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8주기에 즈음해

4월 16일, 별이 된 아이들을 추모하며.

by 조이홍

살면서 만나게 되는 죽음은 늘 내 것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무언가였기에 적당히 아리고 적당히 슬펐다. 딱 한 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제외하고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접하는 수없이 많은 죽음은 이보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더 멀리 있었다. 카메라 앵글 안에서는 전자의 배열에 불과하지만, 그 너머 현실에는 존재의 절멸, 한 우주의 종말이 처참하게 나뒹굴 터였다. 그런 비극을 마치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팝콘을 먹으며 관람하는 관객처럼 담담하게 대했다. 때로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게 가슴을 울렸지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얼마나 공감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죽음을 목도하니 슬퍼해야 할 타이밍을 자꾸만 놓쳤다. 죽음이 점점 일상화되자 감정도 조금씩 옅어졌다.


타인의 죽음이 내 것인 양 고통스럽고 아팠던 순간이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마침 맡고 있는 브랜드가 2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더랬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수십 억 비용이 투입되는 제법 큰 프로젝트였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덩달아 내 삶에 중요한 무언가가 육체에서 빠져나와 깊은 바다로 가라앉은 듯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충격과 슬픔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애도를 위해 프로젝트도 멈추었다.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국민은 국민이라서 모두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


처음부터 절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지만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리라는 희망적인 뉴스에 안도했다. 안심했다. 희망이 절망으로, 안도의 한숨이 애끓는 탄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조되어야 할 생명들이 욕심을 가득 실은 배와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하하호호 웃으며, 친구들과 장난치며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닐어야 했을 어여쁜 청춘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담긴 영상을 보지 않았다. 아이 둘을 키우는 부모로서 그 아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을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부모의 마음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가진 경험으로는 그들의 간절함에 닿지 못했다. 그들의 소망에, 애끓는 외침에 답해야 할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가는 무능함을 드러냈고, 그 순간에도 세월호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구조할 수 있었고, 구조해야만 했으며, 구조할 시간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실도 깊은 바다로 함께 침몰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흘러 벌써 8년이 지났다.


세월호 8주기.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던 그 사건 이후 자주 삶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다시 되짚어 보았다. 부모란,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더 많이 고민했다. 8년이 지나자 각오도 다짐도 조금씩 퇴색했다. 어느새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갔고 잔소리하는 아빠가 되어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다짐했지만 솔직히 자주 잊었다. 그래도 4월 16일 하루만큼은 별이 된 아이들을 떠올렸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이 아니라 내게 일어난 일처럼 아파했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4월 16일이 돌아오겠지만 그때는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다. 남겨진 이들과 유가족이 그랬으면 좋겠다.


세월호 사건이 더 이상 정쟁의 빌미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잎을 무참히 짓밟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그 생채기를 송곳으로 후벼 파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깊은 바닷속에 침몰해 있는 진실을 하루빨리 밝혀냈으면 좋겠다. 이미 너무 늦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는 헌법 전문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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