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도 손님 대하듯 하라

보살피되 간섭하지 않기를...

by 조이홍

'피렌체가 메디치家를 낳았지만, 메디치家 없이는 피렌체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르네상스의 기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중부 상업도시 피렌체는 문화·예술·과학·철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였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메디치 가문이 없었다면 과연 르네상스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건 르네상스 시대는 메디치家에 큰 빚을 졌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메디치家의 후원을 받았다.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각가 도나텔로, 새로운 건축 양식을 선보인 브루넬레스키,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화가 마사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르네상스 트리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도 모두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손님들이었다. 이들은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에 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메디치 가문이 박수받아 마땅한 이유이기도 한, 메디치家는 경제적 지원만 했을 뿐 예술 활동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부자들처럼 돈 몇 푼 쥐어주고 거들먹거리는 대신 진정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했던 것이다. '괴팍한(천재라는 의미로)' 예술가들이 어디 남의 말을 듣겠냐마는 밥줄이 달렸다면 후원자의 정치적, 문화적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였다. 예술가들이 부자들의 눈치를 봤다면 그들의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 지금처럼 진할 수 있을까. 영국 왕실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것처럼, 메디치家는 '후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걸 금과옥조로 여겼다. 한 가문의 극진한 손님 대접 덕분에 유럽 문화, 예술 전반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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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나이 스물일곱, 내 나이 스물아홉에 우리는 결혼했다. 꿈같기도 하고 꿀 같기도 한 '허니문'을 4년이나 보냈다. 신혼을 즐기리라는 마음도 간절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천천히 낳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더 이상 주연으로 살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장강에서는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사에는 새사람이 옛사람을 대신한다"라는 시구도 있지 않던가. 더는 내가, 내가 아니게 될 줄 알았다. 낙엽이 절정에 달한 어느 가을, 때가 되었다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속삭였고 10개월 후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엄청나게 후회했다. 아내와 나를 반반씩 닮은 생명이 존재한다는 게 이토록 기쁘고 흥분되는 일인지 몰랐다. 첫 아이를 안고 우는 아빠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순간이 오자 울컥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콘 헤드와 붉은 피부로 외계인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등에 날개만 달리지 않았을 뿐 천사 그 자체였다. 태어난 첫날부터 보채지 않고 잘 잤다. 수유한 후 등을 몇 번만 토닥거려도 '꺼억' 하고 응답했다. 품에 안으면 거짓말처럼 금방 잠들었다. 집에 신생아가 생기면 몇 달간 밤잠은 꿈도 꾸지 말라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이건 아빠 시점이고, 모유 수유로 아내는 진짜 고생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아이 목욕만큼은 직접 시켰다. 손가락 한마디밖에 안 되는 아이 손과 발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외출할 때도 아기 띠는 아빠 차지였다. 아이가 생기고 행복한 집이 더 행복해졌다. 아내와 길고 긴 논의 끝에 둘째를 갖기로 했다. 그렇게 3살 터울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밤늦게 퇴근해 곤히 잠든 아이들을 보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졌다. 아이들 볼에 뽀뽀해 주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딱 여기까지다.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 아이들이 내년이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다. 그렇다, 질풍노도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시기다. 천사 같았던 아이들은 이제 싸움닭으로 변했다. 부모의 원칙과 아이들의 자유의지가 번번이 충돌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집에서 큰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전쟁터였다. 보통 전선(戰線)은 부모(2) vs. 자식(2) 구도였지만, 복잡한 국지전 양상을 띠기도 했다. 아빠 vs. 아이, 엄마 vs. 아이일 때도 있지만, 첫째 vs. 둘째 아이일 때도 많았다. 아이들끼리 맞붙은 전선에서는 된소리와 거친 말이 오갔다. 서로 기대어 의지하며 살라고 했더니 오히려 주먹을 먹인다. 공권력이 투입되어야 겨우 뜯어말릴 수 있다. 따로 떨어져 있으면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지만, 둘이 함께 있으면 눈엣가시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치열한 건 엄마 vs. 자식 전선이었다. 이럴 때면 아내가 지닌 신사임당 같은 자애로운 모성은 흔적도 없이 증발한다. 우주 최강 빌런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이들도 어릴 때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다. 모자 사이에도 이렇게 격돌할 수 있구나 매일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하루는 '이거 몰래카메라야' 싶기도 했다. 삶이 얼마나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지 웬만한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로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아내는 여기에 더해 올해의 속담을 선정했다. '無子息上八字' 즉 '過而不改 子息 無子息上八字'라는 것이다.




후원하되 간섭하지 않음으로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메디치 가문처럼, 사랑을 주되 생각은 주지 말라는 칼린 지브란의 기도처럼 아이들을 대할 수는 없을까. 피 말리는 가족 전쟁을 끝낼 방법이 없을까. 며칠 전 송년회에서 만난 K형의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유레카, 정답이 거기에 있었다. "손님 대하듯 자식을 대하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손님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가장 훌륭한 식사와 술을 내주지만 정작 손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떤 대가나 보상을 원해 그런 편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손님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대한다. 적당한 거리에서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온기로 말이다. 그저 고맙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고 그 말조차 없어도 상관없다. 가면 가는가 보다 더 머물면 더 머무는가 보다 할 뿐이다. 귀한 손님 대하듯 자식을 대하는 것이 부모에게 맡겨진 소임이다. 그렇다고 방관자가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켈란젤로를 양자 삼은 로렌초 디 피에르 데 메디치의 마음이면 충분하다. 새해 우리 부부의 다짐은 '자식도 손님 대하듯 하라'이다. 말이 쉽지 행동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매일매일 되뇐다. 언젠가 떠날 손님, 집에 머무를 때라도 몸과 마음이 평안하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우리도 한때는 부모님들의 客이었음을 잊지 말자고.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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