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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Nov 25. 2019

라떼는 말이야 (1)

인생 수업

  아이들이 좋아해 종종 함께 보는 만화 중에 <검정 고무신>이 있다. 1960년대 말 서울이 배경이다. 국민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 형제의 일상을 통해 가난했지만 행복한 가족의 모습과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의 재미있는 일화를 보여준다. 그 시절에 대한 공감이나 향수가 전혀 없는 준, 큐 형제가 <검정 고무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치 내가 어린 시절에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하던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던 이유와 같지 않을까 싶다. 옛날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귀가 솔깃해지는 보편적인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동네에 나타난 엿장수 아저씨의 엿과 바꿔 먹기 위해 집안에서 쓰는 물건을 엄마 몰래 가지고 나온다거나 남의 고무신을 훔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주전부리할 것이 따로 없었던 그 시절에 오랜만에 동네에 온 엿장수 아저씨의 달달한 엿은 아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80년대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나도 엿장수 아저씨를 본 기억은 없었다. 고물장수 아저씨가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것이 얼핏 기억나지만 엿과 바꿔주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아저씨는 강냉이와 바꿔주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가끔 먹는 강냉이지만 그 시절에는 관심 밖의 주전부리라 다행히(?) 집 안의 물건을 들고나가 바꿔 먹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내 '라떼는 말이야'가 시작되었다.


  아빠 어렸을 때는 집이 어려워서 지금처럼 집에 먹을 것이 많지 않았어. 주전부리하려고 할머니(어머니)한테 용돈 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지. 그래서 너무 주전부리가 하고 싶으면 동네를 한 바퀴 돌았어. 그렇게 동네를 걸으며 빈 병을 모았지. 못해도 5개, 운이 좋으면 10개도 모을 수 있었어. 빈 병 하나에 20원씩 쳐주었으니 5개를 가지고 가면 100원짜리 물건을 하나 살 수 있었지. 100원이면 동네 구멍가게에서 먹고 싶은 과자나 하드를 사 먹을 수 있었지. 아빠는 그렇게 힘들게 주전부리했다.


  하지만 아내부터 이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나이 차이가 두 살 밖에 나지 않는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고 타박한다. 아내는 서울 사람이고, 나는 시골 사람이라 환경이 많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준, 큐 형제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정말 어린 시절에 빈 병을 팔아 군것질을 해결하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다던 준이 지난 추석 때 할머니께 내 '라떼는 말이야' 이야기를 전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께서는,


  아빠 어릴 적에 할머니 친구가 동네에서 작은 슈퍼를 하고 있었는데, 그 슈퍼에 가면 먹고 싶은 거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어. 할머니가 친구한테 이야기를 해 두었지. 아들 하나 있는데 얼마나 먹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물론 어머니의 친구분께서 슈퍼를 했고, 종종 그 슈퍼에 들러 값을 치르지 않고 먹을 것을 사 왔던 기억이 있다. (값은 한 번에 어머니가 치르셨다) 하지만 한 번은 어머니 친구분이 아니라 아저씨 (남편분이셨다)가 계셔서 그냥 나온 이후로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어린 나였지만 아저씨께 무언가를 설명하면서까지 군것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 시절 어머니께 빈 병 팔아서 군것질했다는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 '라떼는 말이야'는 준, 큐 형제가 누리는 행복을 당연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라...라는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잔소리를 동반하기는 한다. 꼰대의 전형이다. 하지만 결핍을 모르고 사는 우리 아이들이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하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한 몸 꼰대가 된들 어떠하랴.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해 보니 요즘 360ml 소주병 하나에 100원, 500ml 맥주병은 130원이나 준다고 한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그리 많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아 팔면 꽤 쏠쏠할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동네 산책이라도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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