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44년 7월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몇 달이나 계속되었다.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소나기조차 없는 여름을 더는 견딜 수 없는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은 그의 아리따운 5월의 신부 '별을 노래하는'과 함께 푸른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행단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곧 태어날 자식들을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건 모든 생명체의 간절한 소망일 터였다. 어머니 지구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부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에 혹독한 경고를 보낸 이래 예측할 수 없는 날씨는 상수(常數)가 되었다. 계절 변화가 뚜렷하다는 말은 옛 추억으로 싸구려 감성팔이나 하는 꼰대들의 넋두리가 된 지 오래였다. 이제 세상에는 딱 두 가지 날씨밖에 없었다. 뜨거운 날씨와 몹시 뜨거운 날씨. 물론 이런 사정은 그들이 공생하는 인간의 거주지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여전히 극소수 인간의 거주지는 시원한 바람을 내뿜는 기계가 24시간 작동하고 문만 열면 냉기와 함께 눈부신 빛이 새어 나오는 환상적인 기계 안에 먹을거리가 가득했다. 그런 조건이라면 그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었다. 공동체가 탐내는 거주지일수록 치명적인 함정들이 너무 많았다. 수많은 경쟁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혹독한 추위조차 이겨낸 그들이 인간이 발명한 기계들 앞에서는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인간의 거주지를 이탈한 공동체들은 폐허가 된 도시에 모여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마음 졸이며 사느니 그 편이 훨씬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폐허에는 동물성이나 식물성 가릴 것 없이 먹을거리가 충분했다. 하지만 불행은 행복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온다고 그들의 위대한 스승이 말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그렇듯 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비좁고 험난하지만, 지옥으로 뻗은 길은 16차선 고속도로였다. 예상하지도 못한 시련이 그들 앞을 턱 하니 가로막았다. 오랜 세월 인간의 거주지에 길들여진 탓에 그들 역시 날씨가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는 그들에게 온종일 내리쬐는 햇볕 말고는 기대할 것 없는 하늘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햇볕이 대지를 날카롭게 할퀴어도 그늘에 숨으면 그만이었지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 치명적이었다. 입소문으로 전해지던 축축한 검은 이끼로 뒤덮인 낙원을 찾아 떠나는 공동체가 점점 늘어났고, 얼마 전 백년해로를 약속한 별종 부부도 긴 대열에 동참했다.
온갖 시련과 위험을 극복하고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과 '별을 노래하는'이 닿은 곳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미래가 바뀌기를 바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바보들과 달리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진 값진 보상이었다. 물론 엄청난 피해도 뒤따랐다. 푸른 바다가 훤히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공동체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 지구로부터 호된 경고를 받은 인간들은 여전히 다른 종과의 공생 따위는 관심 없는 듯 굴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게 그들의 본능이었지만, 예민한 인간들과 그들이 만든 몇몇 기계는 무척이나 위험했다. 특히 인간의 발 모양을 본떠 만든 도구에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으스러졌는지 모른다. 똑같은 죽음은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죽음마다 다른 슬픔이 밀려왔다. 가족과 이웃, 동료와 친구를 잃은 아픔을 뒤로하고 그들은 계속 나아갔다. 멈출 수 없으니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축복의 검은 땅에 도착했다.
화창한 가을날, 별종 부부와 그들의 도전적인 친구들, '바람처럼 날랜'과 '친구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웃는 모습이 예쁜'이 쾌청한 날씨를 즐기기 위해 나들이에 나섰다. 목적지는 얼마 전부터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이 눈여겨보아 둔 작은 도시였다. 바닷가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커다란 기계를 실은 탈 것들이 수시로 드나드는가 하면 밤늦게까지 대낮처럼 밝은 불빛이 꺼질지 몰랐다. 그는 곧 흥겨운 축제가 벌어지리라 직감했다. 짭조름한 이끼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았지만, 간사한 입이 가끔 인간의 단짠단짠 한 음식을 원했다. 게다가 조만간 새 생명이 태어나니 아내에게도 푸짐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일행의 대장격인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의 인솔 하에 그들은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움직여 작은 도시에 숨어들었다. 오랜만의 미식 여행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정갈하고 담백한, 달큼하면서도 매콤한 인간의 음식을 모처럼 배 터지게 먹었다. 더는 한 입도 못 먹을 것 같다고 다들 뒤로 나자빠지더니 응큼하게도 후식 들어갈 자리는 남겨두었나 보다. 하얀 눈처럼 차갑고 설탕처럼 달달한 음식을 한 통 깨끗하게 비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일행이 막 이동하려던 순간 '별을 노래하는'이 새벽이슬을 한껏 머금은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마침 저기 엄청 높은 인간의 건물이 있던데. 거기서는 밤하늘의 별들이 훨씬 잘 보일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웃는 모습이 예쁜'이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좋아. 어릴 때처럼 다 함께 별구경 가자."
유난히 하늘이 맑아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을 터였다. 일행은 5월의 신부가 말한 하얗고 높은 건물에 마치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 도착했다. 저녁 하늘이 훤이 보이는 건물의 꼭대기였다.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한 별들이 '웃는 모습이 예쁜'의 미소처럼 환하게 빛났다. 별들이 연출한 경이로운 광경에 모두가 취해 있는 동안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은 건물 안 공기가 여느 장소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팽팽한 긴장감에 자꾸만 온몸이 떨려왔다. 뭔가 기분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갑자기 건물이 심하게 요동쳤다. 동시에 건물 안으로 사막처럼 메마른 인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의 말투를 흉내내기 좋아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 했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엔진 점화, 이륙!"
이륙이라는 생경한 말과 함께 건물이 하늘로 솟구쳤다. 하얀 구름이 삽시간에 건물을 삼켰다. 일행은 그제야 건물이라고 착각했던 게 하늘을 나는 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늘로 곧게 치솟은 건물, 아니 탈 것이 얼마나 세차게 흔들렸는지 일행은 처음 겪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수억 년 동안 어머니 지구를 지켜왔다. 지구는 때로는 너무 추웠고 또 때로는 너무 뜨거웠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끝까지 살아남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들과 경쟁하던 수많은 종(種)이 멸종했다. 경쟁자의 불행이 그들의 행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살아내야 할 삶을 묵묵히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새로운 종, 자신들을 지혜롭다고 일컫는 인간이 등장했다. 인간은 이전 경쟁자들과는 달랐다. 사실 인간 한 명 한 명은 보잘것없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사나운 발톱도 없었고 힘도 형편없었다. 곧 사라지리라 여겼던 인간들이 예상을 뒤엎고 지구 구석구석에 퍼져나갔다. 인간은 이전 경쟁자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돌멩이를 주워 도구를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단단한 금속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야생 동물을 길들였고,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독이 든 식물을 분간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자를 발명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으며 서로 협력했다. 인간의 지식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 쌓여 갔고, 결국 놀라운 과학 기술로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은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머니 지구가 정해 놓은 한계선을 수시로 침범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인간의 번영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들의 생명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한 인간과의 충돌을 최소화했다. 불편한 공생 관계가 수 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그사이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빠른 시간 안에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지 연구했다. 그들이 다른 종에 관심을 갖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장아장 걷는 인간 아이의 수준이지만 문자와 언어를 이해하게 된 게 가장 큰 성과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구의 협력자'라고 불렀지만, 인간은 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형편없는 이름 문제로 인간들과 마주 앉아 논쟁이라도 한 판 벌이고 싶었지만, 차마 앞에 나설 수는 없었다. 인간의 발을 본뜬 도구가, 슬리퍼라고 부르는, 그들을 향해 내려치리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들을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불러 어머니 지구에게 고자질한 건 아니었다. 인간은 너무 풍요로웠고, 그것은 모든 생명체를 위협했다. 멈추지 않는 인간 앞에 빨간색 신호등이 켜진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온누리(ONNURI)'라 불리는 우주선에서 보내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들이 알아낸 사실은 대충 이랬다. 온누리호는 행성 간 이동 수단으로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 화성을 향해 우주를 비행했다. 어머니 지구의 경고를 받은 이후 인간은 화성 이주 계획을 서둘렀고 그렇게 '우주 개척'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온누리호는 두 명의 수컷, 아니 남성 우주인을 태운 최초의 유인 우주선이었다. 화성에 도착하면 우주인들은 3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며 대기와 토양, 물과 생명체의 흔적을 실험할 예정이다. 그들은 그저 빛나는 별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을 뿐이었는데 진짜 별들 사이를 날아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처음 며칠은 죄다 넋이 나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점점 작아지는 푸른 별(어머니 지구는 푸른색이었다)을 보고 목놓아 울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던가? 온갖 시련과 고난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 아니었던가! 특유의 명랑함과 서로를 묶어주는 단단한 결속력으로 조금씩 이성을 되찾았다. 우주인의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우주여행을 즐기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누구보다 먼저 화성에 가게 되다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 현실 감각을 되찾은 일행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우주여행을 즐겼다. 그러는 동안 크고 작은 변화도 생겼다.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과 '별을 노래하는' 부부는 대가족이 되었다. 커다란 식량 창고 덕분에 우주인들에게 들키지 않고 전쟁과 같은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남자아이는 아빠의 이름을, 여자아이는 엄마의 이름을 물려주는 게 전통이지만, 별난 부부는 몇몇 아이들에게 우주선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여자아이에게는 오엔(ON), 남자아이에게는 누리(NURI)라는 근사한 이름이 생겼다. 그런가 하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바람처럼 날랜'과 '웃는 모습이 예쁜'이 커플이 되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당분간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먹을거리가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식량 창고에 보관된 우주인의 식량은 건들지 않았다. 일부러 정체를 들어내 좋을 게 없었다. 대신 우주인이 먹다 흘린 음식이나 깨어나지 못한 알을 먹어치웠다. 간혹 우주여행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잃은 아이들도 먹었다. 수 차례의 빙하기를 겪으면서 그들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그들은 식성이 좋았다. 동물성, 식물성 가리지 않았고 부패한 유기물도 먹어 치웠다. 인간의 눈에는 그들이 끔찍한 맹수(인간의 표현대로라면 벌레라고 해야 맞겠지만)로 보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인간처럼 먹기 위해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이지는 않았다. 어머니 지구의 뜻에 따라 죽은 생명체를 처리할 뿐이었다. 이것이 지구의 숨은 협력자로서 그들이 맡은 임무였다.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별을 노래하는'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아내가 일어나자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도 따라 일어났다. 우주선 안이 마치 어스름 저녁의 하늘처럼 온통 붉었다. 취침 시간에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빨간 비상등 하나만 남겨 두고 모든 조명은 꺼두기 때문이었다. 지구에서는 인간의 활동 시간과 반대로 생활했지만, 우주선 안에서는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진 우주선에서 인간들은 조종실과 침실, 그리고 식당만을 주로 사용했다. 식량 창고, 화장실, 샤워실, 물품 창고, 기계실은 모두 그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기계실만큼은 아이들의 출입이 일절 금지되었다. 배고픈 아이들이 자칫 우주선의 주요 부품이나 전선이라도 갉아먹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건 왜 그리 하고 싶은지, 종을 초월해 모든 생명체가 겪는 성장통일 터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아내가 말했다.
"여보, 아이들이 다 있는지 확인해 봐요. 이쪽부터 세 봐요. 난 저쪽부터 세어 볼 테니."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모르겠어요. 그냥 왠지 불안해서요."
엄마의 불길함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유독 배고픈 걸 참지 못하는 개구쟁이 녀석들이 셋이나 보이지 않았다. 부부는 얼른 기계실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탐스러운 빨간 전선에 달라붙은 세 녀석이 사정없이 갉아대고 있었다. 얼마나 긁어댔는지 조만간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엄마가 세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나가기도 전에 벗겨진 전선에서 시뻘건 불꽃이 튀었다. 한 번 두 번 연속해서 불꽃이 일더니 이내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황한 부부와 개구쟁이 아이들은 서둘러 기계실을 탈출했다. 그 순간 기분 나쁜 경고음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동시에 우주선 안에 울려 퍼졌다.
"화재 발생, 화재 발생, 경고합니다. 화재 발생, 화재 발생…."
우주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재빠르게 대응했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주요 장치들이 고장 나기 전에 기계실 불길을 잡으려던 키가 큰 우주인이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들이 보기에도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워 보였다. 천만다행으로 몸집이 다부진 우주인이 불길을 잡았지만 기분 나쁜 경고음과 메마른 목소리는 단어만 바뀌었을 뿐 멈추지 않고 울려댔다.
"비상사태 발생, 생명 유지 장치 고장. 경고합니다. 비상사태 발생. 생명 유지 장치 고장…."
화재 사건 이후 하루하루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생명 유지 장치란 우주선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장치인 듯했다.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 쉬기 힘들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키 큰 우주인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모든 생명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지만 그들은 처음으로 다른 종의 죽음을 애도했다. 동료를 잃은 충격과 호흡 곤란 때문인지 몸집이 다부진 우주인도 침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바람처럼 날랜'과 '웃는 모습이 예쁜' 부부도 대가족이 되었지만 기쁘지만은 않았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 대부분이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화성에 도착할 때쯤이면 그들만으로 공동체를 이루리라 생각했는데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서른 남짓이었다. 그들 특유의 명량함도 사라졌다. 주인 없는 우주선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절망의 늪에 더듬이마저 잠기려던 찰나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붉은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붉은 별이 화성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마치 커다란 자석이 우주선을 끌어당기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곧장 화성을 향해 날아갔다. 다부진 몸집이 반쪽만 앙상하게 남은 우주인이 재빨리 조정석에 앉았다. 우주인은 붉은 별을 보자마자 소리 내어 울었다. 천신만고 끝에 화성에 도착했으니 감격에 겨워 흘리는 눈물일 터였다. 우주인은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붉은 별이 점점 가까워졌다. 우주인은 속도를 더 높였다. 이제 붉은 별이 손 내밀면 닿을 만큼 가까이 있었다. 그때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우주선 안에 울러 펴졌다.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자동 착륙 장치에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동으로 제어하시기 바랍니다."
우주선이 심하게 흔들렸다. 우주인은 수 천 번도 더 연습했을 착륙을 위해 조정석 앞에 놓인 수많은 버튼을 이리저리 조작했다. 우주선이 붉은 별에 다가갈수록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은 불안함과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아이는 다시 형제, 자매의 손을 꼭 잡았다.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을 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붉은 대지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그 충격만으로도 어린아이 몇몇이 정신을 잃었다. 불행하게도 몸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우주인도 아이들처럼 정신을 잃었다. 우주선이 붉은 대지와 충돌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우주선에는 착륙을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최초의 유인 우주선 온누리호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붉은 별의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했다. 대지에 시뻘건 모래 폭풍이 일었다. 잠시 후 우주에서도 보일만큼 커다란 불꽃이 온누리호를 휘감았다. 천둥소리처럼 무거운 침묵 속에서 우주선은 한참을 불타올랐다. (다음 편에 계속…)
<이미지 출처 : Pixabay, 한국 발사체 누리호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