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내가 쓴 아포리즘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틈날 때마다 다시 보고 있다.
<칼의 노래>,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위대한 개츠비>, <화성 연대기>, <어린 왕자>, <변신>, <이방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등등을 부분 또는 전체 다시 읽었다.
어떤 책은 세부적인 내용까지 자세히 기억났지만, 어떤 책은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설었다.
아예 줄거리조차 떠오르지 않는 책도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면 그 책을 읽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대학생 때부터 책 면지에 읽기 시작한 날짜와 간단한 소회나 단상을 적었다.
때로 충동구매해 딱히 쓸 말이 없는 책에는 '언제나 그렇게'라는 문장을 써넣었다.
소회를 적을 때나 간단한 감상평을 적은 후에도 문장 맨 마지막에는 '언제나 그렇게'라고 썼다.
언제 처음 이 문장을 쓰기 시작했는지, 왜 쓰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스무 살, 모든 게 어설펐지만 그래서 찬란했던 시절에 어렴풋하게 깨달았던 삶의 가치들을 지키면서 살겠다는 객기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오늘 나는 스무 살의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비껴서 있을까?
어설펐지만 공정하고 정당하며 합리적이라 여겼던 딩시의 가치들은 여전히 나를 지탱해 주고 있을까?
혹여 너무 멀리 떨어져 그때의 나는 아예 보이지 않거나 까만 점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희미한 형체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스무 살의 나는 아직 거기에 있었다.
오늘의 내가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까만 털실 하나를 왼쪽 다리에 묶어 놓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까만 털실에는 이름표 하나가 붙어 있었다.
이름표에는 삐뚤빼뚤하지만 힘찬 필체로 '정의'라고 쓰여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오늘 새 책을 한 권 샀다.
면지에 '언제나 그렇게'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