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내가 미쳐!

4월 10일, 2프로 부족한 아이의 어휘력

by 조이홍

루틴(routine) : 판에 박힌, 일상적인 일


운동하고 돌아오는데 숙제하던 둘째 아이가 뜬금없이 "아빠 루틴 죽었어?" 물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아빠 루틴을 걱정하지 싶었다. 내 루틴 딱히 별일 없는데.

"아빠 루틴은 갑자기 왜?" 물었더니 아이가 "왜, 있잖아. 러시아 대통령." 한다.

러시아 대통령? 순간 빵 터졌다. 웃느라 숨이 끊어질 뻔했다.

"루틴이 아니라 푸틴이잖아."

"아, 그래?"

2프로 부족한 둘째 아이 덕분에 정말 숨 쉬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운동하러 다녀온 사이에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졌나 찾아보니 푸틴이 극우 정치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뉴스 기사가 나왔다. (사실 이 기사의 핵심은 체게트라 불리는 핵가방이었다)

공부하면서 몰래 '세상 돌아가는 일'을 검색하던 아이가 이 기사를 잘못 본 모양이었다.

아빠 루틴도 푸틴도 멀쩡했다.

디지털 다이어트가 시급한 둘째 아이는 가끔 이렇게 기상천외한 어휘력으로 아내와 나를 웃프게 만들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국어 독해 문제를 풀 때였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서 OO을 크게 무찔렀다"

OO에 들어갈 알맞은 말에 아이는 당당하게 '아군'이라고 적었다.

너무 어이없어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이순신 장군이 아군을 섬멸하면 적군과는 누가 싸우냐고!

그토록 책(만화책 포함)을 많이 읽으면서 이 어휘력을 어쩌나 싶었다.

그동안 읽어 주었던 4천여 권의 그림책은 또 어떡하고!


역대급은 역시 이 문제였다.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곤충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 )."

독자들도 이 문제에 답을 맞혀 보길 바란다.

과학 문제임을 전제로 괄호에 들어갈 적당한 말은 무엇일까?

정답은 '머리, 가슴, 배'였다.

둘째 아이는 뭐라고 썼을까?

'죽는다'였다.

아이고, 머리야!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곤충의 일반적인 특징을 묻는 과학 문제에 '죽는다'라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토요일 늦은 밤까지 아이와 국어 독해력 문제, 수학 문제를 함께 풀었다.

밀린 숙제를 하지 않으면 '주말 게임권'은 모두 반납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에

아이는 아빠를 선생님으로 모셨다.

아이가 푼 문제를 채점하는데 정말………………………………………………!

이제야 알겠다. 왜 수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지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모든 부모의 마음에는 부처님(하나님)이 머물고 계시다는 걸!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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