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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07. 2022

어느 부부의 비밀스러운(?)
잠자리 이야기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사랑하기에

어느 부부의 비밀스러운(?) 잠자리 이야기 


 이것은 우리 부부의 잠자리에 얽힌 이야기다. 하지만 여러분이 상상(또는 걱정)하는 '어른들'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20년을 함께 살다 보니 부부 관계를 한 번쯤 뒤돌아보고 싶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아내 마음을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처럼 온전히 들여다볼 수는 없을 터였다. 일상에서 우리 부부 '관계 수평계'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지 보여주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잠자리가 떠올랐다. 유레카! 이 이야기는 잠자리 같은, 잠자리 아닌, 잠자리에 얽힌 우리 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아내는 유독 잠잘 때 추위를 많이 탄다(고 우긴다). 한 여름을 제외하면 언제나 '목욕 가운'을 덧입고 잠자리에 든다. 이에 더해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초봄과 늦가을에도 뜨거운 물을 부어 사용하는 '핫팩'을 꼭 안고 잔다. 남이 사준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처럼 아내는 남편이 만들어주는 핫팩이 제일 따뜻하다며 그 일을 늘 내게 부탁했다. 한 번은 혀 짧은 소리로 "옵하, 핫팩 해쭈세용!"을 외쳐 두 아이를 (닭살이 돋아) 닭으로 만들어 버린 적도 있다. 그렇게 밤마다 핫팩 만드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종종 아내가 두 개의 핫팩을 요구할 때가 있다. 핫팩 두 개 없이는 잠이 올 것 같지 않단다. 그럴 때면 군소리 하나 없이 핫팩 두 개를 아내 앞에 대령한다. "나는 하나도 없는데 당신은 두 개나?"라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저 '아, 내가 이 사람을 무지 사랑하는구나!' 속으로만 되뇐다. 겨우 핫팩 두 개로? 쪼잔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겨울밤, 핫팩이 전해주는 그 따스한 온기의 힘을. 비록 나는 추위에 벌벌 떨지언정 아내에게는 뜨거운 핫팩 두 개를 안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핫팩이나 목욕 가운 덕분이겠지만 아내는 이불을 잘 걷어차고 잔다. 한밤중에 자다 깨면 십중팔구 아내 발밑에 이불이 놓여 있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어깨까지 폭 덮어 한기가 아내의 숙면을 방해하지 못하게 한다. 아울러 잘 자라고 머리도 몇 번 쓰다듬는다. 아내 이불을 덮어주려고 하룻밤에 몇 번씩 깬 날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한기가 덮쳐 자다 깬 날도 더러 있었다. 그런 날은 아내가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아내의 잠버릇은 이불을 걷어차거나 돌돌 말거나 둘 중 하나다. 돌돌 말고 자는 날은 평소보다 추운 날일 터였다. 내게도 한기를 막아주는 이불이 필요했다. 그래도 돌돌 말린 이불을 빼앗아 덮지 않았다. '오죽 추우면 저럴까…." 생각만 할 뿐이다. 다시 새우잠을 청하며 생각한다.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아내를 훨씬 사랑한다고 말이다. 고작 이불 양보하는 걸로? 한겨울, 이불 없이 잠들 수 있는 자만이 내게 돌을 던지라!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아내는 새벽형 인간이다. 평소 새벽 수영(6시 class)을 하다 보니 일찍 잠자리에 들곤 한다. 언젠가 말한 것처럼 우리 집의 다른 기능은 '빨래 공장'이다. 쉴 새 없이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간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한 아내가 "옵하(오빠), 먼저 잘 테니까 세탁기 다 돌면 건조기에 빨래 좀 넣어 돌려주세용." 할 때가 종종 있다. 30분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한 시간 넘도록 세탁기가 돌아갈 때가 있다. 저녁잠이 없는 편이지만 그런 날은 꼭 누가 최면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가볍게 그르릉거리며 곯아떨어진 아내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아, 나도 자고 싶은데….' TV를 켜놓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비몽사몽 헤맨다. 다음날 다시 돌리면 그만인데 아내가 부여한 '미션'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태어날 무렵, 회사에서 회식할 때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면 '아이들과 다시 와야지' 했다. 요즘에는 맛있는 식당이나 경치가 예쁜 곳에 가면 '아내와 다시 와야지' 한다. '무자식이 상팔자'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녀석들 행동하는 걸 보면 잘해줘 봤자 소용없다 싶긴 하다. 비단 그래서만은 이닐 테지만 확실히 아내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내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한 수 위인 것은 분명하다. 잠자리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 부부 관계를 잘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 언젠가 아내가 다음번에 침대 바꿀 때는 '트윈'으로 해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무조건 싫다고 우겼다. 아내가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려 뜬눈으로 밤을 새우더라도 한 침대에서 나란히 자고 싶다. 아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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