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세요?

8월 20일, 책 소개 <조화로운 삶>

by 조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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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고, 일 년에 여섯 달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 읽기, 여행하기, 글쓰기, 음악 듣기나 연주하기 등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실컷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어떠시겠어요? 만약 이런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마 모든 분이 “당연한 걸 왜 물어?” 하시겠죠?


그런데 만약 이런 조건이 붙는다면요?


스스로 텃밭을 일구어 식탁에 오르는 80% 이상을 직접 가꾸고, 육식을 금하며,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 물건은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심지어 집까지도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사용해야 합니다. 텔레비전이냐 스마트폰이요? 물론 없습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분명합니다. “당신이나 그렇게 살아!”라고 하시겠죠.


헬렌 & 스콧 니어링 부부는 평생 이런 삶을 살았고, 이를 <조화로운 삶>에 기록했습니다. 대공황과 1차 세계대전으로 직업을 잃은 이들은 기존의 가치(전쟁, 노동력 착취 등)를 거부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버몬트(아주 시골입니다)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꾸려나갑니다. 이들이 말하는 조화로운 삶이란 ‘이론과 실천,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삶’입니다. 부부는 산골 마음에 낡은 농장을 사들여(이때는 땅값이 무척이나 싸더군요) 스스로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어 일구고, 사탕단풍나무에서 시럽과 설탕을 만들어 적은 돈이지만 자립경제를 꾸려나갔습니다. 오전 네 시간은 오롯이 농장일이나 텃밭을 가꾸는데 몰두했으며, 오후 네 시간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즐겼습니다. 탐욕이 없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다소 불편한 삶이었지만 그들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고, 누가 급하게 일을 처리해 달라고 전화나 문자도 하지 않고, 야근도 없으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이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경쟁을 일삼고 탐욕스러우며, 공격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이론들에 반대한다. 이러한 사회는 자기 배를 채우려고 짐승을 죽이고, 스포츠의 하나로써 또는 그저 힘을 뽐내려고 짐승을 죽인다. 이러한 사회질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점점 완전하게 그 사회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거부하는 이론을 세웠기 때문에 될 수 있다면 실천에서도 거부해야 한다.”


사회로 보자면 자립 공동체를 만들려는 부부의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 보람은 그 일이 쉬운가 어려운가, 또는 그 일에 성공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인내, 그 일에 쏟아붓는 노력에 있습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척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라고 이들 부부는 굳게 믿었습니다. 버몬트에 스키장이 생기고 관광객과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부부는 1953년 봄, 마지막으로 사탕단풍나무에서 시럽 얻는 일을 마친 뒤, 공들여 지은 돌집과 훌륭한 밭들을 뒤로하고 메인 주의 또 다른 시골로 이사를 했고, 그들의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남편 스콧 니어링은 백 세까지 건강하게 살았고, 이후 음식을 끊고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내 헬렌 니어링도 92세까지 건강하게 살며 안식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1930~50년대니까 가능하지, 현대 사회에서 이런 실험이 가능하겠어?"라고 물어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생각이 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과감한 도전 덕분에 당시 지옥과도 같았던 대공황에서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천장을 부수고 치솟는 물가, 불안한 세계정세, 기울어진 운동장, 사라진 공정과 정의, 그리고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까지. 그 어떤 때보다 <조화로운 삶>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요?


비록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조화로운 삶으로 영혼은 더 가벼웠던 이들 부부가 경제적으로 훨씬 풍족한 여러분께 묻습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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