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와 의리를 지켰다! 의리!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굶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한국 서정시의 본류를 이어가는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 문득 떠올랐다. 최호승 시인이었던가 잠깐 헷갈리기도 했지만, 한 출판사가 덜컥 보잘것없는 내 글을 월간지에 실어주고 게다가 '저작료'도 지불한다고 했을 때였다. 내 글을 산다고요? 그것도 5만 원이나 준다고요! 넙죽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5만 원이면 우리 가족 모두는 어림없지만, 먹성 좋은 아이 둘 한 끼 외식 비용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회사에 막 들어가서 300명이 넘는 전 직원에게 단체 메일을 보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리 길지도 않고 복잡할 것도 없는 내용인데 'send' 버튼을 클릭하는 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오타나 비문이 없다는 걸 수백 번 확인하고도 두근거리는 심장이 멈추지 않았다. 속이 메슥거리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거의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send 버튼을 눌렀다.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은, 아니 회사는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혼자서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도 그랬다. '발행'이라는 걸 누르기까지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 독자가 '0명'이었는데도 발행하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을 홀로 방황했는지 모른다. 퇴고도 몇 차례나 했다. 글 한 편 쓰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과 에너지가 투입되는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물론 아주 소수는 예외일 테지만. 그저 뚝딱하면 글 한 편이 나오는 줄 안다면 크나큰 오해다. 하지만 그건 이쪽 사정이고, 저쪽(독자)에게는 노력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그저 좋은 글, 읽고 싶은 글을 읽으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고, 그 간격을 좁히는 이들만이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글 쓰는데 들이는 노력과 정성에 비해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 듯하다. 좋아서 쓰고 쓸 수 있는 글만 쓴다. 독자들이 원하는 글도 쓰고 싶지만, 사실 그걸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았다면 진작에 썼겠지. 도통 알 수 없으니 그나마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쓸 뿐이다. 이런 정식 작가도 아닌 사람의 글을 무려 5만 원이나 주고 월간지에 실어준다는데 제갈량의 진가를 알고 삼고초려한 유비에 비하지 못하랴!
글 한 편인데도 계약서가 오갔다. 드디어 계약이란 걸 해 보는구나 설렜다. 회사에서 10장도 넘는 계약서를 수없이 검토했는데 달랑 서너 장 계약서를 읽고 또 읽었다. '이런 문구가 들어가도 괜찮나?', '이건 작가한테 너무 불리한 거 아닌가?' 등등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위로 불순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정신 차려! 넌 아직 작가가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런데 해당 글이 들어 있는 <익숙한 제주 낯설게 즐기기>를 이미 올해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했다는 사실이 번뜩 떠올랐다. 새로 발행하면 독자들을 괴롭히게 될까 봐 꾸준히 고쳐쓰기만 해왔더랬다. 마침 그 글은 스무 편이 넘는 글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글이었다. 브런치북에 선정될 가능성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 희박했지만, 도의상 그 글만 따로 떼어 계약할 수 없었다.
5만 원이 박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글 한 편에 얼마나 많은 피, 땀, 눈물이 배어 있건 그 글의 가치는 5만 원이었고 너무 감사했다. 시인에게 따뜻한 밥이 되고, 뜨거운 국밥이 되고, 푸른 바다 같은 굵은소금이 되는 시보다 무려 2만 원이 더 많았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감자탕집에서 大자도 주문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도의적으로 더 나아가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send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참 고민했다. 지금 내 글의 가치는 여전히 제로에 수렴한다. 더 이상 국밥도 감자탕도 사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차곡차곡 모인 글들이 언젠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작가란 오늘 아침에 한 줄의 글을 쓴 사람이다."라고 폼나게 말했지만, 거기에 한 마디 보태고 싶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한 그릇의 밥이 될 한 줄의 글을 쓴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브런치팀에 요청할까 한다. 제발 '브런치북'을 고유명사로 인식해서 맞춤법 검사에서 오류로 나오지 않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브런치에서는 '브런치북'이 통용되지 않는가! 이 정도 손보는 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브런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