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하고 싶다

뽀뽀를 끊었더니 짜증이 늘었다.

by 조이홍

입맞춤을 무척 좋아했다. '성인 남녀가 사랑의 표현으로 다른 사람의 입술이나 볼 등에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맞추는 행위', 바로 그 뽀뽀 말이다. 엉덩이가 예쁜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가 온종일 싸울 수 있다면, 배 나온 빌런인 나는 하루 종일 뽀뽀할 수 있다. 실제로 온종일까지는 아니지만 서너 시간 내내 뽀뽀만 한 적도 있었다(누구와 뽀뽀했는지는 잠시 후 공개). 지금껏 점잖은 척, 세상 걱정은 혼자 다 하는 척하더니 이토록 자극적인 '뽀밍아웃'을 해도 될까 싶지만, 더는 욕망을 감추고 싶지 않다. 게다가 마지막 뽀뽀를 한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뽀뽀할래?'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했는데, 부드럽고 달큼한 뽀뽀를 끊은 지 오래됐더니 금단 현상이 오는지 만사가 귀찮고 짜증이 늘었다. 뽀뽀의 귀환이 시급했다.


이렇게 써놓으니 비록 모래성이더라도 그동안 쌓아온 작가로서 지위와 명성에 재를 뿌리는 듯하고, 또 허랑방탕한 짓만 일삼는 난봉꾼처럼 보일 듯하니 사전에 정의된 단어 하나를 정정하는 편이 나을성싶다. '성인 남녀'가 아니라 '아이'로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입맞춤하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던 피터팬처럼 아버지가 되는 게 무서웠다. 어쩌면 당연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으니 말이다. 결혼 후 첫째 아이를 낳기까지 5년이나 걸린 까닭이었다. 그런데 웬걸, 아이를 낳고 보니 아내와 나를 반반씩 닮은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5년이나 미뤘나 싶었다(물론 지금은 또 생각이 달라졌다. 하루에도 열두 번 다시 아내 뱃속으로 넣고 싶으니 말이다). 그렇게 세 살 터울로 사내아이 둘을 낳았다. 일상에 지쳐 집에 돌아와도 곤히 잠든 아이들 얼굴만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되었다. 아내는 아이들 깬다고 싫어했지만 녀석들의 뽀얀 빰에, 붉은 입술에 뽀뽀를 하지 않고는 하루를 마무리할 수 없었다. 아내는 위생을 이유로 아이들에게 입 맞추지 않았고 나에게도 아이들 입에 절대 뽀뽀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하늘 같은 아내의 명(命)이라도 그것만큼은 받들 수 없었다. 조금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 탐스럽고 붉은 앵두 같은 입술 앞에서 번번이 무너져 버렸다. 물론 최소한의 원칙은 지켰다. 깨끗하게 양치질하고 뽀뽀하기. 변명하자면 아이들과 뽀뽀를 통해서 아빠의 면역 체계가 전해지리라 믿었고,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아이들을 키운 건 팔 할이 뽀뽀였다." 정도는 아니더라도 티끌만 한 기여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말이면 육아에 지친 아내를 외출 보내고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에게 뽀뽀를 했다. 도톰한 입술과 통통한 볼이 오롯이 내 차지였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정말 몇 시간 동안 원 없이 뽀뽀만 했더랬다.


나는 왜 이토록 뽀뽀를 좋아할까, 그리고 사람은 왜 뽀뽀를 하게 되었을까? 뽀뽀(키스)의 기원에 관한 설은 다양하다. 먹을 것이 귀했던 수렵 시대에 잘 익은 과일(대부분 붉은색)을 찾아내는 인간의 감지능력이 신체 부위 중 붉은색의 매력을 가진 기관(입술)으로 이동했다는 설, 수유 혹은 입으로 음식물을 넘겨주는 행위(kiss-feeding)처럼 입술을 통한 접촉에서 형성된 유대관계가 진화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몇몇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상대를 인식하는 행위인 냄새를 맡는 행동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코를 가까이 가져가면서 자연스레 입술도…). 내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kiss-feeding' 설이 유력하다. 아마도 먼 조상 중에 입으로 음식 주는 걸 유난히 좋아하던 분이 있었나 보다. 어느 것에서 유래되었건 뽀뽀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었다. 뽀뽀만큼 효율적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호르몬(옥시토신, 도파민, 세로토닌 등)을 분비하는 행위가 없다고 하니 최초로 입맞춤한 인류의 조상들께 건배를!

KakaoTalk_20221108_200134568.jpg

나이를 먹는다는 게 딱히 억울하지 않았다. 한때 죽음이 두려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기적인 유전자란 참으로 신기했다. 한 개체의 종말, 죽음도 초월하니 말이다. 내가 나이를 먹는 건 억울하지도 두렵지도 않았지만, 아이들과 더는 뽀뽀할 수 없게 된 건 더없이 서운했다. 삶을 지탱해 주는 커다란 지지대 하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얼음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각얼음을 와그작 깨물어 입으로 전해주면 먼저 받아먹겠다고 서로를 밀치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어미새가 잡아온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고개를 쳐들고 아우성치는 새끼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빠가 입으로 깨물어 주는 얼음은 지저분해서 싫단다. 얼음 들고 와서 깨달라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배신자들. 뽀뽀할래 물어보면 도끼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앤 줄 알아?'라고 눈으로 말한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이제껏 함께 해 오던 많은 것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터였다. 그러다 결국 독립할 테고…. 요즘 아내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지만, 내 마음은 아내와 조금 달랐다. 아이들이 자라는 게 아까웠다. 두 아이를 동시에 번쩍 안아주곤 했는데, 이제는 하나도 벅차다. 이렇게 후회하지 않으려고 실컷 뽀뽀했는데 아마도 부족했나 보다. 오늘 밤에는 잠든 아이 볼에라도 뽀뽀해야겠다(차마 입술에는 못하겠다). 중학생 첫째 아이는 이제 좀 징그럽고, 아직 귀여운 둘째 아이에게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이 좀 서글프지만, 다음 단계가 있으니 희망을 잃지 않는다. 연이 닿으면 손주들에게 실컷 뽀뽀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아쉽지만 그때까지 뽀뽀는 휴업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그 찬란한 순간을 위해 입술은 봉인해 둘 참이다. 어른이니까 참을 수 있다. 어른이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 잘 쓰는 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