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지구 사랑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2035년 오슬로기후재앙협정
2060년 서울기후협약
아들, 이 목록들 보이지? 아버지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어쩌면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구나. 솔직히 입이 열 개라도 아버지는 할 말이 없어. 그래도 꼭 한 번 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단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고, 또 떠난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가, 그리고 우리 별이 어떻게 다시 숨 쉴 수 있게 되었는지 말이야. 일부 음모론자들이 결과만 놓고 주장하는 것처럼 앞선 세대를 소비와 향락에 눈먼 악마로 묘사하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단다. 그들이 노력했다는 증거와 연구 성과는 수없이 많으니까. 때로는 공허한 염불에 그칠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들도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고 믿는단다. 다만 너무 늦게 철든 게 문제였지. 너도 알다시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잖아. 솔직히 처음 몇 번은 구호만 요란할 뿐 실속 하나 없었어. 당시로서는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의 지구나 얼굴도 모르는 후세를 위해 경제적 이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포기할 사람들이 많지 않았거든. 태생적으로 이윤 추구가 존재 목적인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었지. 착한 소비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었어. 마치 화성이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제2의 지구가 될 것이라는 어느 배짱 두둑했던 기업가의 말처럼 말이야. 그럴싸한 미사여구와 숫자놀음으로 사람들의 판단을 흐트러뜨리고 착한 소비가 유일한 정답인 양 부추기며 결국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토해내게 했지.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실행에 옮기기에 적합한 황금 시간에 눈을 질끈 감고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도록 만든 셈이지.”
그렇게 어물쩍거리다 마침내 그날과 맞닥뜨리게 된 거야. 그래, 파멸의 주간. 몇몇 급진적인 기후과학자들이 목이 터지도록 경고했던 일들이 마치 초원에서 다 썩어빠진 동물의 사체를 발견한 하이에나 떼처럼 한꺼번에 달려들었어.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강하게. 기후과학자들이 경고했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도달한 거야. 어떤 현상이 처음에는 천천히 진행되다가 돌연 급격하게 변화하는 임계점을 의미하는데 그게 한꺼번에 들이닥친 거야. 순식간에 바닷물이 불어나 해안에 인접한 도시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어. 사람들이 대피할 틈도 없었지. 아마 그 지역에 살던 가엾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깊은 바다 저 아래로 가라앉았을 거야. 비극의 서막이었지. 그나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형편이 괜찮은 편에 속했어. 가까운 이웃 나라는 면적의 50% 이상 잠겨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지. 그날을 시작으로 극지방은 점점 더워졌고 적도지방은 점점 추워졌어. 온도가 오른 만큼 더하고 내려간 만큼 빼면 결국 총합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지구가 아니었어. 어떻게든 유지해오던 균형점이 일시에 무너졌다고나 할까? 아무튼 기후 체계가 온통 뒤죽박죽 되어버렸지. 거의 동시에 곪았던 상처가 썩은 고름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곳곳에서 알 수 없는 악취가 진동했어. 그뿐인 줄 알아? 1년 동안 산불이 꺼지지 않는 지역, 1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 점점 늘어났어. 지진과 태풍은 매번 자신의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혔지. 정말 끔찍한 날들의 연속이었어.”
그렇게 2035년을 맞이했어. 그때까지 붕괴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정부가 운영되는 나라의 대표들이 눈이 사라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모였어. 항공 시스템의 붕괴로 우리나라 대표단은 몇 주나 걸리는 배를 타고 이동했지. 그때 아버지도 기후학자로서 대표단에 합류했지. 회의가 열린 노벨 평화 센터 대회의장 분위기는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긴장감이 가득해 숨쉬기조차 힘들었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공허한 말을 내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너무 뜨거워진 지구를 식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거든. 지구 공학자들이 전면에 나서 회의를 주도했어. 여전히 국제 사회에 강한 입김을 불어넣던 몇몇 국가들이 대놓고 그들을 지원했거든.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부를 축적한 국가들은 지구가 뜨거워지는 걸 방관만 할 수 없었어. 그랬다가는 오랫동안 누려온 자신들 자리까지 위태로울 게 분명했으니까.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지. 아무튼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미치광이 과학자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그들이 몇 가지 흥미로운 해법을 제시했고, 국제 사회의 합의를 요구했어. 대기권에 무수히 많은 태양광 반사경을 설치해 태양으로부터 오는 열에너지를 조절하거나 인공구름을 만들어 지구로 유입되는 햇빛을 막는 방식이었어. 그들은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성공했던 사례와 출처가 불분명한 데이터를 들이밀며 기술의 안정성과 높은 성공 가능성을 주장했지. 그 방법들은 아버지가 보기에도 무척 기발했지만, 전 지구를 대상으로 시도하기에는 상당한 위험이 뒤따랐어. 게다가 일부 개발도상국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예산도 필요했지. 지구 공학자들의 의견을 추종했던 몇몇 국가들은 자기들만이라도 밀어붙이겠다고 억지를 부렸어. 하지만 땅에는 국경이 있어도 하늘에 국경이란 없는 법이잖아. 한 국가의 기후를 임의로 조절했을 때 이웃 국가에 미칠 영향을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지. 각국 대표들의 갑론을박이 이틀이나 계속되었어. 지구로부터 그토록 호된 경고를 들었건만 모두 자신들 입장만 고수하고 조금도 손해 보려고 하지 않았어. 우리나라가 발의한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과 화석 연료 사용 잠정 중단 계획은 아예 논의조차 하지 못했어. 지금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초일류 기업이 된 한 중소기업의 고효율 배터리 저장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법 설득력 있는 계획이었는데 말이야. 결국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어질러진 속은 텅 비고 포장지만 예쁜 선물 꾸러미처럼 의미 없는 단어들만 가득한 오슬로 선언문이 채택되었어. 우리에게 주어진 최후의 기회마저 허무하게 눈앞에서 날아가 버렸어.”
기후 관련 마지막 국제회의가 열린 건 2060년이었어. 회의는 우리나라에서 열렸는데 참가한 나라는 고작 10개 국가밖에 되지 않았어. 대다수 국가는 시스템이 붕괴하고 폭동이 일어나 무정부 상태가 돼버렸거든. 그때 모인 10개 국가가 세계 정부의 토대가 되었지. 2059년은 역사적으로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어. 기후 위기 논의가 가장 활발했던 2020년에 비해 평균 기온이 무려 5도나 올라갔거든. 결국 당시 정부 간 기후협의체에서 발표한 여섯 개의 시나리오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 현실이 되어버렸지. 바다가 육지의 50%를 덮어버렸고 인구도 3분의 1만 겨우 살아남았어. 위대한 인류가 쌓아 올린 바벨탑이 결국 스스로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어. 그런데 그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아니? 지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어. 2060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가 조금씩 줄어들었어. 그럴 수밖에 없었지. 이제 인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어떤 화석 연료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지구 환경복원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세계 정부가 다음 해 출범했어. 세계 헌법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법적 권리를 가진다는 지구 법학에 기초했어. 드디어 인간은 두 가지를 깨닫게 되었지. 지구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삶의 터전이며 그 안에서 모든 생명체는 평등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이산화탄소가 줄어든다고는 해도 워낙 많은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켜켜이 쌓여 적어도 대가속이 시작된 20세기 말 상태로 돌아가려면 수십 년이 걸릴지 수백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데. 아들아, 근데 그거 알아?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전쟁이나 핵폭탄이 인류를 멸망시킬 거라고 걱정했었데. 결국 인류를 재앙으로 이끈 건 멈추지 못한 풍요 때문이었는데 말이야. 삶이란 때론 어찌 이리도 모순적인지 가끔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기도 하고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단다. 네가 있는 곳에서 이 모든 걸 지켜봤다면 너라도 그럴걸. 아들아, 아버지에게 남은 마지막 꿈이 뭔지 아니? 우리 아들한테 다시 '눈'을 보여주는 거야.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눈 말고 하늘에서 내리는 차갑고 예쁜 결정 말이야. 아버지가 어릴 때만 해도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면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모른단다.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데도 온종일 밖에서 뛰어놀았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게 아버지가 우리 아들한테, 그리고 새로운 지구를 만들어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앞으로 아주 바쁠 것 같아. 한동안 만나러 오지 못해도 이해해 줄 거지? 그 대신 오늘은 밤새도록 우리 아들과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함께 있을게. 아들아, 이렇게 보고 있어도 아버지는 네가 너무 보고 싶구나. 너무도….”
어느새 소리 없이 밤이 다가왔다. 덩그러니 혼자 뜬 달이 은은한 빛을 뿌려 흐느끼는 태준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지구의 날은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주장에 의해 제정됐다. 1970년 4월 22일 미국 위스콘신주의 게이로드 넬슨 상원 의원이 196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해상 원유 유출사고를 언급하며 지구의 날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하버드생 데니스 헤이즈가 주도해 첫 행사가 열렸다. 지구의 날 선언문은 인간이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로 인해 자연과 조화롭게 살던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시민의 생활 문화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지구의 날은 1990년대에 이르러 전 세계적인 환경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해 2009년부터 매년 '지구의 날'을 맞아 일주일간 기후변화주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기후변화주간 주제는 '지구를 위한 실천 : 바로 지금, 나부터!'로 2050년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개인부터 탄소중립 실천에 참여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임기 막바지에 이른 우리의 문대통께서도 지구를 위해 금강송을 한 그루 심으셨다. 그리고 SNS를 통해 "우리는 저녁 8시, 10분의 소등으로 함께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잠시 우리의 특별한 행성, 지구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중략) 우리의 지구 사랑,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도 오늘 금강송 한 그루를 지구에 투자하겠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히셨다. 왠지 나도 지구의 날을 맞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예전 '한뼘소설'로 썼던 '아버지의 속담 수업'을 원고지 60매 분량의 단편소설로 다시 쓰고 있었다. 제목도 '아버지의 기후 수업'으로 바꿨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어떤 미래가 올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내용이다. 그중 세부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요약해 소개한다. 부디 이 글에서 등장하는 암울한 미래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 환경부 홈페이지, 환경부X귀찮, 이미지 사용 문제가 되면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