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

4월 3일, 74주년 제주 4·3 추념식

by 조이홍

올해도 어김없이 4월 3일이 돌아왔다. 완연한 봄 햇살에 일찌감치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며 진달래며 목련이 아직 제 차례도 아닌데 물색없이 겨울잠에서 깨 화사한 얼굴을 내민 벚꽃을 시샘한다. 모든 정치·경제 이슈를 빨아들이는 연예인 스캔들이나 결혼 소식처럼 일단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도 상춘객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다. 벚꽃에 지지 않으려 개나리는 더 노랗게, 진달래는 더 붉게, 목련은 더 순백색으로 꽃을 피운다. 이들에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지녔는가는 곧 생존(번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혹하는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벌 또는 나비일 테지만, 그 덕분에 봄을 만끽하는 우리는 언제나 오감이 즐겁다. 싱그러운 봄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봄의 정취를 북돋우지만, 천혜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에게는 1년 중 가장 가슴 시린 날이 바로 4월 3일이다. '제주' 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절경, 가슴까지 시원한 에메랄드빛 바다, 원시림을 닮은 울창한 숲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지만, 이 날만은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좋을 성싶다. 아직 봄을 누릴 시간은 충분하기에.


74주년 제주 4·3 추념식이 '4·3의 숨비소리, 역사의 숨결로'라는 주제로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이번 주제에는 4·3 사건 희생자의 마지막 숨소리를 우리 역사에 깊이 간직하고, 나아가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뜻깊은 의미가 담겼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무려 3번이나 추념식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는 참석하지 않는 대신 SNS를 통해 "제주의 봄을 잊지 않겠다. 4·3 사건 해결을 위해 다음 정부에서도 노력이 이어지길 바란다."라고 속 깊은 마음을 전했다. 정부를 대표해서는 김부겸 총리가 참석했고 매우 이례적으로 윤석열 당선자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보수 정부 대통령 또는 당선자 신분으로 처음 4·3 추념식에 참석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상실을 수용하는 슬픔의 5단계가 줄곧 '부정과 분노' 사이를 서성거렸는데 이 뉴스 덕분에 '타협과 수용' 언저리를 웃돌았다. 지각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 정도야 가볍게 넘길 터였다. 다만 당선자가 강조한 "4·3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 유족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지겠다.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오늘 이 자리에서도 이어지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4·3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널리 퍼지도록 새 정부에서도 노력하겠다"라는 말들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쩌면 당선자가 말하는 국민이 내가 생각하는 국민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심어준 반가운 소식이었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단단히 지켜봐야 할 터이지만.


그러니까요…. 편의점에서 접객을 하며…
사람들과 친해진 것 같아요.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화제의 베스트셀러 김호연 장편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일부다. 작품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 격인 독고 씨가 어떻게 사람들과 잘 지내느냐는 인경(희곡 작가)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다고. 실제로 작품에서 독고 씨는 편의점을 오가는 손님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친절한 사람이 되었다. 국민이 정치인에게, 대중이 연예인에게, 팬덤이 스타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딱 이만큼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결코 그들에게 군자나 성인의 덕목을 바라지 않는다. 진심은 더더욱.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행사하는 이라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대중과 팬덤의 사랑을 받는 이라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게 정말 어렵다면 부디 그런 척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그런 척도 계속하다 보면 진짜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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