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뭘 해 먹지?

8월 24일, 책 소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by 조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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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주부(성별에 상관없이)에게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계속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떠오르는 '오늘은 뭘 해 먹지?'와 잠자리에 들기 전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일 또 뭘 해 먹지?'가 그것입니다. 왜 인간은 세 끼를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존재인지 근본적으로 회의(懷疑)하면서 주부들은 철학자가 됩니다.


이런 질문을 품은 모든 주부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하더라도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산소'와도 같은 책, 헬린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무척 오래된 책이지만 역시 여전히 유효한, 아니 오히려 오늘날 더 절실하게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박한 밥상>은 헬렌 니어링 여사가 직접 밝힌 바와 같이 '복잡하고 세련된 사람들을 위한 복잡한 음식이 아닌,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위한 소박한 음식'을 소개합니다. 일명 요리하지 않는 요리책으로도 불립니다.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치우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간단한 요리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몇 시간이나 공들여 만든 음식들을 30분 만에 뚝딱 해치웁니다. 치우는 데는 또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요. 뭔가 이상합니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우리는 왜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 걸까요? 요리하기가 즐겁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이 행복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정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후자에 속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화로운 삶>에서 한 차례 소개한 바와 같이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는 평생 채식을 즐기며 건강하게 장수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채식을 즐겼지만, 그렇다고 기호를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샐러드에 치즈나 꿀을 넣는가 하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즐기기도 했으니까요. 보통 비건은 고기, 생선, 달걀, 우유, 유제품을 먹지 않습니다. 치즈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건 곧 우유와 유제품을 먹는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헬렌 여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강경론자 친구들은 유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비난하고,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여행 중 달걀이나 우유가 든 음식이 나오면 우리는 그대로 먹을 것이다. 만약 고기가 있으면 먹지 않을 것이다. 일관성이 없다고? 그렇다. 하지만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 매사에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요. 얼마나 솔직하고 용감합니까. 비건은 완벽해야 한다는 선입견에 멋지게 제동을 걸어주었습니다. '어, 이러면 비건도 해볼 만하겠는데.' 생각하게 된 건 헬렌 여사 덕분입니다.


헬렌 여사는 육식에 반대했지만, 채식할 때도 식탁에 오른 음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육식 습관을 버리고 채식을 한다 해도, 우리가 생명체를 꺾어서 삼키고 소화하게 된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식사할 때 무, 당근, 상추, 사과, 오렌지에게 사과한다. 어느 날인가 우리가 피부에 햇빛을 받고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결국 이러한 소망은 스콧 니어링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소박한 밥상>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배워야 하는 건 사실 요리법이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이들 부부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소비할까? 식물은 땅에서 중요한 존재이다. 나는 나무를 자를 때면 나무에게 인사를 보낸다. 데이지나 팬지꽃을 뽑을 때나 사과나 무를 깨물 때면 내 마음은 오그라든다. 내가 뭐길래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단 말인가? 우리는 지상의 모든 것에 연민을 갖고, 최대한 많은 것에 유익을 주고, 최소한의 것에 해를 끼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대목을 읽을 때는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길가에 핀 꽃을 꺾으며, 텃밭에서 싱싱한 상추나 오이를 수확할 때도 이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메마른 마음의 사막에 빨간 데이지 꽃 한 송이 피우면 좋겠습니다. 데이지의 꽃말은 희망, 평화니까요.


<소박한 밥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요리책을 쓰게 된 동기와 요리나 채식에 대한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고, 2부는 헬렌 여사가 직접 만든(또는 다양한 요리책에서 참고한) 간단한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찌나 간단한지 "만일 가로 세로 9 x 15 센티미터 카드에 다 적지 못할 조리법이라면 잊어버리자."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계량도 하지 않습니다. 그럴싸한 사진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 뮤즐리

- 귀리 (쉽게 무르지 않는 것으로) 2컵

- 사과 (껍질 벗기지 말고 갈아서) 4컵

- 견과 (갈거나 다져서) 또는 해바라기 씨앗 1/2컵

- 건포도 1/4컵

- 레몬즙 (껍질 간 것을 첨가해도 좋다) 1큰술

- 사과는 잘게 썬다. 재료를 모두 섞어 즉석에서 먹는다. 단맛을 좋아한다면 꿀이나 메이플 시럽을 넣는다.


※ 바나나 두부 푸딩

- 바나나 잘 익은 것 3개, 두부 2모, 메이플 시럽 3큰술, 계핏가루나 너트맥 약간

- 바나나를 블렌더에 넣고, 두부를 깍둑썰기해서 바나나에 섞고 메이플 시럽을 넣는다. 재료를 함께 블렌더에 간다. 그릇에 담고 위에 계핏가루나 너트맥을 뿌려서 낸다.


요리책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합니다만, 이것이 작가의 의도입니다. 간편식, 밀키트, 배달의 민족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계륵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왠지 불편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는 남이 해 준 식사라는 것을요.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평생 잊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채식을 지향한다고 해도 채소와 과일을 다듬고 씻는 일은 꽤 번거롭습니다. 손가락 몇 번만 까딱하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만 돌리면,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맛 좋은 요리가 완성되는 멋진 시대니까요. <소박한 밥상>은 '주부의 가사 노동을 절반으로 줄이는 방법'을 제시하려 했지만, 오늘날 한참 뒤떨어진 방법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믿습니다. '오늘은 뭘 해 먹지?'라는 질문에 담긴 어머니의, 남편의, 아내의 마음을요.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픈 마음 말입니다. 때로는 배달 음식을 시켜먹더라도, 때로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더라도 그 마음만은 언제나 변함없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그래서 어느 한가한 주말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소박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할 때 무심히 이 책을 꺼내보면 좋겠습니다. 매사에 일관성 있게 대처하는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니, 훌륭합니다. 소박할수록, 날것일수록 더 건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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