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케이크 사건의 전말

한뼘소설

by 조이홍

"정말 할 거야, 제롬?"

"두 말하면 잔소리지. 이런 민망한 차림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못할 것도 없지. 넌 다치면 안 되니까 여기에서 그만 돌아가도록 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 여성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친절한 법이니까. 박물관 경비원들이 날 모나리자 앞까지 데려다 줄 거야. 그러니 어서 돌아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잖아. 오히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미술 작품을 훼손하려 했다고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그건 보다 많은 사람과 기후 위기를 공감하려는 우리 단체의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잖아."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쥴리아. 시간이 느긋하다면 나도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진 않았을 거야. 너도 5월의 파리 날씨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잘 알잖아. 상쾌한 날씨를 즐기며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도 얼마나 행복했다고. 하지만 그건 지난해가 마지막이었는지도 몰라. 올해 5월은 지난 해 보다 5도나 올라갔어. 인도나 스페인의 몇몇 해안 도시들은 이곳보다 훨씬 심각하고. 이제 정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정부나 기업들은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만 보일 뿐이잖아. 눈앞에서 수십 만 명이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이 방법이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게다가 난 그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싶을 뿐이야. 총으로도 깨지지 않는 방탄유리에 둘러 싸인 모나리자를 내가 무슨 수로 망가뜨리겠어."

"좋아. 그럼 나도 함께 할게. 그 편이 자연스러울 테니까."

휠체어를 미는 쥴리아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을 느꼈는지 제롬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덮었다. 앞으로 두 사람에게 몇 가지 곤란한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을 포함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크나큰 변화가 생기리라는 사실 또한 너무나 명확했다. 누군가는 풍요의 바다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굶주림과 질병의 연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터였다. 중요한 건 이번에 맞이할 시련은 남녀노소도, 부자나라나 가난한 나라도 구분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수많은 인파를 헤집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의 초상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끝>

모나리자 (2).JPG




2013년 파리에 출장 갔을 때 간신히 짬을 내 루브르 박문관에 들렀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 중 하나인 루브르를 둘러보려면 사나흘은 족히 걸린다고 들었더랬다. 그런 장소를 반나절 만에 둘러보아야 했다. 모든 작품을 보리라는 야무진 꿈은 꾸지 않았다. 딱히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기에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사전 정보도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그곳에 가면 '모나리자'가 있다. 당연히 그녀를 만나기 위해 제일 먼저 달려갔다. 기분 탓일까, 사람들도 모두 한 점을 향해 질주하는 듯했다. 슬픈 예감은 꼭 적중했다. 가로 53cm, 세로 77cm의 비교적 작은 여인의 초상화 앞은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거 보려고 한국에서 왔다고요!" 거짓말할 수도 없었다. 대부분 외국 관광객이 아니던가! 군중을 헤집고 들어가 작품 앞에 설 배짱도 없었다. 멀찌감치 서서 '저게 분명 모나리자겠지!' 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에 문외한이라서기보다 너무 멀어서 어떤 감흥도 전해지지 않았다. 두꺼운 유리도 작품 감상 방해에 한몫했다. 그저 '나도 모나리자 봤다!' 정도일 뿐. (속으로는 저게 도대체 왜 유명한 거지 했을 지도….)


며칠 전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다. 휠체어를 타고 여성으로 위장한 한 남성이 모나리자를 보호하고 있는 방탄유리를 깨려다 실패하자 그 유리에 케이크 생크림을 잔뜩 발라버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여인의 초상화에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분노가 앞섰다. 그러다 기사 중간에 그 미친 청년이 “누군가가 지구를 파괴하려 한다. 지구를 생각하라”라고 외쳤다는 대목을 읽었다. 그 순간 뇌가 정지한 듯했다. 목적이 정당하면 과정이 적절치 않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목적이 지구를 위한 것이라면? 스스로 명쾌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간 모나리자는 개인적인 앙심이나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위해 제법 수난을 겪었다. 이번 수난은 이전과는 결이 다른 듯했다. 아직 이번 사건의 범행 동기나 배후 단체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진실의 여백을 허구로 채워보았다. 곤란에 빠진 여인의 초상화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 하루였다. (음모론도 있더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려고 한다는..., 그러지 않아도 이미 모나리자는 충분히 유명하지 않던가. 한 해 1천만 명 정도가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는데 말이다. 박물관 입장료는 또 얼마나 고가이던지. 모나리자의 경제적 가치가 2조~40조까지 하리라는 프랑스의 발표가 있었다니 그림 한 점의 가치가 웬만한 기업 가치보다 높다. 나라가 망해도 프랑스는 모나리자를 결코 팔지 않으리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싶다.)

모나리자 (1).JPG <두꺼운 방탄유리 덕분에 작품 그대로를 감상하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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