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보다 태도, 그리고 헤밍웨이에게서 실마리를 얻기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파악된 바, 글 잘 쓰는 비법이란 없다. 묘수가 있다한들 누가 그런 노하우를 남들과 공유하겠는가. 누구나 조정래가 되고, 김훈이 되고, 박경리가 되고, 박완서가 되고, 레이먼드 챈들러가 되고, 하루키가 될 터이니 말이다. 그 '영업 비밀'이 공개되어 누구나 글을 잘 쓰게 되면 마치 한 회에 로또 1등이 5천만 명이나 나온 것과 무엇이 다르랴. 한편 극소수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작가'인 천재들이 있다. 그들은 낙서처럼 휘갈겨 쓴 문장이 명문이 되고 작품이 된다. 학력고사(수능) 만점자의 인터뷰를 떠올려 보라. 교과서에 충실하고 잠은 8시간 이상 충분히 잤는데도 저절로 공부가 되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아마도 천재 작가들은 글 잘 쓰는 것보다 못 쓰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글 잘 쓰는 비법에 대해 물어본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학력고사 만점자의 인터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평범하게 태어났으나 걸작을 잉태한 작가들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르디우스 매듭'을 푼 사람들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단칼에 베어, 절대 풀 수 없는 매듭을 푼 것처럼 그들도 독특하고 절묘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글쓰기라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매듭을 풀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방법은 서로 다르고 게다가 그들에게만 유효하다는 점이다. 신이시여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글을 잘 쓰고 싶은 게 죄입니까. 정말 그들에게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비록 비법은 쏙 빼놓았지만 그들은 불쌍한 중생을 위해 진실을 여기저기에 숨겨두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책을 가까이하고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늘 사유했다는 사실이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이름난 작법서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록 술술 문장이 써 내려가지는 묘수는 없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빵조각을 떼어 놓아준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
'글 잘 쓰는 비법'이라는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을 걸고 독자들을 속일 의도는 없었다. 스무 권도 넘는 작법서를 읽고 깨달은 유일한 사실일 뿐이다. 뭐, 사실 새로울 것도 없고. 그래도 영 섭섭해하는 분들을 위해 글쓰기 '비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좀 드려볼까 한다. 여기 촉망받는 작가가 한 명 있다. 아직 이렇다 할 장편은 쓰지 못했지만 몇 편의 단편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작가다. 가난하지만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이 작가의 글쓰기 '태도'를 책에서 읽고, 이런저런 잡다한 고민으로 글쓰기가 되지 않는 요즘 격하게 공감한 참이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럼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면 언제나 내가 알고 있거나,
어디에선가 읽었거나, 혹은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몇몇 진실한 문장이 있게 마련이었으니까.
만약 내가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글을 쓰거나,
혹은 뭔가를 알리거나 소개하려는 사람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그 수사적인 표현이나 과장된 문장들을 다 지워 버리고,
내가 쓴 첫 번째의 간결하고 진솔하며 사실에 바탕을 둔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다시 썼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것은 엄격하고 유용한 나만의 글쓰기 원칙이 되었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글을 쓰고, 이를 진실한 문장으로 쓰라는 의미다. 직접 경험을 통해서든 간접 경험을 통해서든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꿰뚫고 있다면 사실 글의 절반은 저절로 써진다. 좀 재미없고 드라이한 문장이라도 절반이 써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는 왜 작가가 관찰자가 되는지도 설명해 준다. 남은 절반은 진실하게 쓰면 된다. '진실한 문장'이 너무 주관적이라 모호하면 '형용사 말고 명사, 부사 말고 동사를 쓰라'라는 말을 떠올리면 된다. 멋지게 보이려고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은 문장을 피하라는 의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거장들의 문장은 간장이 들어가지 않은 희멀건 순두부보다 더 담백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것은 누가 한 말일까? 아직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젊은 날의 헤밍웨이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남긴 말이다. 원칙뿐 아니라 가끔 행운도 필요했지만, 젊은 날의 헤밍웨이는 자신만의 원칙을 토대로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썼다.
정리하자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되, 잘 알고 있는 문장을 진실하게 쓰자, 뭐 이 정도이지 싶다. 이게 글쓰기 전략(strategy)이라면, 전술(tactics)도 필요하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한 가지만 꼽자면 '메모하는 습관'을 들고 싶다. 특히 어떤 소재로 글을 써야 하나 자주 고민한다면 이것만큼 좋은 해결책이 없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책과 연관해 무수한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가끔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해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모두 메모했다면, 아마도 이미 열댓 권쯤 출간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에는 '작가노트'라는 수첩을 늘 곁에 둔다. 알베르 카뮈가 작가노트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시도했다가 흐지부지되었는데 요즘 다시 쓰려고 노력 중이다. 비단 독서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불쑥불쑥 글쓰기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때가 있으니 메모할 수 있는 수첩을 가까이 두는 습관이 꼭 필요하다. 디지털 세대라면 스마트폰 메모 기능을 사용해도 좋다. 특히 무한대의 이야기가 발현되는 '꿈'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꿈은 시간적, 공간적, 시대적 제한이 없는 이야기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욕망의 발현지이기도 하고 현실의 거울이기도 한 꿈을 글로 옮길 수 있다면 이보다 멋진 이야기가 또 있을까. 언젠가 꿈에서 완벽한 문장을 쓰고 감동해서 운 적이 있었다. 이건 뭐 세상에 공개하면 천재 작가의 등장이라고 난리 날 정도의 명문이었다. 꿈이란 걸 어렴풋하게 짐작했고, 깨자마자 반드시 옮겨야지 했는데 다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그놈의 잠 때문에 위대한 문장 하나가 빛을 보지 못했다. 메모하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메모에 그치지 않고 가끔 훑어보는 일이 글 쓰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으리라.
영어에도 글쓰기에도 왕도(어려운 일을 하기 위한 쉬운 방법)란 없다. 누구나 잘 쓸 수 있다면 아마 아무도 글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늘구멍처럼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틈을 향해 오늘도 밤잠을 설치며 글을 쓰는, 책을 읽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이들은 위대한 작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아직 최고의 문학 작품은 쓰이지 않았다. 당신이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쓰게 될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