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을 세웠다
"신발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면,
신발 정리는 세계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세상은 당신을 신발 정리만 하는 심부름꾼으로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어라? 어디선가 본 듯한 말인데…' 싶으리라. 맞다. 세상의 온갖 지혜와 교훈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지하철 화장실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특히 소변기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본 격언이리라. 내 경우 장사가 어마어마하게 잘 되는 소문난 맛집 화장실에서 처음 마주했다.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으로 커다란 바위 하나가 덜컥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문장 자체만으로도 울림이 있었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에, 신발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은 '부조화' 때문에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켰을지도 모를 이 문장은 한큐 전철과 백화점, 그리고 여성으로만 구성된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설립해 천재 기업가라고 불린 '고바야시 이치조'가 한 말이다. 무척 일본스럽다 싶었는데 역시나. 1940년대 초반 일본 내각에서 상공 대신까지 지낸,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인물의 아포리즘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아내가 읽고 있던 <떡지순례 - 오늘도 인생 떡볶이를 찾아 떠날 거야>라는 책 덕분이었다. 저자(홍금표氏)는 전국의 모든 떡볶이를 먹어보겠다는 다짐으로 소규모 떡볶이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배달의 민족'에서 개최한 '떡볶이 마스터즈'에 참가해 1000: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을 차지한 '떡볶이 씬'에서 입지전적 인물이다. 떡볶이를 소재로 그 어렵다는 '출간'의 바늘구멍까지 통과했으니 가히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부를 만하다.
그렇다면 왜 아무 상관도 없는 떡볶이 책을 보고 고바야시 이치조의 말이 떠올랐을까? 사실 전혀 다른 이 두 분야를 이어주는 하나의 동사가 있었다. 바로 '미치다'이다. 신발 정리에 미치고, 떡볶이에 미치면 세상은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구나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사전에 '미치다'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1) 정신에 이상이 생겨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되다, 2) 관심을 보이는 정도가 정상적인 경우보다 지나치게 심하거나 비정상적으로 열중하다, 3) 상식에 지나치게 벗어난 행동을 하다 이상 세 가지로 말이다. 나에게 떠오른 '미치다'는 두 번째 의미에 가까울 테지만, 첫 번째와 세 번째 의미도 일부 담겨있다. 두 번째 의미만으로는 왠지 2% 부족하다. 미치려면 제대로 그리고 온전히 미쳐야 한다. 은근한 조롱이나 비웃음의 대상이던 오타쿠(덕후)는 이제 더 이상 음침한 골방에 틀어박혀 있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오롯이 미친 사람들이 '전문가'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유튜브 컨탠츠의 상당수도 이런 덕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곤충이나 해양 동물에 미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종이접기, 비행기 날리기, 요요, 레고에 미친 사람들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다. 일부는 창업으로 이어지고 엄청난 부를 손에 넣기도 한다. '고프로'를 만든 닉 우드먼은 서핑에 미친 자신을 촬영하기 위해 고성능 액션캠을 개발했다. 바야흐로 '덕후'의 시대다.
그래서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쓰면서도 아직 책을 내지 못한 이유를. 출간은 둘째 치고서라도 만족할만한 글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글쓰기에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고통받기 때문이다. '좋아요' 몇 개에 일희일비하고 정작 마음에 있는 말들을 쏟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서는 글쓰기가 재미있다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움베르트 에코가 '자기만족적인 작가들이 쓰는 글은 쇼핑 목록과 같다'라고 등 뒤에 비수를 꽂았는데도 말이다. 난 너무 제정신이었다.
새해 계획을 세웠다. 미치는 것이다. 그 대상이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상관없이 미쳐볼까 한다. 그저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완전하고 반듯하게 끝까지 미쳐볼 생각이다. 대충 미치면 미치지 않으니만 못하다. 완벽한 미침, 이것이 2023년 계획이자 소망이다. 여러분은 올해 초 세웠던 계획들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궁금하다. 꼭 이루리라는 다짐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만약 계획했던 일을 만족할 만큼 해내지 못했다면 여러분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어쩌면). 미쳐보고 싶지 않은가? 무언가를 미칠 만큼 좋아한다는 건 아직 우리에게 열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열정에도 한도가 있어 언젠가 다 소진해 버린다면 그게 내년이 된다고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정말 멋지게 태워버린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