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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Nov 29. 2019

샤파의 추억

인생 수업

♩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파 샤파 하이 샤파 얼마나 울었을까 

(샤바 샤바 아이 샤바)

샤파 샤파 하이 샤파 1985년 

(샤바 샤바 아이 샤바)


  국민학교 때 자주 불렀던 노래인데 고무줄 할 때 불렀는지, 쎄쎄쎄 (손뼉 치기 놀이) 할 때 불렀던 노래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고무줄놀이를 대표하는 노래였던 '자유의 길'이 동작까지 다 기억나는 걸 보면 이 노래를 고무줄놀이할 때 불렀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민학교 시절 고무줄놀이는 여자 아이들만 하는 놀이였지만 이상하게 나는 여자아이들이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처럼 지금도 가끔 아이들과 하게 되는 손뼉 치기 놀이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가끔씩 떠오르는 이 노래는 도대체 누가, 왜 만들었을까 항상 궁금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연필을 많이 사용한다. 6학년인 준은 샤프도 제법 사용하지만 아직은 연필을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집에 은색 샤파 연필깎이가 있다. 기차 모양의 샤파 연필깎이는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도 있었던 모델인데 아직도 나오다니 신기했다. 연필을 넣고 열 번 정도 돌리면 반듯하게 깎여나간 연필 가운데로 까만 심이 뾰족하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그 연필깎이는 내가 국민학교 때 꼭 한 번 갖고 싶었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연필깎이가 없던 나는 저학년 때에는 어머니나 누나가, 고학년 때에는 내가 직접 칼로 깎아서 사용했다. 어머니는 누나 다섯을 국민학교에 보낸 경험 덕분인지 연필을 엄청 잘 깎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샤파 연필깎이로 깎는 수준이었다. 나무 부분과 연필심 부분을 칼로 미끄러지듯이 다듬으면 쓰기 아까울 정도로 뾰족한 연필이 되었다. 어쩌다 내가 깎은 연필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은색 샤파 연필깎이를 보았는데 신기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칼로 연필 하나를 깎는 데는 2~3분 정도 걸렸는데 샤파 연필깎이에 넣어 돌리면 10초면 충분했다. 게다가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몸체는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린 내 눈에는 엄청 비싸고 고급진 물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께 샤파 연필깎이를 사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조르면 하나 사주실 만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사달라고 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했다. 눈치가 빨랐거나 철이 일찍 들었나 보다. 그냥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연필깎이로 만족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시절에는 필기할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열병처럼 은색 샤파 연필깎이는 내게 왔다 이내 떠나가 버렸다. 


  아이들의 연필깎이를 보며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아내는 국민학교 시절에 완전 자동 연필깎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국산도 아니었다. 연필을 넣으면 돌릴 필요 없이 자동으로 깎이는 신박한 물건이었다. (물론 전원 케이블이 꽂혀 있어야 한다) 샤파 연필깎이도 부러워하던 나에게 아내는 '나 이 정도였어' 하는 것이었다. 역시 서울 사람이다. 아내가 결혼할 때 챙겨 와서 집안 구석 어딘가에 있다가 요즘 다시 사용하고 있다. 40년 이상된 제품인데 여전히 작동이 잘되고 있다. 


  우연히 샤파 연필깎이를 보다가 손잡이 부분 아래에서 '하이 샤파 KI-200'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신데렐라 노래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 노래는 마치 <서동요>처럼 아이들에게 신데렐라 노래를 통해 자사 제품(물론 샤파 연필깎이)을 홍보하려는 국내 최초의 PPL이었던 것이 아닌가! 물론 아무 근거도 없는 추측일 뿐이다. 후렴구에 대한 다양한 버전이 있어 가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동네에서는 '샤파 샤파 하이 샤파'로 불렀다는 것이다. 뒤에 나오는 연도가 혹시 이 제품이 탄생한 연도라면? 진짜 소름 돋을 것 같다. 


  연필깎이 하나가 참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해 주었다. 



  고무줄놀이의 대표곡 <자유의 길로>로 알고 있는 노래는 원곡이 따로 있었다. 바로 <무찌르자 오랑캐> 일명 <승리의 노래>이다. 어린 시절 수천 번을 불렀음직한 이 노래는 반공교육의 결정판이었다. 늦은 오후까지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을 하다가 어머니가 '밥 먹어라'라고 부르시면 집으로 쪼르륵 달려가곤 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가끔 해 질 녘 집 앞 공터에서 고무줄놀이나 구슬치기를 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나이가 드나 보다. 


<고무줄놀이 버전>

자유의 길로(오)~~~

무찌르자 공산당 몇 천만인가 

삼천만

대한으로 가는 길 

이 길 뿐이다(아아)

나(아)가자 나(아)가자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자 

승리의 길로


<원곡> 작사 이선근 / 작곡 권태호     

(1절)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후렴)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2절) 쳐부수자 공산군 몇천만이냐 

우리 국군 진격에 섬멸뿐이다

(후렴)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3절) 용감하다 UN군 우리와 함께 

지쳐간다 적진에 맹호와 같이

(후렴)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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