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행복했는데 16강 진출로 더 행복했다!
이겼다. 패배한 '가나전'에서 이미 충분히 행복했기에 졌지만 잘 싸웠다고 주눅 든 선수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마지막 포르투갈전은 부디 축구를, 월드컵을 즐기기를 바랐다. 그럴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우리나라 대표팀이 정말 축구를 즐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포르투갈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함께 왠지 모를 편안함이 깃들어 보였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대표팀이 전통의 축구 강호, 피파 랭킹 9위 포르투갈을 2:1로 이겼다. 이로써 2002년에 이어 대 포르투갈전은 '전승' 기록을 유지했다. 먹튀 논란으로 국내 팬들을 등 돌리게 한 호나우도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몰랐다.
선취골을 빼앗겼지만 이상하리만치 질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았다. 전반 27분, 수비수 김영권 선수의 동점골이 나왔을 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탄성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손바닥을 몇 번 마주쳤을 뿐이다. 후반 45분, 경기 종료가 목전에 이르렀을 때도 분명 한 골이 더 터질 것 같았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아니 그동안의 모든 염원과 소망을 담은 손흥민 선수의 절묘한 패스와 함께 황희찬 선수의 통쾌한 역전골이 나왔다. 2:1 역전승. 피파 랭킹 28위 대한민국이 9위 포르투갈을 누르고 16강에 진출했다. 축구공은 둥글었고 마지막까지 어디로 튈지 몰랐다.
오히려 가나와 우루과이 경기를 손에 땀이 흥건한 채 지켜보았다. '추가 시간' 8분이 어찌나 느릿느릿 가는지 달팽이가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할 만큼 길게 느껴졌다. 가나 vs. 우루과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림과 동시에 우리 대표팀과 붉은 악마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흔들었다. 진출 가능성 단 9%라는 예측을 보기 좋게 깨버리고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 확률은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피파 랭킹 14위에 월드컵 1회 개최국인 우루과이도, 피파 랭킹은 61위로 한참 뒤처지지만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공격력으로 우리나라를 이기고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를 매섭게 위협한 가나도 아니었다. 16강 진출이 전부는 아니라고, 이미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고 믿었는데, 막상 16강에 진출하니 눈물이 날만큼 좋았다. 아, 나란 인간은 정말….
16강 진출은 우리 대표팀의 노력과 투지 덕분에 가능했지만 '고마워요, 가나'를 빼놓을 수 없다. 가나는 2: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와 경기 때 그랬던 것처럼, 아프리카 침대 축구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우리(가나)가 못 가면 너희(우루과이)도 못 간다"는 물귀신 작전을 제대로 구사했다. 그럴만한 사연이 가나에게 있었다. 두 나라의 악연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8강전에서 맞붙은 두 나라는 연장전까지 가는 박빙의 경기 상황에서 가나 공격수의 결정적인 헤더 슛을 우루과이 대표 공격수 수아레스가 손으로 쳐낸다. 핸드볼만 아니었다면 골로 연결돼 가나가 승리하는 상황이었다. 매너 없는 플레이를 한 수아레스는 퇴장당하고 가나는 페널티킥 기회를 얻지만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결국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가 승리해 가나는 뼈아픈 패배를 당해야만 했다. 그렇게 12년을 벼르고 와신상담한 가나 대표팀은 추가 시간을 1분 남기고 선수를 교체하는 등 침대 축구로 우루과이 대표팀에 쓴맛을 보여 주었다. 종료 휘슬과 동시에 카메라는 벤치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수아레스 선수를 담았다. 자업자득이었다.
우리나라의 16강 상대는 피파 랭키 1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브라질이다. 대표팀 선수 몸값 추정치만 무려 1조 5천억 원인 팀이다(우리나라 대표팀 추정치는 약 2260억 원). 브라질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정말 축구를 즐긴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보면 노력도 재능도 뛰어넘는 게 '즐기는 것'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구나 싶다. 축구는 열정과 열정, 투지와 투지가 맞붙는 경기라지만, 이번 16강은 '누가 제대로 축구를 즐기는지'를 겨루는 장(場)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승리하면 당연히 기쁘겠지만, 패해도 한 판 제대로 즐겼다면 선수도 응원하는 우리도 모두 기쁘지 않겠는가.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우리 선수들이 한껏 축구를 즐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