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32년 8월
“준비되셨죠, 기사님? 이 카메라 보시고 친구끼리 대화한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큐!”
“죄송해요, 한 기자님, 질문이 뭐였죠? 아, 맞다. 생각났다. 택배 일이 힘들지 않냐고요? 말도 마세요. 엄청나게 힘들죠. 기본적으로 몸 쓰는 일이잖아요.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드론이랑 택배 로봇이 물류 배송에 도입되면서 20kg 넘는 무게는 다 우리 차지가 됐으니 더 힘들죠. 게다가 평범한 직장인들은 주 4일 근무에 32시간만 일하잖아요. 우리는 아직도 토요일도 없이 60시간 넘게 일해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라 근로기준법은 딴 세상 이야기죠. 그나마 십여 년 전에 전국택배노조가 결성돼 형편이 나아진 게 이 정도예요. 주로 바깥에서 일하니까 계절과 날씨에 영향도 많이 받고요. 눈비 오는 날은 더 힘들죠. 특히 예고 없이 소나기라도 내리면 발을 동동 굴러요. 내용물이 상하는 것도 아닌데 택배 상자가 젖으면 고객들이 싫어하거든요. 물론 모든 고객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천사 같은 고객들도 많으니까요. 그래도 기후변화인가 뭔가 때문에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죽을 맛이에요. 기자님도 알다시피 시도 때도 없이 폭우가 쏟아지잖아요. 이건 뭐 누가 꼭 날씨로 장난치는 것 같다니까요. 그래도 일이란 게 다 그러려니 하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요?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해서 로봇들이 인간의 일을 하나둘 빼앗아 가는데 아직 우리는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죠.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지만요. 잠잠하다 싶으면 툭 튀어나오는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택배 물량은 늘 많아요. 덕분에 요즘은 10시 전에 일 끝내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죠. 욕심 안 부리고 체력 받쳐주는 만큼만 일하면 저랑 우리 반지가 먹고살 만큼 벌어요. 아, 반지는 제가 키우는 비글이에요. 요즘 한창 재롱떨 때라 고 녀석 보는 재미로 살죠. 젊을 때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하루빨리 이 일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니 부질없다 싶어요. 우리 둘이 끼니 걱정 안 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돈 싫어하는 사람 없지만 욕심부리면 끝이 없잖아요. 우리 센터에도 얼마 전에 한 분이 과로사로 돌아가셨거든요. 올해로 벌써 네 분째예요. 그런 일을 곁에서 지켜보면 마음이 좀 그래요. 기술이 발달해서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아침에 주문한 물건이 반나절이면 오는 시대잖아요. 하늘에서는 드론이 택배를 나르고, 인도에서는 택배 로봇이 굴러다니고요. 세상은 더 편해졌는데, 우리는 왜 갈수록 힘들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좀 답답하죠.”
“회사랑 관계요? 그냥 그래요. 뭐, 일반 직장인들이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하긴, 우리 반장님은 옛날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10년 전만 해도 택배 기사가 분류작업까지 모두 책임졌잖아요. 요즘은 상·하차뿐만 아니라 적재까지 자동화돼서 기사들은 배송만 하면 되니까 확실히 좋아지긴 했죠.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 편하긴 편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새벽에 출근해서 오전 내내 분류작업하다 점심도 거르고 배송 나가는 일이 흔했다고 하더라고요. 어휴, 그러면 힘들어서 이 일 못하죠. 택배 기사가 무슨 강철 로봇도 아니고. 요즘 노조랑 회사랑 건당 수수료 인상 건으로 좀 껄끄럽긴 해요. 가벼운 택배는 죄다 드론이랑 택배 로봇이 처리하고, 무거운 상자들은 전부 우리 차지니까요, 우리도 휴대용 택배 로봇을 사용하긴 하지만, 그건 또 자비로 구매해야 하거든요. 매년 수수료 협상 때마다 어수선하긴 한데 올해는 유독 더 심하네요. 사측 대표들이 하루만 직접 배송해 보면 수수료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금액인지 금방 깨닫게 될 텐데 들은 척도 안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죠.”
“이 일에 보람을 느끼냐고요? 그럼요. 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택배 가지고 가면 얼마나 반갑게 대해주시는지 가끔 민망할 정도라니까요. 그럴 때 보면 사람들이 정말 외로움을 많이 타는구나 싶어요. SNS에는 혼자 사는 삶이 무척 낭만적이고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그거 대부분 연출이잖아요. 진짜 외로우니까 안 외로운 척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심지어 1인 가구는 반려견들까지 난리도 아니에요. 처음에는 제 몸에서 강아지 냄새가 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개들도 외로움을 탄다고 하더라고요. 매일 혼자 지내는 우리 반지한테도 얼마나 미안한지…. 아무튼, 제가 그냥 무거운 상자만 나르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을 때 보람을 느끼죠. 가끔 문 앞에 고맙다는 편지도 써주고 한여름에는 고생한다고 시원한 생수나 음료수를 놓아두는 집들도 있어요. 겨울에는 핫팩도 놓아주고요. 그럴 때는 정말 울컥하죠.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싶기도 하고요.”
“길거리에서 택배 로봇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하다고요? 글쎄요.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냥 참 부지런히 다니는구나 뭐 그 정도 느낌이죠. 여전히 신기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우리 일을 완전히 빼앗아 가겠지만, 아직은 먼 훗날 일이잖아요. 그러니 악당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처음 드론과 택배 로봇이 도입될 때만 해도 곧 택배 기사가 사라지리라 다들 걱정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잖아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불거졌으니까요. 가까운 거리도 멀리 돌아가거나 해킹 문제 같은 거 말이에요. 한 기자님도 기억하시죠? 택배 상자를 싣고 가던 드론이 주파수 가로채기로 강남 8차선 도로 한가운데 떨어져 난리가 났었잖아요. 결국 가벼운 물건은 택배 로봇이 맡고 섬이나 산골 마을처럼 접근이 어려운 지역은 드론이 맡게 되었죠.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이 일에서 인간이 완전히 배제되는 불행은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한 기자님 생각은 어떠세요? 제가 좀 낙천적인 편이죠. 하하하.”
“한 기자님, 인터뷰할 거 더 남았어요? 인터뷰하느라 물량이 좀 밀렸네요. 오늘은 자정을 훌쩍 넘겨야 끝날 것 같네요. 꿈이나 소원 같은 거 있냐고요? 글쎄요. 반지랑 행복하게 사는 거 말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 맞다. 하나 있어요. 번개 배송, 총알 배송 이런 건 좀 없어지면 좋겠어요. 꼭 택배 기사들이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세상이 너무 빨라지잖아요. 자동차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스피드에만 너무 집착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잖아요. 가끔 서행 구간도 마련해서 천천히 가야죠. 한 번씩 브레이크도 밟아주고요. 급하게 필요한 물건은 동네 마트에서 사면 되잖아요. 운동도 하고 이웃도 만날 겸 동네 한 바퀴 도는 거죠. 요즘 골목골목마다 개성 있는 식당들이 은근히 많거든요. 제 직업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니까 그런 정보는 빠삭해요. 암튼 너무 빨리 가면 안 돼요. 다 함께 천천히 가야죠. 제가 너무 뻔한 말을 했나요? 마지막 이야기는 기자님이 알아서 편집해 주세요. 이제 정말 끝난 거죠?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들한테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벌써 소문 쫙 냈으니까 실물보다 잘생기게 나오게 해 주셔야 해요. 꼭이요. 수고하셨습니다, 한연호 기자님.”
택배 기사 정근이 모니터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웃음이었으리라. 인터뷰를 진행한 이틀 후 정근은 지하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무단결근한 그를 걱정한 동료 기사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연호는 숨진 정근의 옆을 끝까지 지켜준 반지를 떠올렸다. 정근이 홀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헛헛한 마음이 조금은 위로되었다. 연호가 정근을 밀착 취재한 ‘4차 산업혁명 시대, 어느 택배 기사의 하루’는 '택배 없는 날' 저녁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결국 불발되었다. 방송은 되지 못했지만, 연호는 회사 방침을 어기고 편집본을 정근의 부모님께 전해드렸다.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그의 마지막 미소를 보여드리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정근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연호는 왠지 기분이 씁쓸했다. 그의 죽음을 과로사로 인정받는데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어젯밤에 주문한 물건이 오늘 새벽에 도착하는 초고속 시대, 그 일을 온몸이 부서지도록 해낸 택배 기사의 죽음을 규정하는데 왜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정근이 말한 세상의 브레이크는 정작 그의 죽음을 인정받는 데에만 작동했다.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세차게 빗방울이 쏟아졌다. 일기 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는데 또 달갑지 않은 소나기가 퍼부었다. 연호는 어디에선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수많은 정근이 떠올랐다. 기왕 퍼붓는 김에 오늘 하루쯤 세상이 멈추면 좋겠다고 그녀는 물색없이 혼잣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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