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를 잡느냐 외연 확장이냐!
오늘 아침, 사찰처럼 고요해야 할 집안이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아내가 둘째 아이가 샤워하는 동안 등교할 때 입고 가라고 꺼내 놓은 옷들이 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둘째 아이는 등교 복장으로 'All Black'을 선호했다. 그런 아이가 못마땅한 아내는 어떻게 매일 검정 옷만 입느냐며 모처럼 컬러풀한 옷을 골라주었다. 검은 옷을 지키려는 자와 밝은 옷을 입히려는 자 사이에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졌다. 최근 며칠 동안 둘째 아이와 아내는 봄날 따스한 햇볕 같은 훈훈한 사이를 연출했다.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둘째 아이가 극진히 보살폈기 때문이다. 눈물 나게 정겨운 모습이었다. 모처럼 아름다운 둘 사이가 때 아닌 색깔론으로 협력이 불가능한 관계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철 지난 색깔론이 언제나 말썽이었다.
아이의 주장은 분명하고 또렷했다. 검정은 자기한테 잘 어울리는 데다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자신의 친한 친구들도 주로 검은색 옷을 입는다고 했다. 아이에게는 그들이 '준거 집단'인 셈이다. 아마도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검은색 옷은 필수인 듯싶었다. 아이 말을 들어보니 그럴싸했다.
아내의 주장은 이랬다. 5일 등교일 중에 검은색 옷을 입는 날이 5일이라고 했다. 무슨 '어둠의 자식'도 아니고 가끔 한 번씩 밝은 옷도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전교 부회장 출신이)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려야 하는데 검은색 옷만을 고집하는 건 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비비드 한 오렌지 계열을 골라준 것도 아니었다. 사실 둘째 아이는 그런 색깔 옷은 가지고 있지도 않다. 밝은 계열이라고 해도 남색 계열 바지에 하늘색 계열 티셔츠, 겉옷으로 빨간색 후드 집업이 전부였다. 아내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교복도 아니고 어떻게 매일 검은색 옷만 입을까.
팽팽하게 맞서던 둘 사이의 갈등은 결국 아이가 기겁하며 손사래 치던 빨간색 후드 집업을 검은색으로 바꾸는 선에서 대타협을 이루었다. 더위를 못 참는 아이는 학교에 가면 겉옷을 벗어둘 것이기에 안에 입은 밝은 색 계열 옷은 반 친구들에게도 화사한 이미지를 심어주리라는 게 아내의 계산이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검은색 후드 집업을 입어 집토끼를 관리하는데 명분은 확보한 셈이었다. 아내와 아이 모두 승자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패자는 되지 않았다. 결국 때 아닌 색깔론은 작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고 아내와 둘째 아이 사이는 다시 화해와 협치의 무드가 조성되었다. 지켜보느라 조마조마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쓰는 습관>이라는 작법서에는 어떻게든 글에서 '교훈'을 만들어내라고 조언한다. 이 글에서 어떤 교훈을 쥐어 짤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정치권에서 철 지난 색깔론이라도 불거지면 그것과 연결 지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이슈도 없으니 아쉽다. 하긴 작금의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시대착오적 색깔론을 들먹일 만큼 한가하지는 없을 터였다. 뭐, 언제부터 내가 글에서 교훈 찾았다고, 없으면 좀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