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높이곰 돋아사

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40년 9월

by 조이홍

훌쩍 떠나온 것이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네. 친구여. 사람의 마음이란 도대체 어찌 이리 간사한지. 그렇게 따분하고 지긋지긋했던 그곳의 삶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줄은 몰랐네. 심지어 그곳의 뜨거운 대기를 다시 느껴보고 싶을 정도라네.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이번 선택을 후회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걸세. 자네가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네. 사실 자네 메일을 받고 무어라 답장을 써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네. 자네를 이곳에서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진심을 전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판단했네. 부디 신중하게 결정하길 바라네. 만약 자네가 정말 이곳에 오고 싶다면 인간과 달의 짧은 역사에 관해 훑어보고 오는 편이 좋을 걸세. 당장 인터뷰할 때도 면접관이 달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볼 테니 말일세. 내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공부한 내용 중에 도움이 될만한 사항들을 정리해서 보내네. 이곳에 오지 말라고 하면서 이런 내용을 전하는 게 이율배반적이지만, 자네에게 진 신세를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 또한 크기 때문이라네. 자네는 내 소중한 친구니까 말일세.


우주조약에 대해서는 꼭 확인해 두어야 한다네.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지. 아마 1967년 10월이었을 거야. UN총회를 통해 채택되고 90여 개국이 서명한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의 탐색과 이용에 있어서의 국가활동을 규율하는 규칙에 관한 조약'이 발효되었다네. 우리가 통상 우주조약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따분할 정도로 긴 이름이지만 외워두는 편이 좋을 걸세. 다행히 전문과 본문 17조로 구성되어 무척 짧으니 반드시 한 번 훑어보게. 내용은 무척 간단하네. 우주는 인류 만민의 공동 유산으로 특정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호혜평등의 원칙하에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네. 또한 조약 당사국들은 지구 주변 궤도 및 지구 밖 천체에 대량살상 무기를 설치하지 않는 것도 명시했지. 냉전으로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던 시기에 우주조약이 발효됨으로써 평화로운 우주 시대가 막을 올렸다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치가들이란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선거에서 승리할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다른 국가들도 특정 천체에 외기권을 소유할 수 없으니 급한 불은 꺼두었다고 여겼지. '내가 먹지 못하면 남도 먹지 못한다.' 국제관계의 기본은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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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건 그로부터 2년 후였다네. 이건 자네도 수업 시간에 배워 잘 알 테니 간단하게 설명하겠네. 우주조약에도 불구하고 냉전 체제를 우주까지 팽창시키던 미국이 소련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기는 사건이 일어났네. 맞아. 1969년 아폴로 11호를 발사한 미국이 인류 최초로 인간을 달에 보낸 일 말일세. 지구인이 달에 위대한 첫발을 내딛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네. 인류가 달에서 금방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폴로 프로젝트 이후 달은 기나긴 동면에 들어가야만 했네. 어쩌면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은 것이 기적일만큼 달 탐사는 엄청나게 위험했고 천문학적 비용이 요구되었기 때문일세. 소련과 경쟁하지 않았다면 아마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지. 기적은 딱 거기까지였어. 인류의 시선이 화성과 같이 더 먼 우주를 향했기에 달은 유행가 가사에나 등장하는 로맨틱한 소재나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음산한 영화의 배경 장면으로 쓰이는 게 전부였다네. 달의 몰락이었지.


1980년대 들어 달은 다소 희한한 방식으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네. 데니스 호프라는 미국인이 달과 화성 등 태양계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걸세. 처음에는 다들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지. 하긴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은 언제나 당대 주류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지만 말일세. 아무튼 그는 우주조약이 국가에 대한 소유권을 금지할 뿐 개인의 소유권은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을 역이용했네.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자신의 달 소유권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 신이시여, 자유의 나라 미국과 언제나 함께 하소서. 정의의 상징 법원은 그의 주장을 부정할 근거가 없었다네. 결국 데니스 호프의 손을 들어주었지. 내친김에 그는 샌프란시스코 법원의 결정에 이견이 있는지 UN에 공식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네. UN이 뭐라고 했는 줄 아나? 나씽!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네. 침묵은 곧 긍정을 의미했지. 마침내 데니스 호프는 합법적으로 달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네. 하루아침에 몽상가에서 혁신적인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Lunar Embassy'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1 에이커의 달 토지를 단돈 20달러에 판매했다네. 실제 달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휘영청 밝은 달의 일부를 갖는다는 상상만으로 즐거워했지. 재미 삼아했던 이 일이 훗날 엄청난 분쟁의 불씨가 될 줄은 이때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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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설적인 보이 그룹 BTS의 나라 한국에서 한 노인이 칠십 번째 생일을 맞아 자식들로부터 특별한 생일 선물을 받는다네. 바로 Lunar Embassay라고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달 토지 소유 증서였지. 왜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궁금하겠지만 곧 알게 될 걸세. 그가 소유한 땅은 달의 바다 중에서도 고요의 바다라고 불리는 지역이었는데 넓이가 무려 10 에이커나 되었다네. 닐 암스트롱이 착륙한 지점도 바로 이곳이었지. 사실 그 노인은 데니스 호프보다 10년이나 먼저 달의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당시 대한민국 법원은 황당무계하다고 그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네. 한국의 데니스 호프는 몽상가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 비밀을 옛날이야기 삼아 어린 손녀에게 들려주었다네. 맞아. 그 손녀가 바로 그녀야. 그녀 이야기는 조금 있다 다시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달 정착기를 들려줄까 하네.


2025년 아르테미스 3호가 달 착륙에 성공해 한 명의 여성을 포함한 네 명의 우주인이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다네. 비로소 달이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났지. 우주인들은 두 해 전 대한민국의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호가 작성한 달 표면 원소지도를 바탕으로 계속 뜨거워지는 지구를 구원해 줄 '헬륨 3' 매장 지역을 집중 탐색했다네. 지도는 꽤 정확했지. 사실 헬륨 3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 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오래전부터 관심받아왔네. 태양풍에 섞여 이동하기 때문에 대기권에 둘러싸인 지구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달에는 상당량이 퇴적돼 있었지. 찬밥 신세로 전락했던 달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게 된 이유였다네. 다누리호는 약 100만 톤의 헬륨 3가 매장되어 있으리라 파악했다네. 다소 견해 차이는 있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헬륨 3 100톤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나 방사능 걱정 없이 1년간 인류가 사용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네. 100만 톤이면 인류가 지금의 풍요로움을 멈추지 않고도 1만 년이나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지. 경제전문가들이 예상한 헬륨 3 1톤의 가치는 약 30억 달러였다네. 금보다 몇 배나 더 가치 있는 헬륨 3의 존재를 두 눈으로 목격한 지구인들은 열광했다네. 신이 인간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흥분했지. 이후 2027년부터 지금까지도 건설 중인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가 달 궤도에 자리를 잡았고, 2030년에는 인간이 달에 체류할 수 있는 최초 전초기지인 '루나 아웃포스트'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우리 회사 전초기지 '소월 아웃포스트'는 203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0년 만에 완공되었다네. 중간에 2년 정도 공사가 중단돼 좀 오래 걸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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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륨 3 매장량을 확인했지만 당시만 해도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네. 헬륨 3를 채굴하는 가장 일방적인 방법으로 달 표면을 1m 채굴해 섭씨 600도로 가열 후 헬륨 3를 분리해내는 기술은 그때까지만 해도 개발되지 않았거든. 우리 같은 달 전문 채굴 인원을 양성하고 상주시키는 문제 역시 만만치 않았지. 게다가 채굴을 성공해도 지구로 이송하는 일도 문제였다네. 민간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해 헬륨 3 운송에 적합한 거대 우주화물선을 개발했지. 그나마 진행 속도가 가장 빨랐다네. 마지막 난제는 뭐니 뭐니 해도 핵융합 기술이었지. 낙관적인 전문가들조차 핵융합 원자로를 가동하려면 2060년이 되어야 한다고 전망했으니 말일세. 어쨌든 기술적인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만, 제도 보완은 국제 관계로 얽히고설켜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네. 당장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부터 손봐야 했지. 헬륨 3 채굴을 전적으로 민간 기업에 위탁한다고 해도 달의 특정 지역을 어느 기업이 소유할 것인가를 두고 분쟁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일세.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 인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거세게 반발했다네. 그 옛날 먼 미래의 일이라 덮어두었던 문제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지. 발 빠른 언론사들은 '신냉전 체제의 부활, 우주 전쟁의 서막'이라는 자극적인 머리기사를 경쟁적으로 뽑아댔지. 2027년 열린 제82차 UN총회에서 우주조약 개정을 논의했지만 두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해 한 글자도 건들지 못했다네. 다만 화물운송 사업자로 선정된 민간기업의 우주화물선이 발사되는 2035년 6월 이전까지 우주조약을 개정하기로 합의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네. 지구온난화와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를 코앞에 두고도 각 국가들이 저마다의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지.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돼 오던 달 개발 사업이 갑작스레 멈춘 건 2033년이었다네. 드디어 그녀가 등장할 차례네. 재희라는 한 한국인 여성이 우리 회사를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제출한 사유재산권 침해 소송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지. 할아버지로부터 10 에이커의 달 토지를 상속받은 그녀는 우리 회사가 한창 전초기지를 건설하던 지역이 자신의 소유임을 증명하는 토지 증서를 샌프란시스코 법원에 제출했다네. 그녀의 법률 대리인은 우리 회사가 그녀의 땅에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건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로 즉각 사업을 중단하고 적당한 보상과 토지 이용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네. 회사가 발칵 뒤집혔지. 그때는 나도 NASA에서 달 적응 훈련을 받을 때라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네. 회사로서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네.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였고. 세계적으로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달 토지 증서를 가지고 있었지.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간 집단 소송으로 이어질 게 분명했으니까. 사실 달의 토지를 분양한다는 건 로맨틱한 장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누가 실제로 발도 한 번 내딛지 않은 땅의 소유권을 인정하겠나?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네. 정말 정의로웠지. 2년을 끈 소송에서 결국 우리 회사가 패했다네. 2년 동안 달 전초기지 공사가 중단돼 엄청난 손해를 입은 데다 그녀에게 보상해야 할 금액과 토지 이용료도 만만치 않았다네.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심각했지. 그때 그녀가 우리에게 제시한 게 무엇인 줄 아나? 이용료를 포기하는 대신 우리 회사 전초기지 이름을 그녀의 할아버지 이름인 '소월'로 해달라는 것이었네. 회사로서는 고민할 여지가 없었지. 이제 왜 내가 있는 곳이 소월 아웃포스트인지 이해할 걸세. 그녀가 제기한 소송은 일단락되었지만 큰 골칫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네. 집단 소송 말일세. 우리뿐만 아니라 각 국가를 대표하는 몇몇 달 개발 기업들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지. 그때 그 일이 일어난 거야. '파멸의 주간' 말일세. 결국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지고 말았지. 이 끔찍한 사건은 자네도 잘 알 테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네. 또다시 멈춘 사업은 2036년이 되어서야 재개되었다네. 뜨거워진 지구에 호되게 당한 생존자들은 집단 소송을 선택하는 대신 달 개발 회사들이 하루빨리 헬륨 3를 지구로 가져올 수 있도록 응원해 주었다네. 회사로서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지.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었으니까. 자네처럼 나도 그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네. 너무 힘들어 모든 걸 내려놓으려던 순간 자네가 날 살려주었지. 사는 게 더없이 외롭고 무의미한 날들이었네. 마침 달 적응 훈련이 재개되었고, 훈련을 마치고 바로 이곳에 왔다네. 벌써 3년 전의 일이지. 참, 도움이 될만한 사건을 정리해준다고 하고선 하소연으로 마무리했네. 오랜만에 편안한 친구에게 마음을 전해 그런 것이니 부디 이해해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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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지에서 지구가 아주 잘 보인다네. 사실 어디라도 잘 보이지만 말일세. 육지가 줄고 바다가 늘었지만 여전히 푸른 지구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네. 하루빨리 핵융합 원자로 기술이 완성돼 헬륨 3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 그래야 지구도 남은 사람들들도 행복할 테니 말일세. 달에서 처음 1년은 고독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네만, 이제는 성가신 불청객이 되었다네. 솔직히 하루도 지구가 그립지 않은 날이 없다네. 물론 사명감 같은 무언가가 아직도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친구들과 남은 가족들이 있는 지구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 일 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에 오면 10년 동안은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네. 자네의 아픔을 외면하기 위한 도피처로 달을 선택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네. 오늘 밤 커다란 보름달이 높이높이 떠서 자네의 어두운 마음까지 환하게 비추어 추면 좋겠네. 달의 역할은 그걸로 충분하다네. 그럼 이만. <소월 아웃포스트에서 자네의 절친 마이클이>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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