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비밀아지트 판포포구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by 조이홍

<우리만의 비밀 아지트 판포포구>


연간 천오백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제주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다. 회사 다닐 때는 출장을 포함 해 일 년에 5~6회 정도는 다녀 갈 정도로 제주를 자주 찾았다. 담당하고 있던 브랜드의 신제품 출시 행사를 제주에서 진행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2주 간 머물렀다. 프로그램 중에 제주 주요 관광지를 고객들과 함께 관광하는 것도 있어 다양한 곳을 사전 답사하기도 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기는 하지만 그때부터 제주도는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판포포구는 생전 처음 들어 보았다. 내 자부심에 살짝 금이 갔다. 더군다나 이렇게 아름답고 아이들과 해수욕하기에도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을 모르고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판포포구는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곳이라면 제주 아주 구석진 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때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했던 협재 해수욕장에서 차로 불과 15분 거리에 있었다. 백 번도 더 지나갔을 이국적인 풍경이 아름다운 해안가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판포포구는 한경면 판포리에 있는 작은 포구이다. 에메랄드 빛과 짙은 파란색이 뒤섞인 바다가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곳이다. 나만 몰랐지 이미 스노클링 장소로 입소문이 나있는 곳이다. 무늬오징어가 잡히는 포인트로도 유명해 낚시군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은 되어 있지 않아 (제주도의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조금은 여유롭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아직 샤워장, 탈의실은 갖추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앞의 카페나 음식점에서 유료로 이용할 수 있어 불편함은 없다. 우리는 집에서 이미 수영복과 슈트를 챙겨 입고 갔기 때문에 탈의실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언제든지 바다로 입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차공간이 충분하지 않고 도록 폭이 좁아 차를 댈 곳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다행히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주차할 곳이 좀 있었다. 주차할 곳이 적다는 것은 아직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곳이라는 것의 반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도 머지않아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더 많은 건물이 세워지고, 더 편리하지만 그만큼 복잡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일단 그전까지 우리만 아는 비밀 아지트로 소문내지 않고 실컷 즐기기로 했다.


판포포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제주 한달살이를 위해 미리 사두었던 ‘모두의 제주’(제주여행연구소 지음)에 스노클링 천국으로 소개된 사진을 통해서였다. 사진이 잘 나온 탓인지 탄성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정말 이런 곳이 제주에 있을까 싶었다. 마침내 판포포구에 도착해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직접 보니 오히려 사진은 실제 아름다움을 다 담고 있지 못했다. 판포포구의 풍광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고요하며 평화로워 보였다. 날씨도 한 몫 했다. 포구 입구에서는 구명조끼나 튜브, 스노클링 장비들을 판매, 대여해 주고 있었다. 평균 수심이 2m 정도 되기 때문에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물론 안전요원이 상주하고 있어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잔잔한 물결과 투명한 바닷물 덕분에 바닷속 풍경이 또렷하게 잘 보였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어 조금 아쉬웠다.

판포포구_1.jpg


아내와 준, 큐 형제의 수영실력은 수준급이다. 유아 때부터 수영을 배워 지금도 방과 후 매일 수영장에 간다. 아내가 수영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물론 수영 선수로 훈련시킨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위한 취미활동으로 꾸준히 하고 있을 뿐이다. 체형 상 수영이 맞지 않는 나만 초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랑 수영은 정말 맞지 않는다. 준, 큐 형제가 구명조끼나 튜브도 착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영을 하고 있으면 엄마 한 두 명은 다가와 꼭 말을 걸어온다. 아이들이 수영을 배웠는지, 언제부터 배웠는지 등을 물어본다. 그럴 때면 아내의 어깨가 우쭐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시선을 한번 던진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가르친 것이 얼마나 잘한 것인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나도 반대한 적은 없는데 말이다.) 물 안에서 준, 큐 형제는 물 만난 고기처럼 날아다닌다. 집에서 챙겨간 핀(오리발)까지 착용하니 마치 날아다니는 것 같다. 준은 나와 다이빙을 하고 큐는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내내 물속을 탐구하며 놀았다. 형제는 노는 방식도 많이 다르다. 스타트 폼이 좋은 준은 다양한 자세로 입수를 하며 수영 실력을 뽐냈다. 주위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눈치다. 나도 다이빙은 자신이 있어 서로 누구 폼이 멋진지 한동안 실랑이를 했다. 스노클링 하느라 바닷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큐가 갑자기 물 밖으로 나와 공중 앞돌기 입수 한 번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역시 몸으로 하는 것은 큐를 따를 자가 없었다.

판포포구_2.jpg
판포포구_3.jpg


판포포구의 매력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서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해넘이 광경이 정말 예쁘다. 해 질 녘이면 수평선 너머로 아직 잠들고 싶지 않은 해님이 마지막 힘을 다해 풀어놓은 붉은색 물감이 하늘바다를 물들인다. 그럼 여기가 지구가 맞는지, 내가 사는 곳이 맞는지 잘 모를 만큼 몽환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한라산 소주 한 잔에 누구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풍광이지만, 현실은 허기진 배를 채워줄 핫도그가 쥐어져 있었다. 행복한 순간이다. 정말 판포포구만큼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알려지더라도 최대한 늦게 알려지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자꾸 나를 물들이는 날이었다.

판포포구_4.jpg
판포포구_5.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