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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03. 2019

산타할아버지께 안녕을 고하다

인생 수업

  "산타할아버지 오셨어. 형 일어나!"

  "진짜? 와!"


  이른 아침부터 집이 떠나갈 것 같다. 환호성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준, 큐 형제 덕분에 아내와 나도 평소보다 빨리 잠에서 깬다.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의 풍경이다. 

  산타할아버지는 그렇게 자전거, 게임기, 레고, 망원경 등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매해 놓고 가셨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내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생활했나 보네' 하며 칭찬도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아이들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저렇게 좋을까 싶다. 티 없이 맑게 웃는 아이들을 보며 그 순수한 마음을 가능한 오랫동안 지켜주고 싶었다. 이미 알 것은 다 아는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말해도 준, 큐 형제는 아직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게 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 두고 자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교회에 다니던 시절이라 자기 전에 기도도 했다. 이번에는 꼭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다녀가시기를 열심히 빌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절한 기도에도 산타할아버지는 우리 마을, 우리 집에는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될 법도 한데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살짝 아쉬운 정도......


  덜 실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항상 어머니는 내게 빨간 구두를 선물로 주셨다. 산타할아버지가 신는 신발처럼 생긴 모양에 과자가 잔뜩 들어가 있는 종합 선물세트였다. 달콤한 과자를 듬뿍 받는 것도 좋았지만 그 빨간 신발도 나에게는 좋은 선물이었다. 잘 들어가지도 않는 그 신발 속으로 어떻게든 발을 넣었다. 막내 누나 것도 뺏어 양쪽으로 신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발은 엄청 아팠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는 나에게 그 빨간 구두는 유일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해는 우리 집에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시지 않는다. 사실 둘째 큐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산타할아버지 존재에 대한 불신이 크게 늘었다. 엄마, 아빠가 산타할아버지가 아니냐는 질문도 종종 했다. 눈치가 단인 준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밤새 선물 돌리느라 힘들어하실 산타할아버지를 위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직접 쓴 편지와 간식을 가지런히 두던 순진한 아이들이 더 이상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 일이다. 준, 큐 형제가 너무 다투어 올 해는 산타할아버지가 안 오실 것 같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준, 큐 형제는 그래도 숙제도 잘하고 엄마, 아빠 말도 잘 들어 산타할아버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야 안 오실걸.'이라고 말하면서도 산타할아버지께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이 되면서 받고 싶은 선물도 변했다. 휴대폰이나 BB탄을 장전해서 놀 수 있는 총 같은 것을 원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절대로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정말 안 오시겠다. 올 해는......"


  눈치 빠른 준은 휴대폰은 포기하고 망원경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큐는 자기는 꼭 총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날 밤 본의 아니게 준, 큐 형제의 은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야!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야. 아빠가 절대로 안 사주는 총을 산타할아버지가 갖다 주겠냐!"


  준이 큐를 나무라고 있었다. 준은 벌써부터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엄마와 아빠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준이 엄마, 아빠의 로망을 지켜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계속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에 모르는 척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게다가 큐도 준의 말에 그렇게 충격을 받지 않을 걸 보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산타 놀이를 끝낼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작년을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서도 산타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온 가족이 즐겨 보는 만화책이 있다. 조경규 작가의 <오므라이스 잼잼>이다. 음식에 대한 만화인데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음식을 얼마나 맛깔나게 그리는지) 아이들과의 에피소드도 새겨둘 것들이 많아 단행본으로 나온 열 권을 모두 구입해 책장에 꽂아 두고 보곤 한다. 


  조경구 작가는 자기 아이들에게 우리처럼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준다. 하지만 그 선물이라는 것이 사탕이나 초콜릿처럼 아주 작은 것들이다. 크고 좋은 선물은 부모가 직접 준다. 우리 집과는 정반대다. (우리 집은 산타할아버지가 크고 좋은 선물, 우리는 작은 선물을 주었다.) 미지의 대상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즐거움과 부모님께 감사할 줄 아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이다. 이것도 꽤 괜찮은 방법 같았다. 


  산타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첫 번째 크리스마스 미션을 클리어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다음 주제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사랑일 수도,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산타할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뒤로하고, 이제는 준, 큐 형제가 직접 다음 주제를 선정할 때가 온 것 같다. 정답은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길이라면 씩씩하게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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