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음모론에 휩싸이다
글쓰기 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개인용 노트북이 해커에게 공격당했다. 그것도 국가 기관이나 기업만 당한다는 '랜섬웨어' 공격이었다. 랜섬웨어란 '사용자가 정상적으로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든 후 이를 볼모로 금전을 요구하기 위하여 퍼뜨리는 악성 파일'을 의미한다. 가끔 넥플릭스나 유튜브를 시청하긴 하지만, 이 두 채널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러니 해킹 같은 외부 공격에 만반의 준비를 갖춘, 플랫폼이니 이를 통해 해커가 악성 파일을 심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P2P 플랫폼을 통해 영상(영화나 드라마)을 내려받는 일도 없었고, 불순한(?) 사이트에도 접속하지 않았더랬다. 고작 브런치에 접속해 글을 쓰거나 Pixabay에서 글의 내용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찾는 게 전부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한낱 이름 없는 작가(지망생)의 노트북을 해킹했을까? 성공한 작가들도 많은데? 김OO, 김O, 유OO 등 성공한 작가님들께는 죄송합니다만. 노트북이 먹통이 되어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생각이 거기에 미쳤다. 도대체, 왜?
음모론 따위는 절대 믿지 않았지만, 순간 퍼뜩하고 떠오른 건 최근에 브런치에 올린 '기후 변화' 관련 글들과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였다.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글들임에는 틀림없었다. 말로는 ESG 경영을 외치고는 온갖 지구 환경에 해로운 물질을 대기로, 하천으로 흘려버리는 기업들이 그럴 것이고, 국민과 미래 세대를 위한다면서 정작 국민과 미래 세대는 안중에 없는 정치 세력도 그러할 터였다. '아, 내가 누군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구나!' 싶었다. 네이버를 검색해보니 랜섬웨어에 공격당하면 복구할 방법이 없었다. 컴퓨터를 포맷하거나 해커에게 돈을 주고 풀어달라고 해야 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평소에는 절대 입에 담지 않는 험한 말들이 번호표를 뽑고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컴퓨터에는 영원히 공개되지 않을 청소년 성장 소설 한 편,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 <뜨거운 지구 연대기>에 아직 소개하지 않은 단편소설 두 편과 몇 가지 소재들, 그리고 랜선 제주 여행을 담은 여행 수필 두 편, 가족사를 담은 글 한 편 등, 지난 3년 동안 정성스레 쓴 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출간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편 한 편 모두 의미 가득한 글들이었다.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알린 대가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정녕 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인가! 별별 생각이 머리를 어지러뜨렸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팠다. '어, 나 좀 멋진데!' 스스로 생각하니 해커로부터 공격이 왠지 뿌듯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좋아, 글이야 또 쓰면 돼지!' 자꾸만 멈춰서는 노트북을 바라보며 기-승-전-결이 완벽한 혼자만의 소설을 썼더랬다.
퇴근 시간쯤 밝혀졌지만 이번 랜섬웨어 공격은 나만 당한 게 아니었다. 사실 해커 공격도 아니었다. 한 보안 기업의 백신 프로그램인 '알약'이 업데이트를 하면서 정상 프로그램을 랜섬웨어로 착각해 지속적인 알림 메시지를 보내는 오류가 발생했다. 새로운 버전의 알약 백신은 사용자에게 랜섬웨어를 알리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했는데, 이는 윈도우 운영체제(OS)에 설치된 기본 프로세스를 악성코드로 잘못 인식한 결과였던 것이다. 기본 프로세스를 악성코드로 착각했으니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리 없었다. 결국 뉴스에서 소개한 방법으로 업데이트된 알약 파일을 삭제하니 그제야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휴, 누군가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 다행이군!'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조금 섭섭하기까지 했다. 해킹 공격을 당했더라도 좀 멋졌을 텐데. 어쨌든 이번 해프닝 덕분에 3년 동안 쓴 글을 외장하드에 백업해 두었다. 미래의 어느 날, 진짜 누군가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릴 지도 모르니 말이다.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더 나은 지구를 위해서 쓰고 또 쓸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