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歸鄕). Chapter 2

본격 픽스업 소설 <뜨거운 지구 연대기> 2030년 5월

by 조이홍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상혁을 태운 전기버스가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갔다. 버스 터미널이 자리 잡은 호수정원은 한울의 상업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숲이었다. 상혁이 잠들기 전 심심풀이로 검색했던 한울 관련 기사 내용이었다. 한눈에 다 담을 수도 없는 거대한 슈퍼트리는 15층짜리 빌딩과 맞먹는 50미터 높이의 인공 구조물이었다. 인공 나무 표면을 빼곡하게 덮은 지네발난과 콩짜개난과 같은 식물들은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뛰어나고 수직구조에서도 흙 없이 잘 자랐다. 나무 윗부분에는 고효율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 한울의 풍부한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굵은 기둥에는 빗물을 저장해두었다가 냉각수로 활용했다. 총 25그루의 슈퍼트리는 단순히 나무 모양을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에서 숲이 수행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환경 수도라는 이름에 걸맞은 친환경 슈퍼트리는 한울시의 상징이자 자랑이었다. 30미터 높이의 인공 폭포와 커다란 꽃망울이 예쁜 수국 정원,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아찔하게 핀 산책로, 때죽나무와 개서어나무, 그리고 십자고사리 등 곶자왈 식생으로 조성해 놓은 숲길을 차례차례 지난 버스가 마침내 정류장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상혁은 과학기술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 호수정원의 이색적인 풍경에 넋을 잃고 갓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져 버스에서 내렸다. 대기의 질감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낸 어떤 익숙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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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돌고 돌아 찾은 고향 땅은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옛날 모습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차라리 그 편이 마음 편하다고 자신을 달랬다. 머리 위에서 심술궂은 태양이 지독한 열기를 뿜어댔지만, 슈퍼트리와 수십만 그루의 나무로 둘러싸인 호수정원 일대는 늦가을처럼 선선했다. 상혁의 귀향을 반기는지 때마침 호수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상쾌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상혁은 미리 찾아 두었던 트램 노선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했다. 호수정원에서 트램으로 다섯 정거장만 가면 한울시 청사였다. 몇 가지 행정 처리만 마무리하면 된다고 했으니 서두르면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집에서 먹을 수 있을 터였다. 모처럼 까칠한 반려묘 하루에게 좋은 집사가 될 기회였다. 남자 혼자 살던 칙칙한 원룸이 하루와 동거를 시작한 이후 눈에 띄게 화사해졌다. 비단 집뿐만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혼자 안고 있는 사람처럼 그늘진 얼굴도 몰라보게 밝아졌다고 동료 기사들이 입을 모았다. 상혁은 트램 정류장이 있는 15번 슈퍼트리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울시 공식 SNS 계정에 소개된 것처럼 청사 건물도 다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공 기관 건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면에서 보면 지극히 단조로운 건물이었지만, 한울 중앙공원 쪽에서 바라보면 계단식 외벽을 따라 건물 옥상까지 구슬잣밤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붉가시나무, 참식나무 등 좀처럼 보기 힘든 난대기후 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한가운데로 계단을 따라 폭포수가 흐르고 그 주위에는 이름 모를 이끼와 덩굴 식물들이 빼곡하게 에워쌌다. 공원 중앙에 봉긋 솟은 봉우리와 함께 마치 제주도의 쌍둥이 오름을 보는 듯했다. 자율주행 트램에서 깜빡 졸아 두 정거장을 지나서 내린 덕분에 상혁은 스마트폰으로 보던 한울 청사의 참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한편으로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려대는 기후 변화 안전 안내 문자를 보면 뜨거운 지구를 조금이라도 식히기 위해 제대로 된 환경 도시 하나쯤 있어도 좋을 성싶었다. 살랑대며 부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는 제비꽃 가득한 꽃길을 따라 청산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물레방아가 제일 먼저 상혁을 맞이했다. 아직도 저런 구시대 유물이 남아 있나 의아했지만, 상혁은 시원스레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보자 무겁던 마음이 왠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투박한 나무 수로에서 떨어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리고 다시 인공으로 조성된 수로를 따라 로비 구석구석까지 흘렀다. 사람 손으로 만든 개천일 테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실개천에는 송사리며 버들치 같은 민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헤엄쳤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멱감고 물장구치던 개천에 놀러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순간,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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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을 저장해 재사용한답니다. 기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청사 안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죠. 권상혁 씨죠? 반갑습니다. 연락드렸던 산림공원과 서경희입니다.”

모범 공무원 그녀였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말투는 환청이었다는 듯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침 이슬을 머금은 강모래처럼 한결 보드라워진 목소리였다. 앞에 서 있는 여성의 나이를 도통 짐작할 수 없었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과 하늘색 셔츠에 검은 바지, 마지막 한 올까지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상혁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래서 처음 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를 뻔했다. 고지식한 공무원이란 선입견만 배제하면 커다란 눈망울과 혈관이 보일 정도로 맑은 피부의 경희는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지금의 상혁에게는 골칫거리만 안겨준 원칙주의자일 뿐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근데 제가 저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니까 권상혁이라는 걸요.”

“선한 눈매가 나무 할아버지를 똑 닮으셨으니까요. 참 저희 과에서 아버님을 나무 할아버지라고 부른답니다.”

“나무 할아버지요? 그 사람, 아니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이 유쾌하지는 않네요. 가족사가 좀 복잡해서요. 이제 뭘 하면 될까요?”

묘한 미소를 지은 경희가 상혁 곁으로 성큼 다가섰다.

“둘이 함께 좀 걸을까요? 이곳은 한울시의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지만 산책하기 좋은 코스도 많거든요.”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상혁은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목소리도 금세 뾰족해졌다.

“한울시 청사나 구경시켜주려고 이곳으로 부른 건 아닐 텐데요. 과태료 운운하며 겁주시더니.”

옅은 미소를 머금은 경희의 뽀얀 얼굴도 살짝 불그스레해졌다.

“과태료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권상혁 씨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상혁의 붉은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공무원은 거짓말로 사람을 오라 가라 해도 된답니까? 이런 게 직권 남용 아닙니까?”

“권상혁 씨를 꼭 뵙고 싶었습니다. 나무 할아버지께 부탁받은 일도 있고요.”

“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색할 정도로 오랜 세월 인연을 끊고 살아왔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둘 사이에 끼어드는 건가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말하면 지독하게 코끼리만 생각나는 법이다. 상혁이 아버지를 머릿속에서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기억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기억 너머에 상혁이 사랑했던 두 사람이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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