벌써 꼬박 스무 해를 함께 한 아내는 집안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명절 때나 심지어 어머니 생신 때도 자식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을 묵묵히 뒤에서 지켜보시는 당신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식탁>이라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열네 개의 의자가 있어야 하지만 항상 열세 개밖에 놓이지 않는, 어머니 자리가 없는 어머니의 식탁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도 <어머니의 식탁>으로 정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삶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알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조차도 60년을 함께 한 아내 마음을 다 알지 못할 테니까요. 우리는 각자에게 스며든 만큼만 어머니, 혹은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이미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보답할 차례입니다. 어머니는 당신 삶의 일부가 담긴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좋아하실까요? 그저 말없이 눈물을 훔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말씀하지 않아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까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에세이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똑 떨어진 미당선작을 소개합니다. 브런치에도 소개했던 글이지만 원래는 '가족 도서'를 만들려고 썼던 글입니다. 떨어지는 게 일이나 이제 좀 지칩니다. 분노의 칼날이 외부를 향해야 하지만 길을 잃어 또 내부를 향했습니다. 너무 찢고 헤져 성한 곳도 별로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또 써야겠죠. 쓰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