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은 존재한다!

우리 집에 외계인이 산다.

by 조이홍

나 자신은 합리적 이성론자라고 굳게 믿어왔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지 않으면 믿지 않았다. 무신론자에 가깝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이 너무 고독하고 가여워서 싫었다. 싫은 건 싫은 거고 신이 존재했다면 당신의 자식들을 이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는 아직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으니 믿지 않았지만, 정확히는 판단 유보 상태였다.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다. 게다가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했다면 똑같은 조건의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했을 가능성은 지구와 동일할 터였다. 아직은 지구처럼 그쪽 과학기술도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할 만큼 발달하지 못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드디어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왔다.


그 외계인이 우리 집에 산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말이다. 이 외계 생명체들은 현재 착하고 귀여운 데다 예쁘기까지 한 우리 아이들 몸속에 들어 있다. 처음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지구인의 정보가 필요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들의 존재를 눈치챈 건 바뀐 언어생활 때문이었다. 말이 짧아졌고 된소리가 많아졌다. 억양도 거세졌다. 저희들끼리 말할 때는 강아지나 동물의 새끼를 마구 소환했다. 문장 형태도 청유형에서 명령형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가끔은 아내에게까지 그랬다. 언제나 예의 바르게 말하고 예쁘게 말하던 아이들의 언어생활이 외계인들의 침입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언어생활뿐만이 아니었다. 형제간 사이도 틀어졌다. 평소 아이들은 다투지 않았다.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보호해주며 극진히 아꼈다. 동생은 간식거리라도 살라치면 형 것부터 챙겼다. "형아 형아" 정겹게 부르며 사이좋게 지냈다. 외계인들이 아이들의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눈만 뜨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고 사사건건 부딪혔다. 여기에 못된 언어생활까지 결합되면 정말 가관이었다. 저렇게 티 내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별에서 죄를 짓고 지구로 유배되었을지도 몰랐다. 물과 기름 같은 사이인데 하필 우리 아이들 몸에 들어가 한 집에 살게 된 것이다. 어떤 날은 '치고받고' 일보 직전까지 갔다. 천사 같은 우리 아이들한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눈앞에 펼쳐졌다.


여전히 외계인이 우리 아이들 몸속에 산다. 한 녀석은 시험 끝났다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게임하고, 다른 한 녀석은 새벽 일찍 일어나 게임한다. 게임은 쳐다보지도 않던 우리 아이들이 말이다. 악랄한 외계 생명체들을 천사 같은 아이들한테 분리해 다시 우주로 쫓아 보낼 방법을 찾고 있다. 일단은 기후변화로 지구가 점점 뜨거워져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저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저들의 약점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니까. 당장은 저들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랬다간 진짜 삐딱해질지도 모르니까. 저들이 우리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걸 알아차리면 정말 곤란해질 테니 말이다. 외계인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아빠의 처절한 사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내가 TV를 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