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낡은 농구화에 깃든 피땀눈물
한창 운동화를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원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공짜 운동화가 마구 생겼다.
덕분에 신발장에 잘 신지 않는 운동화가 제법 많았다.
가깝게는 3~4년 된 운동화에서 멀게는 10년 전에 구입한 운동화였다.
한두 번 신은 거의 A급 운동화에서 1년 정도 신은 헌 운동화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 멀쩡해 그냥 버리기에는 왠지 아까웠다.
지난주 첫째 아이와 주말에 길거리 농구를 하기로 약속했다.
마침 신발장에 농구화도 두 족 있었다.
하나는 딱 한 번밖에 신지 않은 나이키 농구화였고,
다른 하나는 회사 농구 동아리에서 한창 신었던 10년도 넘은 리복 농구화였다.
나이키 농구화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가격은 둘째치고 정말 아끼고 아끼던 아이였다.
아침 일찍 농구하러 나서는데 첫째 아이기 덜컥 나이키 농구화를 신겠단다.
생일 선물로 받은 하얀 나이키 운동화도 첫째 아이에게 빼앗겨 기분이 별로였는데,
나이키 농구화까지 빼앗기기 싫었다.
첫째 아이에게 리복 농구화를 신으라고 했더니 '그건 아버지께 양보할게요!" 한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래, 모처럼 좋은 아빠 되기로 했으니 나이키 농구화까지만 허락하기로 했다.
주말 아침 일찍 찾은 농구장에는 아직 농거(바스켓맨)들이 나오지 않아 한산했다.
아이와 가볍게 야투 연습부터 했다.
오랜만에 던지는 농구공이 어찌나 무겁던지 자유투 라인에서 겨우 림에 닿았다.
자세는 조금 엉망이어도 아이는 성공률이 제법 높았다.
'그래, 내 주특기는 레이업 슛이었지!'
현란한 드리블과 함께 레이업을 성공시켰다.
아이도 '오~ 아빠!' 한다.
그런데 농구장 바닥에 낯선 물체가 보였다.
꼭 신발 밑창처럼 생겼다.
누가 농구하다 밑창이 빠졌나 싶었다. 발로 툭 차서 농구장 밖으로 걷어냈다.
학교에서 제법 농구 잘하는 학생으로 통한다는 아이와 1대 1 시합을 하기로 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레이업 슛으로 먼저 득점했다.
그런데 농구장 바닥에 낯선 물체가 다시 등장했다.
아까 걷어낸 신발 밑창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농구장 밖으로 걷어냈는데......
둘러보니 걷어낸 밑창은 그 자리에 얌전히 있었다.
그렇다! 이 녀석은 새로운 녀석이었다.
밑창이 하늘에서 떨어졌나 싶었다.
사태를 파악해 보니 사실 그 밑창들은 리복 농구화에서 떨어져 나온 잔재들이었다.
오랜 시간 신발장에서 잠들어 있다가 신선한 공기를 만나 깜짝 놀랐나 싶었다.
밑창(굽) 없어도 첫째 아이는 가볍게 이길 수 있어서 그대로 경기를 속개했다.
그런데 뛰면 뛸수록 리복 농구화에서 부품들이 하나둘씩 계속 떨어져 나갔다.
마치 조립식 장난감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
결국 밑바닥 없는 농구화를 신고 게임을 뛰었다.
경기 결과는 압승이었지만 아끼던 농구화를 잃었다.
정든 녀석을 떠나보낼 순간이었다.
낡은 농구화를 바라보니 괜스레 마음이 짠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찬란했던 30대를 함께 보낸 녀석이었다.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고대로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강력 접착제라도 사서 붙여볼까 했지만, 사실 떨어져 나간 요놈들 말고도 본체는 더 엉망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신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엉망이 된 농구화를 본 아내는 "새 농구화 하나 사!" 했다.
아내는 모른다. 이 낡은 농구화에 깃든 피땀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