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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01. 2019

온 가족이 <블랙 머니>

인생 수업

  오랜만에 온 가족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는 마블 덕후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지나 <스파이더 맨 - 파 프롬 홈> 이후 모처럼의 극장 나들이었다. 


  '♬Let it go, Let it go~'로 대한민국을 들썩하게 했던 겨울왕국의 속편이 개봉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보기에 딱 좋은 가족영화였다. 하지만 준과 큐 형제는 겨울왕국을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둘만 보기로 했던 <블랙 머니>가 12세 이상 가능이라 지나가는 말로 이 영화 보면 어떨까 했는데 휴대폰으로 검색을 쓱 해보던 준이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큐는 싸우는 영화는 싫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큐를 어르고 달래 결국 모두 함께 <블랙 머니>를 보러 갔다. 


  고2 때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JFK>였다. 남들 다 하는 야자 땡땡이를 나도 한 번쯤 쳐 보고 싶었고, 딱히 할 일이 없어 극장이나 가야지 했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였다. 그때까지 장래희망 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 않던 나에게 케빈 코스트너가 맡은 '검사' 역할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케네디 저격 사건에 대한 진실을 쫒는 정의로운 그의 모습에 흠뻑 빠졌다. 나도 정의로운 검사가 되고 싶었다. 참 낭만적인 상상이었지만 곧 현실이 나를 소환하였다. 내 실력으로는 꿈꿀 만한 직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JFK>를 본 감동은 꽤 오래 가슴에 남아 있었다. 검사는 못해도 정의는 지키며 살아야지 싶었다. 

  어른 영화는 보기 싫다는 큐를 달래 상영관에 들어섰다. 겨울 왕국 2의 개봉관 점유율이 월등히 높아 <블랙 머니>는 하루에 2번 밖에 상영하지 않았다. 밤 9시 15분 영화였는데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맨 앞 두 번째 줄에 앉았다. 그때까지도 큐는 계속 투덜대고 있었다.


  영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투덜군 큐도 엄청 집중해 보았다. 보통 관심 없거나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할 때면 큐는 금방 잠이 드는 버릇이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깝게 숙제(공부)도 그중의 하나다. 하지만 <블랙 머니>는 끝까지 집중해 보았다. 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영화 끝날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보았다. 그만큼 아이들에게도 매력적이었나 보다. 


  <블랙 머니>는 외환은행 사태를 다룬 영화다. 영화 엔딩 장면 이후 자막을 통해 그 사건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말해 주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준, 큐 형제에게도 영화를 본 소감을 물어보았다. 준은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큐도 양민혁 검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정의로운 검사, 약자와 국민의 편에 서는 검사 한 사람쯤은 현실에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화 밖 세상은 훨씬 복잡하다. 그러기에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판단해야 한다. 준, 큐 형제에게 그 기준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받는 이웃,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보통의 국민이 되면 좋겠다. 


  1991년으로 시계를 돌려, <JFK>를 보고 나온 18살의 내가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 검사가 되었다면 오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살고 있을까? 지금 생각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일까? 터무니없는 상상임에도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늘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적어도 그 선택이 사회나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양심과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판단했으리라 믿고 싶다. 


  좋은 영화 한 편은 누군가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블랙 머니>도 그런 영화 중의 한 편이 아닌가 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준, 큐 형제와 내가 (정의로운) 검사라는 직업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자동일체' 임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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