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30년 5월
자율주행 고속버스가 목적지 부근에 다다르자 지능형 어시스턴트가 도착 알람 시스템을 작동했다. 어둑어둑한 버스 안에 유행이 한참 지난 무지갯빛 조명이 반짝 켜졌다. 휘황찬란한 불빛에 놀라 부스스 깬 상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단잠의 여운을 좇았다. 이어서 꽃무늬가 화려한 커튼이 연극 시작을 알리는 무대의 막처럼 일제히 젖혀졌다. 정오의 강한 햇살이 버스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췄다. 그와 동시에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경쾌한 비트가 잠에 취한 버스를 흔들어 깨웠다.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남성 3인조 힙합 그룹의 노래였다. 그제야 사람들도 하나둘씩 깨어나 좌석 등받이를 바로 세웠다. 서울과 환경 수도인 한울을 오가는 자율주행 버스의 인공 지능은 레트로 감성에 흠뻑 취한 듯했다. 승객들도 그런 취향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한껏 기지개를 켜는 아저씨도, 벌써 내릴 채비하는 엄마와 어린 딸도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차창 너머로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녹색 물결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릿느릿 스쳐 지나갔다. 개성 넘치는 건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푸르름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듬성듬성 구멍이 뚫린 이중 구조 건물은 외벽이 온통 덩굴과 식물들로 뒤덮였다. 또 어떤 건물은 층마다 다른 테마로 독특한 정원들을 꾸며 놓았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많은 나무와 식물로 뒤덮인 도시,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환경 수도 한울이었다. 상혁은 깨지 않는 잠을 쫓으려 자신의 두 눈을 손바닥으로 꾹꾹 문질렀다. 오늘 하루 월차를 내기 위해 할당된 이틀 치 물량을 늦은 시간까지 배송했다. 새벽녘에 겨우 끝마치고 두 시간 정도 눈 붙일 수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신경이 쓰이는 탓인지 뜬눈으로 지새웠다. 상혁에게 고향이란 땡볕에 오래도록 버려둔 김 빠진 콜라와 같았다. 청량감도 톡 쏘는 상쾌함도 없는 불쾌한 달짝지근함. 고향 따위 잊고 살면 그만이었고 20년을 그렇게 잘살았다. 간간이 텔레비전 뉴스나 포털 기사에서 고향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지만, 머나먼 외계 행성에서 벌어진 사건인 양 무관심했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쫓겨 애써 외면할 것까지도 없었다. 그저 수많은 도시들 중 하나라고 치부했지만, 20년 만의 귀향길이 긴장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오래전 고향을 등진 상혁을 한울행 버스에 밀어 넣은 건 사흘 전 그가 일하는 택배회사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자신을 한울 특별자치시 환경녹지국 산림공원과 공무원이라 소개한 여성이 아버지의 부고를 전했다. 상혁은 자신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던가 아주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다. 20년 전, 고향을 도망치듯 떠나게 한 그 사람을 한때 아버지라 불렀다. 아버지, 아니 그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누군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는데 그의 죽음 앞에서 상혁은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느끼지 않았다. 몇 달째 극심한 가뭄이 계속돼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처럼 바짝 마른 눈물샘은 한 방울의 눈물도 허락하지 않았다. 생뚱맞게도 다른 질문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왜 그 사람의 죽음을 보건복지국의 복지정책과나 노인복지과가 아니라 산림공원과에서 전했을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는 마치 자동응답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건조하고 사무적이었다. 마치 상대가 그렇게 느끼도록 단단히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메마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의 죽음에 따르는 몇 가지 행정 처리를 위해 한울시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기분 내키는 제안이 아니었다. 막 거절 의사를 밝히려던 찰나, 사하라 사막의 모래 알갱이 같은 목소리가 상혁의 말을 가로챘다. 며칠 내로 행정 처리를 하지 않으면 상당한 금액의 과태료가 부과되리라는 설명이었다. 1g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상혁에게는 왠지 협박으로 들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모범 공무원의 단호함이 아니었더라면, 주말도 반납하고 택배 상자를 날라야 하는 절박한 사정만 아니었더라면 상혁이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일은 없을 터였다.
2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은 상혁이 떠났던 때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아니 달라졌다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의 기억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고향은 차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두 이미지의 차이는 지구와 화성 거리만큼 멀었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마을에 고층 건물은 고사하고 읍사무소와 보건 출장소가 들어선 행정센터가 유일한 복층 건물이었다. 2천여 명 남짓한 인구에 교육기관이라고는 전교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은 초등학교 분교 하나가 전부였다. 중학교부터는 왕복으로 세 시간이나 걸리는 인근 도시로 다녔다. 분교를 중심으로 문방구, 분식점, 중국집, 치킨집, 편의점, 코인 노래방, 이발소와 미용실, 빵집과 다방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거리를 벗어나면 온통 드넓은 논과 밭뿐이었다. 상남평야 끝자락에 자리해 주로 벼농사를 지었고, 생강이나 감자, 복숭아를 재배했다. 당시로서도 흔하지 않은 시골 깡촌 풍경이었다.
안타깝게도 고즈넉한 풍경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어느 날부턴가 마을 주위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었다. 커다란 택배 상자 같은 물류창고가 너른 들판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도 24시간 초고속 화물 처리가 가능한 첨단 물류단지였다. 인근 도시보다 땅값이 저렴하고 사방으로 도로가 뻗어나가는 편리함 때문에 거리가 멀다는 단점에도 마을은 점점 거대한 물류단지로 변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걱정 없고 연비도 개선된 수소 트럭 도입도 한몫했다. 온 나라가 연거푸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자 온라인 구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을 끝내기도 전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유행해 1년 내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다. 갈수록 증가하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택배회사는 더 많은 물류창고가 필요했다. 택배회사들은 싸고 넓은 땅을 원했고 상혁의 고향은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수십 년간 지켜오던 생업을 그만두고 논밭을 팔아 이웃 마을이나 도시로 떠나는 주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온 동네가 들썩였지만, 상혁의 아버지 성규만큼은 요지부동이었다. 성규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대농(大農)이었다. 고향에서 대대로 땅을 일궈 수만 평이 넘는 논밭에 인근 야산까지 소유했다. 성규네 땅을 밟지 않으면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언젠가는 멋진 정장을 입고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성규는 단 한 평의 땅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농사일이 기계화되고 자동화되어도 땅에는 언제나 사람 손길이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 그였다. 농사일이란 사시사철 억척스럽게 매달려도 숨 돌릴 여유조차 없는 고된 노동이었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는 상준, 상혁 형제도 농사일을 거들었다. 특히 상혁은 학생은 공부가 먼저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주말마다 빠짐없이 일손을 보탰다. 사실 모범생인 상준과 달리 상혁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논밭에서 땀 흘리는 게 훨씬 마음 편했다. 과묵한 성규도 공부하라고 가끔 한마디 거들기만 할 뿐 더 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농사가 천직이라고 믿었던 성규는 누군가 자신의 뒤를 이어주기를 바랐다. 땀 흘린 만큼 내어주는 땅을 누군가는 지켜야 하고 그게 둘째 아들이라면 좋을 성싶었다. 언젠가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으리라 마음먹은 성규는 틈틈이 어린 아들에게 농사짓는 법뿐만 아니라 들판이며 야산에 널린 나무와 식물에 대해서도 일러주었다. 수확을 앞둔 벼들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그 너머로 차가운 회색빛 물류창고들이 줄지어 있는 이질적인 풍경 안에 성규와 어린 상혁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성규의 까맣게 그은 얼굴과 너른 들판을 바라보는 깊게 팬 눈은 상혁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속 깊이 각인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