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을 기억하며...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역사적인 날이다. '오늘이 무슨 날이었더라' 계속 찜찜했는데 자정이 다 되어서야 정답이 떠올랐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듯, 아끼고 아껴가며 읽은 김훈 작가님의 <하얼빈>을 손에서 놓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 깜빡했다. 26일에 꼭 글 한 편 써야지 했는데, 나란 인간은 참….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칼의 노래>가 조선(왕)이라는 나라와 백성을 적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대의'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하얼빈>은 김훈 작가님이 후기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인간 안중근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억지로 애국심을 강요하지 않았고 이토를 세상에 둘도 없는 괴물로 그리지도 않았다. 작품 속에서 안중근이 이토를 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야만 해서 그렇게 했다. 마치 양쪽 방향에서 동시에 출발한 기차가 어딘가에서 한 번은 교차해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지나간 시간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 숭숭 뚫린 진실의 여백을 김훈 작가님의 펄떡이는 문장들이 빼곡하게 채웠다. 분명 인쇄된 활자인데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작가의 필력이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 치며 읽는 습관 덕분에 책이 거의 스케치북이 되어버렸지만, 어차피 되팔 것도 아니요, 아직 두 번이나 더 읽어야 하니 연신 감탄사를 뱉으며 한 손에 꼭 쥔 색연필을 놓지 않았다. 그 안에 부러운 마음과 질투심도 한 스푼 정도 들어 있었을 터였다.
<하얼빈>을 다 읽고 나니 둘째 아이가 쓴 시 '안중근과 방학 숙제'가 문득 떠올랐다. '안중근 의사 순국 추모 전국 학생 글짓기 대회' 수상작이고, 이미 한 차례 브런치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다시 한번 소개하려고 한다.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고,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아마 인간은 미쳐서 날뛸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몇 가지는 잊지 말고 살아가자는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다.
아빠가 소월로를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현수막 하나
'안중근 추모 전국 글짓기 대회'
처음 안중근은 나에게 방학 숙제였다.
엄마와 할머니 댁에 밥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낡은 훈장 하나
외증조할아버지의 '건국훈장 독립장'
내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영화처럼
멋지고 특별하지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으쓱
그러다 잊고 있던 아빠 숙제가 생각났다.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일본은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을 죽였다.
외증조할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것처럼,
나는 안중근도 몰랐다.
일본 군인이지만
안중근을 존경하게 된 헌병 간수,
그리고 그를 기억하기 위한
일본의 어느 작은 불당
안중근이 저격한 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하얼빈 역,
그리고 그 옆에 세워진 기념관과
9시 30분에 멈춰 있는 시계
아빠의 방학 숙제를 끝내야 한다.
일본도, 중국도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안중근을 잊지 않고 기억할까?
부모님을 따라 간 시청 광장
그리고 내 손 안 작은 촛불 하나처럼
꺼지지 않을
내 마음속 촛불, 슈퍼 히어로 안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