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소원

4월 30일, 주말의 횡설수설

by 조이홍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김구 백범일지 中)


어린 시절 내게도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내가 나라는 걸 인지한 직후부터 줄곧 지녔던 것 같다. 가끔 두 번째 소원과 세 번째 소원이 바뀌기는 했어도 세 가지 소원 자체는 변함없었다. 한 번은 혹여 까먹을까 싶어서 누나가 남자 친구한테 선물 받은 핑크색 다이어리를 달라고 졸라 그곳에 연필로 꾹꾹 눌러써놓기까지 했다. 설마 진짜 그렇게 했겠어,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 약간의 보충 설명을 하자면, 나란 사람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30대 중반까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Top 5나 좋아하는 고전 Top 3을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는 '프랭클린 플래너'에 적어두고 수시로 업데이트했다(나만 그런가, 누구나 이런 리스트 몇 개쯤 적어 다니지 않는가?). 아무튼 누군가 내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그것도 세 가지나, 한 적 없었고 누가 봐도 악당처럼 생긴 아저씨가 사막 한가운데 있는 마법의 동굴에서 누가 봐도 '마법 램프'처럼 생긴 램프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 일도 없었는데 언젠가 반드시 소원을 이루리라는 결기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소원을 꺼내 하나씩 하나씩 되새겨보기도 하면서.


지천명을 향해 질주하는 요즘, 핑크색 다이어리는 잃어버렸지만, 세 가지 소원은 여전히 머릿속 후미진 곳을 배회하고 있었나 보다. 며칠 전 일도 깜빡깜빡하면서 어떻게 수십 년도 넘은 기억의 편린이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오늘 불현듯 떠올랐을까? 착하게 산 사람들에게 '신이 다가오는 순간'이 있고, 이번에는 내 차례라도 되었단 말인가. 사실 국민학교 6학년 이후로 더는 소원을 빌지 않았으니 그다지 아쉬울 것도 없었지만 들어주면 나쁠 거야 없었다. 굽신굽신. 감사할 따름 입죠. 듣고 계시죠? 그런 이유로 뜬금없이 머릿속을 강타한 어린 시절 세 가지 소원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아마 70~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싶다. 서로 비교해 보는 재미도 솔솔 하지 않을까?


첫 번째 소원은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간절히 바란 것은 '불멸'이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말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모두 유한하다는 것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깨달은 이후 언제나 내 관심사는 죽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슈퍼맨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언젠가는 길바닥에 나뒹구는 돌멩이가 부럽기도 했다. 어린아이 눈에 돌멩이는 적어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죽음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만큼 죽지 않는 방법도 불가능하리라 믿지 않았다. 게다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일 터, 눈 딱 감고 나 하나쯤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주는 건 귀찮을지언정 행하지 못할 기적은 아니지 싶었다.


두 번째 소원은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체 없이 막연한 공포였던 핵전쟁은 영화 <터미네이터 1>에서 핵폭발로 도시 전체가 불타는 장면을 본 이후로 어린 내게 실체적인 두려움이 되었다. 괜한 걱정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는 핵무기로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냉전 시대였다.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팽배했다. 물론 매일 밤마다 핵전쟁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아주 실질적인 공포로, 영화 장면처럼, 어린 나를 덮쳤다. 무방비 상태로 저항도 하지 못하는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은 싫었다. 신께서 자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인간이 그런 가혹한 일을 당하게 내버려 둘 거라 믿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소원은 이기적이라 들어주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유익한 두 번째 소원만큼은 들어주길 바랐다.


세 번째 소원은 이 세상이, 이 우주가 영원히 존재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소원과 두 번째 소원이 개인적인 차원이라면 마지막 소원은 대승적 차원이랄까. 어린 내가 왜 태양도, 우주도 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존재에는 시작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끝이 있으리라 여겼을지 모르겠다. 과학 기술이 발전해 태양도 유한하다는 게 밝혀졌고, 태양의 수명이 다하려면 아직 까마득하게 남아있어, 나란 존재나 내 후세들, 어쩌면 인류라는 종이 태양이나 우주의 마지막을 지켜볼 확률은 굉장히 낮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이, 우주가 절대 고독 속에서라도 계속 있어주기를 바랐다(공간 낭비는 좀 되더라도). 성인이 된 이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아, 이런 방법이 있었네'라며 한숨 돌린 게, 우주 종말 시점에는 인류의 과학 기술 역시 이미 신의 영역에 도달해 자유자재로 '시간 여행'이 가능해져 종말 직전에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의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우주 종말 관광 상품'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부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오로지 절대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왕 잘 만드신 거 고장 나면 고쳐 쓰고 다시 쓰고 아껴 써서 오래오래 사용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분이 "너무 심심한데, 그래 세상은 좀 시끌벅쩍해야 맛이지." 하면서 유전자 수프에서 생명체 하나를 탄생시킬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럼 언젠가 내가 세상에 다시 짠 하고 등장하지 않을까. (그럼 지금의 나는 몇 번째 나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 즐겁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이 세 가지 소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내내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한 주도 빠지지 않았다. 예배 시간에 기도를 드릴 때마다 거의 빠뜨리지 않고 세 가지 소원을 빌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신의 응답을 들었다. 신께서는 첫 번째는 너무 이기적인 소원이라 안 되고 세 번째는 스케일이 너무 커 손이 많이 가 어렵다고 하셨다. 우주를 만들긴 했는데 너무 커져 통제 영역 밖에 있다고. 하지만 어린양의 정성이 갸륵해 두 번째 소원만은 꼭 들어주시겠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몇 번의 심각한 고비에도 불구하고 지구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당시 나와 같은 소원을 빈 어린양이 무려 57,893,456명이 넘었다니 나는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 대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핵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신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만약 신께서 내게 '세 가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면 이번에는 무엇을 바랄까? 쩨쩨하게 세 가지 말고 한 열 가지 정도로 늘려 달라고 할까? 소소하게 다음 주 로또 번호 여섯 개를 알려 달라고 할까? 맞다, 이기적인 소원은 들어주시지 않지! 그렇다면 순박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남북 평화통일'이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빌어 볼까?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인종 차별, 난민 문제 해결도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몇 가지를 추슬러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소원들은 굳이 절대자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 인간들이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니었던가? 일단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해결해 놓고, 절대자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들을 적어봐야 하지 않겠냐고. 어쩌면 어떤 문제들에 있어서 램프의 요정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신은 할 일이 너무 많으시고 바쁘실 테니 인간한테 약하게나마 자신의 '전능(power)'을 나누어 주셨다. 때로 사람들은 그 힘을 정의나 선(善), 또는 희생이라고 불렀다. 뭐라 부르건 그 힘을 발현하는 건 우리 몫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만, 때론 작은 힘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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