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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10. 2022

20년 장기 프로젝트, 성장앨범

삶의 비타민 같은 활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 찍은 아이들 사진을 모아 달력과 성장앨범을 만든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워낙 사진을 많이 찍어 '베스트 컷' 정리에만 몇 주씩 걸렸다. 어렵진 않았지만 한 장 한 장 사진을 확인하는 건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퇴근하면 밤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눈이 빠져라 사진을 골랐다. 12월 31일을 넘겨 새해를 제야의 종소리가 아닌 사진 정리와 함께 맞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매해 만들다 보니 요령이 생겨 언제부터인지 여행이나 캠핑을 다녀오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길 때 아예 베스트 컷 폴더를 따로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 일상에서 찍은 사진도 월별로 베스트 컷 폴더를 따로 만들어 보관했다. 디지털 시대의 수혜인지 피해인지 그렇게 해도 사진이 많아 달력 2종(탁상용, 벽걸이용)과 두 아이 성장앨범을 만드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아내는 최종 결과물만 확인해 지난한 작업은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깊이 잠든 밤, 한 해를 정리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순간은 없었다. 지난 1년을 곱씹으며 추억 여행을 떠나는 건 몸(눈과 손)이 고달픈 자에게만 허락되는 보상이었다. 사진 속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 내 얼굴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익숙했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진 찍는 이벤트도 자꾸만 줄어들었다. 그나마 첫째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는 성장앨범을 만들면서 이 사진을 쓸지 저 사진을 쓸지 고민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사진 한 장이 귀했다. 마침 이 시기가 코로나라는 긴 터널과 겹쳐 여행이나 야외활동까지 대폭 줄어들어 아이들 사진은 희귀 우표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 어려서부터 아빠를 닮아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던 첫째 아이는 하도 많이 찍혀서 사진 찍는 걸 극도로 거부했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얻으려 애걸복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력과 성장앨범을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해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성장앨범 제작 중단 사태까지 벌어졌다. 달력은 아내 그림과 몇 장 있는 아이들 사진으로 겨우 완성했는데 성장앨범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베스트 컷은 고사하고 흐릿하게 나온 사진까지 동원해도 앨범 한 권 분량이 나오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V'자를 그리거나 새침데기 표정 짓던 그 시절 아이들이 그리웠다. 풍수지탄(風樹之歎), 효도를 다하지 못했는데 부모가 돌아가시어 효도할 수 없는 슬픔을 일컫는 말이다. 아이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데 아이들 역시 기다려주지 않는다. 풍수지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또한 몹시 애달프다.  


 아내가 새해 달력이 필요하다고 해 모처럼 올해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처럼 정리할 사진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두세 번 여행을 다녀오긴 했는데 아이들이 사진 촬영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으니 풍경 사진이나 꽃 사진만 풍성했다. 똑같은 바다를 왜 그리 많이 담았는지…. 그나마 아이들이 나온 사진들도 "내년 달력에 쓸 건데 넌 안 나와도 돼?", "성장앨범 안 만들어?"라며  반쯤 협박해 카메라 앞에 세웠기에 그다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게다가 공갈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는 녀석은 버텨 가족이 모두 나온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았다. 턱없이 부족한 사진을 씁쓸하게 쳐다보다 2년 치 사진을 묶어 성장앨범으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 싶었다. 중요한 건 사진의 '양'이 아니라 아이들의 순간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일 테니 말이다. 먼 훗날 "아, 이때는 코로나로 사진 찍을 일이 별로 없었구나."라고 회상하면 그것 자체로 역사가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 인생에 최초의 싸움과 벌로 기록된 '덤프트럭 대혈투' 사건>

 처음 성장앨범을 계획했을 때 적어도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만들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 기한이 이제 첫째 아이에게는 3년밖에 남지 않았다. 갈수록 사진 한 장 남기는 일은 어려울 터였다. 당장 첫째 아이는 공부 핑계, 친구 핑계로 가족 여행에 따라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여행의 '여'자나, 사진의 '사'자를 꺼내기가 어디 쉽겠는가. 그래서 작전을 좀 바꾸기로 했다. 카메라 렌즈를 일상으로 향하기로 말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사진도 좋지만, 그게 아이들 삶의 전부는 아닐 터였다. 지지고 볶는 일상, 아웅다웅 치고받는 형제도 소중한 삶의 일부일 테니 말이다. 20년 장기 프로젝트의 설계자로서 스무 권의 성장앨범이 아이들 삶에 비타민 같은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지친 어떤 날, 그저 펼쳐 보기만 해도 환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추억 저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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