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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08. 2022

서바이벌 잉글리시 마스터,
수능 영어에 도전하다

영어도 문해력, 시험을 넘어 소통의 수단으로

 2023학년도 대입수학능력 '영어 영역'에 도전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었다. "영어 공부도 결국 문해력이야!" 이 한 마디 하려고 인내심을 발휘해 풀었는데 덜컥 85점을 받았다. 85점도 낮은 점수는 아니지만 지난해에 비하면 무려 5점이나 떨어졌다. 영어는 절대평가라 2등급 확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만점 받은 듣기 평가까지 한 문항 틀리는 실수를 범했다. 아이들한테 했던 잔소리가 이번에는 내 발목을 잡아챘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다."라는 말,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래도 굳이 변명하자면 '노안'을 대령해 무릎 꿇리고 싶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다운로드한 수능 영어 영역 문제를 A4에 출력했더니 글씨가 너무 작아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작은 글씨들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물론 국어 영역도 똑같이 A4에 출력했지만 상황이 달랐다. 모국어와 제2외국어의 차이는 화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지 않던가. 나중에 발견했지만 국어 영역에서도 괘씸한 노안에 당했더랬다. 그만 보기의 'ㄷ'을 'ㄴ'으로 잘못 본 것이다. 어쩐지 정답이 두 개 같더라니….


 출제 위원장에 따르면 올해 수능 영어 영역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약간 쉽게 출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9월 모의고사가 쉬워 오히려 수험생들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1등급(90점 이상) 학생 비율이 6.25%였다는데 올해는 이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9월 모의고사에서는 1등급이 무려 16.0%나 나왔다고 한다. 영어 영역을 풀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영어 역시 언어이고, 언어는 문해력이 바탕'이라는 점이었다. 문장을 해석하기만 해도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문제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 문제들은 국어 영역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이해(해석)를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풀 수 있었다. 게다가 지문 구석구석에 '변별력을 위한 덫'이 놓여 있으니 제한된 시간에 '직독직해'와 맥락 이해를 동시에 해내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터였다. 


 수능 영어 공부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어 지문을 많이 읽고 많이 풀어보는 수밖에 없다. 단어가 가진 다양한 뜻을 암기(이해)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직장인 서바이벌 잉글리시'의 수혜자로서 한 마디 보태자면 영어로 꿈꾸는 경지에 이르면 금상첨화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누구나 영어를 듣거나 말할 때 머릿속에서 '변환'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Apple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과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고 '사과'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모국어 수준에 준해 영어를 구사하게 된다. 그래서 사고 자체를 영어로 해야 한다. 영어로 생각하면 꿈도 영어로 꾸게 된다. 내가 그랬다. 물론 발음은 별개 문제지만 말이다. 영어 발표하려면 국문을 영문으로 바꾸고, 이를 통째로 암기했던 풋내기가 영어로 외국 임원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었던 건 매일매일 그들과 부딪치며 영어로 사고했기 때문이다. 변환 과정을 거치면 회의 중에 대화가 뚝뚝 끊겼다. 영어로 생각하지 않으면 회의도 업무도 진행할 수 없었다. 이것이 서바이벌 잉글리시의 내공이다. 밥줄이 걸리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는 법이다.   


 요즘은 신입사원 열에 예닐곱은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한다. 대부분 어학연수는 기본이고 해외에서 살다온 친구들도 제법 많다. 사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종착점이 '수능'인 건 좀 안타깝다. 영어도 언어인데 10년 동안 배워도 정작 외국인과 소통하는 능력은 어학연수나 영어학원처럼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 버리니 말이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면 수능은 매표소에 불과하다. 수능이 끝났다고 해도 이제 겨우 입구를 지나친 것뿐이다. 여전히 눈앞에 올라야 할 거대하고 험준한 봉우리가 남아 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 역시 수능을 풀지만, 고구마 열 개를 물도 마시지 않고 먹은 것처럼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가 얹혀 있는 기분이다. 어른들의 몫은 입구를 통과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등산로를 정비하고 중간중간 쉼터를 만들어 주는 게 되어야 한다. 등산이 싫으면 바다나 강을 탐색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 과연 우리 교육 현실은 어디쯤 있을까? 너무 뻔한 결론이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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