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별의 전설. Chapter 1

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44년 7월

by 조이홍

Chapter 1. 몽상가


오래전 생기를 잃은 붉은 대지는 살랑대며 부는 바람에도 마른기침을 뱉었다. 뿌연 먼지들이 춤추듯 부유하다 이내 허공에 흩어졌다. 심보 고약한 태양의 열기를 가로챈 철없는 새털구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꽁무니를 빼며 달아나자 대지는 또 한 번 검붉게 타올랐다. 태양과 대지가 자웅을 겨루는 맹수처럼 허공에서 사납게 부딪쳤다. 둘 사이를 중재하는 건 언제나 바람이었다. 바람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언제나 둘을 갈라놓았다. 오늘처럼 성난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대지는 가쁜 숨을 헐떡거리고 태양은 슬그머니 딴청을 피웠다. '죽음의 땅' 위로 시간의 파편들을 잔뜩 품은 먼지구름이 터질 듯 빵빵한 버섯 모양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누군가 일부러 이곳의 흔적을 감추려는 듯 사방에 잿빛 적막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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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험악한 날씨에는 아무리 강인한 생명체라도 방비 없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너머를 바라보던 오엔은 재빨리 가슴 한 점으로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투명한 액체가 송골송골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을 뒤덮었다. 종잡을 수 없는 화성의 변덕스러운 날씨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바이오 슈트(Bio-suit)였다. 강한 태양풍이 덮치거나 오늘처럼 모래 돌풍이 휘몰아치는 날에 없어서는 안 될 분출형 생체조직이었다. 자신들이 언제부터 바이오 슈트를 사용했는지 오엔은 알지 못했다. 부모들로부터 자식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자연스레 전해지는 삶의 지혜였다. 새 생명이 태어나면 말보다 먼저 바이오 슈트 사용법부터 가르쳤다.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성에 비해 사용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넓고 단단한 가슴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기만 하면 됐다. 누구나 처음 몇 번은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하게 해냈다. 화성에 처음 도착한 선조들은 바이오 슈트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개척자 학교에서 배웠다. 선생님은 숨 쉬기조차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들의 선조 중 하나가 우연히 만들어낸 기적이 바이오 슈트라는 놀라운 사실도 가르쳐 주었다. 그 신비롭고도 결정적인 우연 덕분에 선조들 중 일부가 살아남았고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바이오 슈트를 단단하게 둘러도 무자비한 모래폭풍을 언덕 위에서 그대로 맞았다간 조그만 몸이 감당하지 못할 터였다. 오엔은 익숙한 듯 재빨리 언덕 아래 동굴로 몸을 숨겼다. 누군가 그녀를 보았더라면 동굴로 순간 이동했다고 믿을 만큼 날랜 동작이었다. 오엔은 이번 폭풍이 한동안 계속되리라는 걸 알았다. 날씨를 예측하는 건 그녀만의 특별한 능력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하늘만 올려다보던 그녀는 언제부턴가 날씨를 미리 알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아니면 어떤 계기로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우연일지도 몰랐다.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마을에 피해를 줄만 한 날씨 변화가 있을 때 주민들에게 미리 경고하는 것이 공동체 일원으로서 그녀가 맡은 책임이었다. 특별한 재능은 외톨이였던 오엔을 공동체 품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마을 주민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지만, 종종 예전처럼 혼자 지내던 시간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는 고독한 모래사막을 홀로 찾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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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겋게 익은 태양도 지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어느새 잿빛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먹다 남은 팬케이크 같은 노란 달이 태양이 물러간 하늘에 핼쑥한 얼굴을 드러냈다. 대기를 빽빽하게 채운 먼지들만 아니어도 현기증 날 정도로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있을 텐데, 오엔은 심술궂은 바람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냈다. 밤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은 별들을 올려보는 게 그녀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거칠고 후덥지근한 낮보다 차갑고 쌀쌀맞은 밤이 언제나 더 마음에 들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매일매일 새로웠고 조금도 싫증 나지 않았다. 사나운 모래 폭풍 뒤로 별들이 꼭꼭 숨어버렸으니 하루쯤 건너뛰어도 좋으련만 오엔은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 별이 사라진 건 아니라고. 별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고.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앉힌 오엔은 자신만의 특별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 머리의 한 점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정신 감응은 바이오 슈트 만들기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다. 잠자는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오엔의 작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정신 감응에 성공했다는 표시였다. 준비가 끝났다. 그녀는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을 향해 내면의 목소리를 천천히, 명징하게 흘려보냈다.

'이 넓은 우주에 우리 밖에 없나요? 제 목소리가 들리나요? 여기는 화성입니다. 이 목소리가 들리면 화성을 방문해 주세요. 우리가 여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오래전에 화성에 정착했지만, 우리는 선조들의 고향 지구가 그립습니다. 우리를 지구로 데려가 주세요."

오엔은 먼 우주 어딘가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하기를 바랐다. 미처 헤아릴 수도 없는 광활한 공간에 자신들밖에 없다면 너무 외롭고 쓸쓸할 터였다. 그녀는 정신 감응으로 내면의 목소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우주로 흘려보냈다. 이 일이야말로 그녀가 마을을 위해 진짜 해야 할 일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마을 주민 누구도 더 이상 정신 감응으로 내면의 목소리나 구조 신청을 우주로 보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이 광활한 우주의 유일한 생명체라고 믿었다.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벌써 자신들을 찾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을 붉은 별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화성의 척박한 환경보다 기약 없는 희망이 더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기에 마을 주민들은 거친 땅에서 살아남는데 일생을 바쳤다. 오엔이 어린 시절, 마을 주민들은 온종일 하늘만 바라보는 그녀에게 몽상가라고 놀려댔다. 조롱 섞인 말들은 어린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아무렇지도 않았다. 날씨를 내다보는 능력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마을 주민 누구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앞만 살폈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오직 오엔만이 하늘을 바라보고 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남들과 다르다는 게 지독하게 외로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엔은 언제가 반드시 우주를 여행할 만큼 지적인 존재가 대기를 흔들고 대지를 깨우며 홀연히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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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죽음의 땅을 집요하게 때려대는 폭풍이 사흘이나 계속되었다. 동굴 안에서 꼼짝달싹 못 했지만, 고독은 말없이 다정한 친구였다. 그녀를 성가시게 하는 마을 아이들이나 요즘 들어 부쩍 친한 척 호들갑 떠는 누리를 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행복하기까지 했다. 사흘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그리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마을 주민들과 달리 오엔은 먹는다는 행위에 그다지 관심도 의욕도 없었다. 한 번은 지독한 태양풍이 덮쳐 무려 열흘 동안 동굴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오엔도 무척 혼란스러웠다. 살짝 어지럼증을 느낄 뿐, 움직이는데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재능이 하나 더 생겼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때로 어떤 사실은 가슴에 묻어두는 편이 나았다. 사나운 폭풍도 오늘 밤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질 터였다. 내일 아침에는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커다란 바위를 안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이제 막 오늘치 의식을 끝낸 오엔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직은 사나운 바람 소리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쉬이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몸을 뒤척이던 오엔은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려 기억의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남들보다 작고 여린 몸으로 태어났다. 말문 떼기도 늦었고 말수도 적었다. 그 때문인지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 대부분은 하늘을 바라보았고 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뜻밖에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거의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다시피 했다. 뱃속이 몽글몽글해지는 추억 하나 떠오르지 않았다. 오엔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려면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별을 세었다. 엄마가 남겨준 유일한 기억이었다. 엄마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별을 세어보라고 어린 오엔의 귀에 속삭여 주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잠이 오지 않는다는 투덜거림이 민망할 정도로 오엔은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사납게 울부짖던 바람도 지쳐 곤히 잠든 밤이었다.


“안돼!"

오엔은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동굴 밖은 아직 밤과 새벽의 경계 어디쯤이었다. 잠이 덜 깬 사막이 온통 흐릿했다. 바람도 잦아들어 그녀의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이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잿빛 먼지구름이 사라진 밤하늘이 무척이나 맑았다. 마치 한낮의 하늘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숱한 나날 밤하늘을 보았지만, 그토록 촘촘하게 공간을 채운 별들은 난생처음이었다. 오엔은 별들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대기를 흔들어 깨우더니 시퍼렇고 시뻘건 열기를 토해내는 비행 물체가 오엔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어찌나 커다랗던지 낯선 물체에 비하면 자신은 사막의 먼지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두려움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오엔은 왠지 그것이 그토록 기다려 온 존재, 우주를 가로질러 그녀와 마을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화성을 찾은 외계인이라는 걸 알았다. 낯선 존재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는 순간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대기를 쩌렁쩌렁 울리더니 커다란 비행 물체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밤하늘은 여전히 맑았고 빛나는 별들도 아름다웠다. 외계인은 질문에 대한 대답도, 구원에 대한 약속도 없이 정적만을 남기고 머나먼 우주로 훌쩍 떠나버렸다. 그 빈자리에는 오엔의 절규만이 울려 퍼졌다. 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한 장면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꿈도 있다는 촌장 할아버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다면 정말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오엔이 꿈의 여운을 좇는 동안 어김없이 새날이 밝아왔다.

(다음 편에 계속…)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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