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뜨거운 여름

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25년 7월

by 조이홍

민준은 신경질적으로 계기판을 돌려 에어컨 바람 세기를 최대치로 조절했다. 구멍 난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차가운 공기가 금방 그의 아이오닉 7을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 한가운데로 옮겨다 놓았다. 귀여운 북극여우는 보이지 않았지만 차 안이 선선해지면서 뾰족했던 그의 마음도 조금 뭉툭해졌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에어컨과 떨어진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다. '어머니에게서 난 인간은 에어컨 곁에서 생을 마감한다'라는 농담이 다 유행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윙윙거리는 에어컨은 언제나 차가운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고지식한 태양은 한순간도 게으름 피울 줄 몰랐다. 비스듬히 내리꽂는 열기에 당장 단단한 아스팔트가 녹아내려도 조금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아침부터 참 열일한다고 민준은 빈정대는 투로 중얼거렸다. 지난밤에도 지독한 열대야로 잠을 설쳤으니 살인적인 더위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리라는 뉴스가 연일 포털을 도배했다. 지난해에도, 그 지난해에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뉴스가 머리기사를 장식했었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 우화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날씨와 관련한 뉴스를 믿지 않았다. 객관적 사실과 면밀한 관측에 근거한 뉴스들만 억울했다. 네스프레소의 풍부하고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카프리치오를 두 잔이나 연거푸 마시고 차가운 물에 샤워까지 하고 나온 민준은 자꾸만 아래로 내려앉는 눈꺼풀이 자신의 몸무게보다 백 배는 더 무겁게 느껴졌다.


월요일 출근길 정체야 반려인 손에 이끌려 애견 유치원에 등원하는 강아지들도 다 아는 사실인지라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는데 아마도 죄다 그와 똑같은 허튼 바람을 품었나 보다. 8차선 도로가 이미 명절 귀경길 고속도로처럼 꽉 막혔다. 30분째 껌뻑거리는 신호등만 쳐다보는 데 신물이 난 민준은 P2P 대출회사 'Pooma-E'라는 스타트업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킨 어느 20대 기업인의 성공담을 담은 <20대에 성공하는 20가지 비법>이라는 제목의 오디오 북을 멈추고 실시간 교통 상황을 전해주는 팟캐스트를 틀어달라고 가시 돋친 말투로 시리(Siri)에게 부탁했다. 영리한 AI가 민준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한 마디 군소리 없이 ‘이 시간 교통 정보’ 앱을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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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건강, 동물 복지, 지구환경에 기여하는 대안육 브랜드 베스트 미트와 함께 하는 이 시간 교통 정보입니다. 아, 정말 힘든 월요일 아침입니다. 출근길 정체를 피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운전자분들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의아해하실 듯합니다.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모든 간선도로에 빨간불이 들어왔습니다.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도 마치 거대한 주차장을 연상케 합니다. 동부간선도로 성동교 아래 화물차끼리 충돌하는 사고까지 나면서 강변북로 이촌동 부근에서 성수 방향으로 차량 흐름이 매우 더딥니다. 내부순환로 길음동 부근에는 고장 난 전기차가 흐름을 방해해 신내동에서 신영동 방향으로 진행도 무척 더딥니다. 성산대교 건너 도심 진입도 지체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내부순환로 홍은동까지 꽉 막혀있고 옆으로 성산로도 마포구청에서 이대 후문까지 긴 구간 정체입니다. 이 같은 출근길 정체의 원인은 바로 어젯밤 발생한 블랙아웃입니다. 이상 고온 현상으로 냉방 수요가 급증해 이 같은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고 한국전력공사는 밝혔습니다. 오전 3시부터 긴급 복구팀이 투입됐지만, 여전히 도심 일부에서 정전 사태가 계속되고 있어 교통 신호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출근 준비 중인 분들은 이점 참고하셔서 가능하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 시간 교통 정보 김나연이었습니다.”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통통 튀는 매력적인 목소리가 오늘은 우울한 소식만 전했다. 민준은 운전대 위로 머리를 풀썩 떨어뜨렸다. 어느 해 보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사상 최대 폭염이 지구촌을 강타하더니 며칠 전부터 유럽 몇몇 국가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했다는 외신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바로 어제 오후 한 고위 관료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 정부는 블랙아웃에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자신 있게 설명했는데 1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대규모 정전이 그가 사는 부자 동네를 포함해 대한민국 심장 서울을 마비시켰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무실이나 대규모 시설물 가동도 하지 않은 한밤중에 말이다. 블랙아웃이 한낮에 발생했다면 아마도 엄청난 재앙으로 번졌을지도 몰랐다. 민준은 블랙아웃이 차라리 모두가 잠든 밤에 일어나 다행이라고 여겼다. 정전의 여파라고 해봤자 냉장고에 보관해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렸다거나 출근길 정체가 고작일 테니.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하면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올해는 특히 노르웨이가 이상 고온으로 몸살을 앓았다. 노르웨이는 고위도 지역에 자리 잡았지만 아열대 순환 해류인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한 날씨가 특징이었다. 하지만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나 상승하면서 이상 고온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특히 이번 여름에는 수도 오슬로가 기온 관측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40도를 기록했다. 7월 평균 기온이 15℃ 안팎인 오슬로가 역사상 최대 기온을 기록하자 전 세계 신문들이 ‘노르웨이가 녹고 있다’라는 자극적인 머리기사를 앞다퉈 내보냈다. 사실 기사 내용에 비하면 제목은 순한 편에 속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철도 선로가 뒤틀려 열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해 철도 운행이 전면 취소되었고, 가르데르모엔 국제공항에서는 활주로 일부가 부풀어 올라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운송 수단이 멈추자 연이어 물류 대란이 일어났다. 식량과 생필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에 재난은 또 다른 재난을 촉발시켰다.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인 적색경보를 발령해 학교를 휴업하고 관공서와 기업에는 재택근무를 권고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노르웨이 가정 대부분이 에어컨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폭염으로 일만 명 이상이 숨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까지 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렸다. 언제부턴가 선진문명사회라는 유럽에서도 이상 고온으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 대부분이 기후 약자였다. 가난한 이들에게 폭염은 암이나 바이러스보다 몇 곱절은 더 가혹했다. 케임브리지대 실존위기연구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기후 전문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3년 전에 영국이 겪은 고통을 이번에는 노르웨이가 고스란히 겪는다며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이 인류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그리고 더 불규칙하게 불어 닥치리라 경고했다. 아울러 지금이라도 각국 정부와 기업들, 그리고 개인이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한다면 3년 후에 ‘스웨덴이 녹고 있다’라는 머리기사는 보지 않으리라는 간절한 희망도 함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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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적으로 빵빵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민준은 미어캣처럼 머리를 곧추세워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겨울잠 자는 반달가슴곰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던 자동차들이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정체가 풀리는가 싶었다. 액셀러레이터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에 아주 조금 힘을 주자 그의 전기차가 잔잔한 호수 위 소금쟁이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지구 온난화에 관심 많은 유별난 아버지 덕분에 그 역시 어릴 때부터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일상에 익숙했다. 아직은 여러모로 불편한 전기차를 타고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는 비건 식단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했다. 주말에는 마음이 맞는 이웃 주민들과 플로깅으로 동네를 청소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 행동에 색안경 끼고 바라보던 직장 동료들도 하나둘 그에게 탄소발자국 줄이는 방법에 대해 묻곤 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민준은 궁금했다. 그가 태어난 이래 지구 평균 기온은 꾸준히 상승했다. 그와 함께 탄소발자국을 줄이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도 지구는 갈수록 더 뜨거워졌다. 수십 년이 지나면 과연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꿈틀거리며 기어가던 반달가슴곰들이 비로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민준도 속도를 높였다. 문득 오늘 점심은 채수로 맛을 낸 시원한 평양냉면 한 그릇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유난히 더운 여름 아침이었다. (끝)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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