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24년 4월

by 조이홍

완연한 봄이 거리에 가득했다. 일곱 빛깔 솜사탕처럼 화사한 외출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자동차들로 빈틈없을 2차선 도로가 손을 맞잡은 연인들과 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숲을 헤집고 걸어가는 번거로움은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이동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핫스폿에서 몇십 분째 차례를 기다려도 누구 하나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일 년에 딱 한 번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만나는 날 사람들 마음도 덩달아 활짝 피었다. 3월 말, 만개한 벚꽃이 남도를 화사하게 물들이면 4월 초순에는 어김없이 대한민국 중심 서울에도 화려한 벚꽃축제가 펼쳐졌다. 예년보다 사흘이나 앞당겨졌지만 팝콘처럼 터진 꽃망울 앞에서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명성이 자자한 벚꽃길 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여의도 윤중로였다. 국회의사당을 끼고 한강변을 따라 이어진 1.7km에 달하는 거리는 1600 그루의 왕벚나무가 마치 누군가가 동시에 전원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일제히 꽃을 피워 숨 막히는 장관을 연출했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변종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돼 폐쇄되었다가 1년 만에 다시 개방되어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수도권 곳곳에, 심지어 각 동네마다 아름다운 벚꽃길이 한두 군데 있었지만, 사람들은 윤중로의 벚꽃이 더 특별하기라도 한 듯 이 길에 열광했다. 살랑대는 한강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은 이들은 천국에도 계절이 있다면 분명 봄이리라 확신했다.


완벽하게 평범한 봄날이었다. 자로 잰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왕벚나무 주위로 노란 꽃망울이 예쁜 개나리들도 상춘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품 넘치는 하얀 벚꽃이 백설공주라면 활기찬 개나리꽃은 톡톡 튀는 매력을 지닌 일곱 난쟁이들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었다. 단체로 외박이라도 나왔는지 한 무리의 장병들이 구식 디지털카메라로 시끌벅적대며 개나리 사이사이에서 봄날의 추억을 박제했다. 첫 데이트인지 왠지 부자연스러운 앳된 얼굴의 커플이 닿을 듯 말 듯 거리를 유지한 채 한마디 말없이 소란스러운 장병들 사이를 재빨리 지나쳤다. 노란 개나리가 궁금했는지 아빠 어깨 위에서 내려달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보채던 아이가 발이 땅에 닿자마자 부리나케 꽃밭으로 내달렸다. 알에서 막 깨어난 병아리 두 마리가 앙증맞게 그려진 꼬까옷을 입은 아이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짹짹 참새 소리가 났다. 뒤뚱뒤뚱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아이는 용케 넘어지지 않았다. 뽀얀 고사리손이 마침내 작은 꽃 한 송이를 움켜쥐었다. 아이는 태어나 처음 꽃을 보는 양 한참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세상 다정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의 부모는 행여 꿀벌이라도 나타날까 주위를 살폈다. 벚꽃과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핀 윤중로에서 노랗고 까만 곤충은 첫 번째 경계 대상이었다. 소싯적 윤중로 벚꽃 데이트를 즐기다 꿀벌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던 아이 엄마로서는 신경이 더욱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윙윙대는 소리만 들려도 아이를 낚아채 내달릴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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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의 온기 치고는 뜨거운 바람이 불현듯 윤중로를 훑으며 퍼져 나갔다. 근처 커다란 베이커리에서 문이라도 열어 놓은 것처럼, 더운 공기가 잘 익은 식빵처럼 부풀어 올라 길 위를 덮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한 아이 엄마는 입고 있던 얇은 하늘색 카디건을 벗어 한쪽 팔에 걸치려다 그만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하늘색 카디건이 떨어진 벚꽃 잎 위로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으려던 순간 아찔해진 그녀는 마치 얼음이라고 외치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1초 후, 아무도 땡 해주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옷을 집어 팔에 걸친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벚꽃은 여전히 탐스러웠고, 노란 개나리 사이를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는 남편도 그대로였다. 하늘도 태양도 구름도 심지어 장병들까지 조금 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곳이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나 보던 멀티버스가 아닐지 아주 잠깐 상상했다. 아무튼, 토끼굴로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물선 이질감 속에서 서성거리던 그녀는 결국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 세계에는 꿀벌이 없었다. 벚꽃이나 개나리꽃 주위를 윙윙거리며 부지런히 꿀을 모아야 할 꿀벌들이 아까부터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건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정말 한 마리도 없었다. 꽃이 있는 곳에 벌이 없다는 건 바닷물 속에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자연의 이치에 닿지 않았다. 진달래와 철쭉이 활짝 핀 군락까지 꼼꼼히 살펴봤지만 꿀벌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윤중로 일대에는 꿀벌이 없다는 그녀의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유독 무더운 4월이었다. 배낭에서 스타벅스 텀블러를 꺼낸 그녀는 시원한 보리차를 숨도 쉬지 않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뱃속까지 순식간에 내려갔다. 그제야 그녀는 본래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꿀벌이 사라질 리 없었다. 오히려 꽃구경을 즐기기에 꿀벌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궁금했다. 왜 자신이 뜬금없이 꿀벌에 꽂혔을까. 지난밤 아이가 보채 밤잠을 설쳤다. 게다가 아침 일찍부터 봄나들이 준비를 하느라 쌓였던 피로가 곱절로 늘어났다. 아이 이유식이며 간식에 부부가 함께 먹을 점심 도시락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였다. 문득 잠을 쫓으려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꿀벌 200억 마리가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던 게 기억났다. 꿀벌은 1kg의 벌꿀을 모으기 위해 400만 송이의 꽃을 이동하는데 그 거리가 무려 지구 4바퀴에 달했다. 더욱 놀라운 건 꿀벌의 수분을 통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작물 100종 가운데 75종이 생산된다는 사실이었다. 그토록 많은 꿀벌이 사라진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들쑥날쑥한 기온과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뉴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하나인 아인슈타인의 말을 전하며 마무리되었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비몽사몽간에 들었던 뉴스가 그녀의 뇌리에 남아 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텀블러를 배낭에 넣고 아이와 남편이 기다리는 개나리 꽃밭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모처럼 봄나들이 나온 김에 저녁은 근사한 비건 식당에서 외식하기로 했다. 마침 강바람이 불어와 벚꽃비가 내렸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탐스러운 벚꽃들도 흔적 없이 사라질 터였다. 하룻밤 풋사랑처럼 벚꽃의 시간도 짧지만 강렬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흥겨운 노랫소리와 함께 유난히 더운 봄날도 저물어 갔다.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