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자님이 지구를 구하셨습니다!
어젯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생명 하나가 무참하게 죽임 당한 참혹한 사건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건 대략 새벽 2시경이었다.
요즘 새로 장만한 삼성 갤럭시 핏 2에 푹 빠져 수면지수 만점을 추구하는 아내는 가볍게 코를 골며 숙면 중이었고, 나는 꾸벅꾸벅 졸며 심야 영화를 시청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요즘 한창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첫째 아이가 신경 쓰여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사실 뭐 딱히 해주는 건 없었다. 그저 하루 공부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에게 "오늘도 수고했어, 잘 자."라는 인사말을 건네고 싶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무슨 영화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중저음의 무딘 쇳소리가 들려왔다. 잠결에 볼륨을 이렇게 크게 틀어놓았나 싶어 리모컨을 더듬거리며 찾는데 소리의 근원지는 텔레비전이 아니라 공부방임을 깨달았다. 곧이어 아이의 절절한 절규가 들려왔다. 1·4 후퇴 때 잃어버린 가족이라도 다시 만난 것 같은 애절함이었다. "아빠, 빨리 와봐. 도와줘!" 게다가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도 들릴 것 같았다. 뭔 일이 나도 단단히 났다 싶었다. 후다닥 아이에게 달려갔다.
어른들 말씀대로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아이는 책상 위에 올라가 있고 교과서와 참고서들은 방바닥에 흐트러져 있었다.
"왜, 뭔 데, 무슨 일이냐? 공부가 너무 힘들어?"
"아니, 저기 거미."
"뭐?"
"거미 있다고. 그냥 작은 거미가 아니라 거의 타란툴라야! 빨리 잡아줘, 제발!"
"어디 있는데?"
"저기 선풍기 밑에 있잖아, 빨리!"
"악!"
잠시 후 책상 위에는 어른 한 명이 아이 한 명과 함께 벌벌 떨며 불안한 눈빛으로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그 생명체는 거미가 아니었다. 외계인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 거미가 저렇게 클 리 없다. 내가 아는 거미라면 살짝 귀엽고 엉덩이 부분에 늘, 보이지는 않지만, 실이 나와 있어 그걸 낚아채 창문 밖으로 놓아주지 않았던가. 그런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건 분명 거미는 아니었다. 절대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도와주세요, 절대자님!"
한밤중의 소요는 아내의 출현으로 일단락되었다. 야밤에 누가 감히 숙면을 방해하냐며 격노한 얼굴로 공부방에 등장한 아내는 책상 위 두 남자를 보고, 두 남자의 시선이 닿아 있는 선풍기 아래를 보더니 쿨하게 물티슈를 집어 거미를 짓눌러 버렸다. 그리고는 물 티슈 두 장을 꺼내 사체를 돌돌 쌓아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그리고는 쿨하게 한마디 남기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지.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남자들이…."
절대자님이 구한 건 단지 두 남자가 아니었다. 아내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한 것이다.
주말 아침, 두 남자의 난리 덕분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고 투덜대던 아내는 동네 공원으로 달리기 하러 갔다. 쓰레기 버리기 담당인 아이들이 분리수거하러 나가기 전에 음료수 용기와 생수 용기에서 비닐을 제거하다가 자연스럽게 눈길이 쓰레기통을 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너무 놀라 '악'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제 아내의 완력에 짓눌러진 그 녀석이 쓰레기 사이를 유유히 기어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죽었는데, 외계인아 아니라 좀비였던 게냐! 아내가 없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는 보호해야 할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갑자기 용기가 치솟았다. '아내 몫까지 내가 책임저야 해!' 굳게 마음먹었다. 다행히 아내가 쓰레기통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덧대 놓았다. 두 손을 벌벌 떨며 얼른 비닐봉지를 벗겨 좀비 거미가 도망치지 못하게 꽁꽁 묶었다. 어찌나 심장이 떨리던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스마트폰으로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이 살아 있어. 빨리 집으로 와줘!"
아내가 없는 지금, 좀비 거미는 아직 쓰레기통에 있다. 빈틈없이 꽉 묶은 비닐봉지 안에.
'설마 느슨하게 묶은 건 아니겠지. 오 제발!'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