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글이 쓰고 싶어요!"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고

by 조이홍

팔랑팔랑 팔랑거리는 팔랑귀를 지녀 '책'에 쓰인 이야기는 맹신하는 나로서도 '글쓰기'와 관련된 책만큼은 꽤 날카롭게 읽는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라고 믿지만, 더러 "글쓰기 책은 별로인 것도 좀 있네"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하루빨리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테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다' 하는 책들도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어쨌든 나를 포함해 글쓰기 책을 선택한 독자들은 스킬이든, 비법이든, 지름길이든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얻을 목적으로 시간을 투자했을 테니 '꾸준히 쓰자 같은 교과서적인 말들'의 나열 앞에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까. 뭐, 결국엔 돌고 돌아 이 방법(꾸준히 쓰기)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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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편성준 작가님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읽게 된 건 꾸준히 글을 올리는 작가님의 성실함과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하는 공감 가는 글들 때문이었다. "아내 말은 늘 옳다"라는 인생관도 나와 잘 통했다. 사실 편 작가님뿐만 아니라 브런치를 통해 출간 소식을 알리는 작가님들의 책은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지인들에게도 추천한다. 기회가 닿으면 책방지기들과 함께 운영하는 독서모임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지만, 좋은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님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다. 동네 도서관에 작가님 책이 입고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가슴이 설렜다. 최근 아내가 "아빠 글 예전 같지 않아. 요즘 좀 재미없어졌어."라며 충격적인 고백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유머 감각도 꽤 있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쓰는 글들은 진지해도 너무 진지했다. 주제가 심각하다고 글까지 심각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기에도 애매했다. 게다가 인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고뇌의 연속인데, 그나마 잘 읽지도 않는 책(글)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는 독자는 없을 터였다. 작가님 말대로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닌데 (솔직히 지구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좀 내려놓고 가볍게 쓰고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아, 이제 웃기는 글을 쓸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물론 재미있게 써야겠다는 다짐은 확고해졌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웃기면서 동시에 페이소스가 배어있는 작가님만의 글쓰기 필살기를 전수받았으니 "음, 이제 웃기게 쓰는 일만 남았군." 해야 할 텐데,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허탈함과 분노를 느낀 건 아니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소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썼던 글과는 다른 글을 말이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정대만이 KFC 할아버지 같은 안 감독에게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흐느끼며 말한 것처럼, 왠지 울컥하는 무언가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마구 글이 쓰고 싶어진 것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미사여구 덩어리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나를 꾸밈없이 드러내는 그런 글 말이다. 구체적으로 콕 찍어 어디가, 어떤 문장이 그랬냐고 묻는다면, "이겁니다." 할 수는 없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작가님이 작은 씨앗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사람만이 그 씨앗이 어느새 싹을 틔워 열매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님은 친절하고 세심한 안내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제 공은 독자에게 있다. 지루한 글을 쓰느냐, 웃기는 글을 쓰느냐, 아예 쓰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는 그저 거들뿐이다.




편 작가님은 직장 생활 내내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나는 직장 생활 대부분을 작가님 같은 카피라이터를 포함한 광고대행사를 괴롭히는(?) 광고주로 보냈다. '광고주가 시 부분 심사위원이라면'을 읽을 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였다. 그래도 '착한' 광고주라고 자평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악덕 광고주였음에 틀림없을 듯했다. 대행사에서 가지고 온 크리에이티브(광고 비주얼과 카피)에 마치 빨간 팬 선생님처럼 두 줄 찍찍 긋고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수정해라 얼마나 지적질했는지 모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세상에 사는 광고인들께 이 자리를 빌려 머리 숙여 사과한다. 아시죠? 제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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