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흩날리는 벚꽃 잎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더라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벚꽃 연금'이라 불리며 장범준에게 매해 10억(?)씩 저작료를 안겨준다는 '벚꽃 엔딩'은 봄이면 가장 많이 들려오는 노래다. 개성 있는 목소리가 멜로디와 찰떡궁합이라 이 노래를 참 좋아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가 꽃비처럼 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는데 낭만적이기는커녕 왠지 서글펐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봄의 눈물처럼 보였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세강필약(勢强必弱)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다. 전자가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고, 세력이 강성하면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이다'라는 뜻이라면, 후자는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의미이다. 텃밭에 이르는 '침묵의 계단'을 오르다 두 고사성어가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T.S.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도 함께 떠올랐다.
'물극필반'이라는 말은 <당서>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 여성으로 유일하게 황제가 되었던 측천무후와 연관 있다. 측천무후는 원래 당태종의 후궁이었다 고종의 황후가 되었다. 고종 사후 어린 나이로 중종이 즉위하자 측천무후가 섭정했다. 세월이 흘러 중종이 친정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섭정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하자 한 대신이 상소를 올렸다. "무후께서 아직까지 섭정의 자리에 계시지만,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 차면 넘친다는 이치를 아셔야 합니다." 물론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훗날 중종과 예종을 폐위한 후 스스로 나라를 세워 주(周)라 칭하고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시기만 조금 늦추어졌을 뿐 중국 최초 여황제라는 달도 차니 기울었다.
'화무십일홍'은 남송 시인 양만리가 지은 '납전월계(臘前月季)'라는 시에서 유래하였다. 시는 월계화가 가진 생명력을 찬미하는 내용이지만, 화무십일홍은 대개 '젊음은 한 때'라거나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하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소설이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냉혹하고 비열한 정치 세계에서도 흔히 인용하는 고사성어다.
지난주 텃밭에 오를 때만 해도 개나리며 목련이 꽃망울을 활짝 피었다. 봄 정취에 취해 중간에 마련된 벤치에서 한참이나 봄꽃을 구경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다시 계단을 오르다 그새 변한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노랗고 하얀 꽃들이 벌써 대부분 지고 사라졌다. 새하얀 솜털 같던 목련도 자취를 감추고 그나마 남은 꽃들은 생기를 잃었다. 단지 내에 팝콘처럼 터진 벚꽃 잎들도 벌써 꽃비로 내려 대부분 가지들만 앙상했으니 먼저 나온 꽃들이 온전할 리 없었다. 단 한 차례도 읽어본 적 없이 주구장창 인용만 했던 T.S.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로 시작하는 장시 <황무지> 내용이 처음으로 궁금했다. 아마도 엘리엇은 봄꽃이 피고 지는 장면을 애잔하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시인의 눈에 아름답고 생기발랄한 꽃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쇠락하는 계절이, 4월이 잔인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온통 꽃으로 뒤덮인 세상이 어떻게 불과 일주일 사이에 이토록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을까! 4월이라는 설레임도 잠시뿐이니 참 잔인하지 않은가!
5월이면 한 시대가 막을 내린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이었다. 많은 국민이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클 터였다. 정치의 속성이 원래 그런가 보다. 참 어렵다.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지만 잘했다, 수고했다 손뼉 치며 보내드리고 싶다. 손톱달이 서서히 보름달이 되고 다시 손톱달이 되지 않던가. 다음에는 더 크고 둥근 보름달을 맞이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