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광복절에 태극기를 게양하다 문득 궁금했다
광복절 아침, 늦잠 자다 벌떡 일어나 태극기부터 찾았다. 아침 일찍 게양해야 하는데 늦어버렸다. 그런데 창밖을 보니 날씨가 흐릿했다. 이런 날 태극기를 게양해도 되나 싶어 아내에게 물었더니 친절한 이웃 '네이버'에게 물어보란다. 국민학교 때 배운 '국기가 심한 눈·비와 바람 등으로 그 훼손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달지 않는다.'는 게양 방법 때문이었다. 당장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풍이 부는 것도 아닌 애매한 날씨라 잠깐 망설이다 게양하기로 결심했다. 저 멀리 운동장 한가운데 국기 게양대에 거는 것도 아니고, 바로 창문 옆 게양대에 꽂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고민할 필요가 뭐 있나 싶었다. 비가 억수로 퍼붓거나 강풍이 불면 금방 철수하면 될 일이었다. 얼른 태극기를 게양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우리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지 9시가 다 돼가는 데도 아직 태극기를 내건 집이 많지 않았다. 다들 태극기가 폭우에 훼손될까 걱정되었나 보다.
문득 궁금했다. 태극기가 언제 처음 사용되었더라?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는 국기에 대한 설명(내력과 담긴 뜻), 게양 방법, 제작, 관리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지난해 광복절에도 태극기 관련 글을 쓸 때 참고했던 기억이 났다. 정보 홍수의 시대, 단어 하나만 검색해도 관련 정보가 수백, 수천 건이 검색되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태극기에 대해서 복습해도 좋겠다 싶었다. 광복절 하루쯤은 우리 모두 애국자가 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사용했던 국기 형태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2004년 발굴된 자료인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제작한 ‘해상국가들의 깃발’에 실려 있는 이른바 ‘Ensign’기가 조인식 때 사용된 태극기의 원형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편,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特命全權大臣) 겸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사화기략(使和記略)'에 의하면 그해 9월 박영효는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를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그 달 25일부터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고종은 다음 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하였으나, 국기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1942년 6월 29일 국기 제작법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국기 통일 양식'을 제정·공포하였지만, 이 또한 일반 국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1949년 1월 '국기 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해 10월 15일에 '국기 제작법 고시'를 확정·발표하였다. 이후, 국기에 관한 여러 가지 규정들을 제정·시행하여 오다가, 2007년 1월 '대한민국 국기법'을 제정하였고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2007. 7월)과 '국기의 게양·관리 및 선양에 관한 규정'(국무총리훈령, 2009. 9월)도 제정함에 따라 국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陰 : 파랑)과 양(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네 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 : 음 --, 양 ―)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가운데 건괘(乾卦)는 우주 만물 중에서 하늘을, 곤괘(坤卦)는 땅을, 감괘(坎卦)는 물을, 이괘(離卦)는 불을 상징한다. 이들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행히 온종일 흐릿하기만 하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강풍도 불지 않았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기 딱 좋은 날씨라고나 할까? 바람에 태극기가 말려 풀어주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여전히 많지 않았다. 태극기를 아끼는 마음이 너무 지극하다 싶다. 어쩌면 국기라 너무 신성시하는지도 모르겠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태극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 1945년 광복절 이후 그토록 태극기가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왔던 순간이 있었나 싶다. 매일매일 태극기를 게양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국경일 하루쯤은 내걸면 좋겠다 싶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