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명절 연휴

by 조이홍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동그랗고 노랬다. 추석 연휴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는데 여전히 한 입 배어 문 호떡처럼 어정쩡한 모양새가 땡그란 보름달로 변할까 싶었는데, 추석 당일 달은 정말 보름 보름 열매를 먹은 호박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올해 추석은 좀 이르다 싶었는데 보름달은 예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그런 기적을 일으켰을까? 어스름 저녁 가을 하늘은 왜 그리 한 폭의 수채화 같은지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은 달달하다고 누가 그러던데 생판 거짓말이었다. 달기는커녕 짭짤했다. 그래도 지치고 힘든 일상에 한가위는 아주 잠깐이지만 유쾌한 웃음과 가족의 정을 새삼 깨닫는 훈훈함을 몰래 곁에 두고 떠났다. 행복했다. 고맙다고 인사도 못했는데 멋쩍은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버렸다. 모처럼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명절 연휴, 모두가 행복했는지 별개 다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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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향하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아내와 약속했다. 모처럼 시월드에 입성하는데 모두가 행복한 추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새벽 일찍 일어나 피곤한 탓인지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아내는 '말이라도 고맙네' 했지만, 이번에는 말로만 그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요맘때가 되면 '한가위 차례상'이 종종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한껏 격식 차린 차례상은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허례가 되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오히려 정통 양반집의 차례상을 보여주며 단출하게 지내는 게 '예법'에 맞는다고 강조했다. 차례상에서 허례허식만 걷어내도 손품이 절반으로 줄어들 테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 손주들에게 맛난 음식 먹이고픈 '어머니의 마음'에는 걷어낼 허례가 없다. 40년을 차려온 차례상을 이제와 바꿀 수 있겠냐며 단출한 차례상을 반대하던 어머니도 웬일인지 이번에는 "그래, 다음 설에는 간단하게 차리자." 하셨으나, 손주들이 할머니 전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시고는 "손주들이 이렇게 맛있게 먹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겠어." 하신다. 어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손수 전을 부치실 터였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거운, 아직은 자식·손주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게 어머니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명절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며느리다. 모든 며느리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대부분은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 집은 이번 명절에 R&R을 분명하게 나눴다. 고향집(아내에게는 시월드)에서 상차림은 아내, 설거지는 내가 맡았다. 추석 당일 차례상을 물리고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 설거지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예전처럼 친적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스무 명 이상은 함께 식사를 했는데 이제는 조촐하게 예닐곱이 전부다. 왕왕 서른 명이 넘을 때도 있어 설거지 담당은 계속 설거지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차례상 때문에 설거지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제기로 사용한 접시와 식사한 그릇 등을 합치니 60개가 훌쩍 넘었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었고, 다 닦으니 돌탑처럼 싱크대에 수북하게 쌓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침 식사 후 오랜만에 만난 친적들과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내는 이보다 많은 설거지거리와 씨름했던 것이다. 그러니 귀향길이 즐거운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5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저절로 꺼졌을 리 없다). 상을 물린 후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겠다고 덤비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그래, 엄마는 신식이니까 아들이 설거지해." 하신다. 그래도 안쓰러우셨는지 한참 설거지 중인데 뒤에 오시더니 나지막이 "힘들어서 어떡해!" 하신다.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니 공평하게 아들이 하는 게 맞다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솔직히 딱히 힘들지도 않다. 설거지는 힘듦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처갓집에서도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명절이 일 년에 열 번 있는 것도 아니고 딱 두 번뿐인데 이 정도쯤이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명절 한 번 보내면 그 후유증으로 이혼한 부부가 늘어난다는 보도가 또 일부 언론을 장식할 터였다. 뜻깊은 명절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완성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요즘은 전선이 많이 후퇴했지만 여전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만 배려하면 누구나 행복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은 아내도 나도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일찍 집을 나서려고 5시에 맞춰놓은 알람을 누가 껐을까?


20년 걸렸다.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보내게 된 건. 누구 하나라도 녹초가 되지 않는 명절 말이다. 그전에도 가끔 설거지를 했고, 전도 부쳤다. 하지만 그건 단지 '보조자'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공평하게 책임지는 '주연 배우'가 되었다. 그랬더니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은 편했다. 내가 불편하면 누군가는 편해진다. 그러니 내가 마냥 편하면 누군가는 불편하리라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하향 평준화가 아니다. 모두가 행복한 명절을 향한 서툴지만 위대한 한 걸음이다. 모두가 행복한 명절 연휴를 꿈꾼다. 해외여행 가지 않아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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