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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Nov 29. 2022

형제가 처음 만나던 날

막 태어난 동생이 건넨 뜻밖의 선물  

 사자와 하이에나처럼 눈만 마주쳐도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세 살 터울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도 한때는 제법 우애 깊은 형제였다. 너무 까마득한 옛이야기라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분명 그런 호(好) 시절이 있었다. 까르륵까르륵 숨이 넘어갈 듯 재미있게 노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내가 청소나 식사 준비하느라 바쁠 때는 형이 동생에게 직접 분유나 이유식을 먹이기도 했다. 형은 동생에게 상냥하고 자상했다. 동생은 형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둘이 얼마나 잘 노는지 툭하면 이층 침대가 눈보라 휘몰아치는 히말라야로 변했다. 조난당한 동료(형)를 구하러 산악 전문가 주인공(동생)은 위험을 무릅썼다. 그런가 하면 그림책으로 근사한 집을 짓고 둘이 그 안에 나란히 누워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형이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피곤한 아빠를 억지로 눕히더니 어느새 의사와 간호사로 변한 형제가 장난감 메스를 손에 쥐고 환자의 생명을 위협, 아니 구하기도 했다.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처럼 '형제는 사이좋게 오래도록 행복했다"로 영원히 살 줄 알았다. 다른 집은 형제든 남매든 자매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운다는데 우리 집은 예외라서 다행이라 여겼다. 이 모든 게 형제가 처음 만난 날, 그러니까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날 아내와 내가 꾸민 '작은 연극' 덕분이었다.  

 사실 둘째 아이 예정일을 앞두고 고민이 좀 되기는 했다. 첫째 아이는 심성이 곱고 순했지만, 둘째가 태어나면 질투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부모(특히 엄마)를 나눠야 하는 동생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만도 아이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사실을 어디에선가 읽은 후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형이 본능적으로 동생을 좋아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마침 프랑스인 직장 보스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 둘 다 아들이었는데 그 집도 형제의 나이 차이가 우리와 같았다. 보스한테 고민을 털어놓으니 선뜻 프랑스식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부모님께 전수받았는데 열에 아홉은 효과를 봤다고 자신했다. 비법을 듣고 나니 정말 그럴싸했다. 게다가 따라 하기도 무척 쉬웠다. 두 아이가 처음 만나는 날, 막 태어난 동생이 형을 위해 선물을 가져왔다고 '착한 거짓말'하고 미리 준비한 선물을 형에게 전달하면 끝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아이는 막 태어난 동생을 아끼고 예뻐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형제가 처음 만나는 날, 둘째 아이 옆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첫째 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동생보다 선물에 먼저 눈이 갔다. 아내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선물이야. 형아 꺼래. 풀어 봐 어서." 하며 선물을 첫째 아이한테 건넸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첫째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둘러 포장을 풀어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로봇 캐릭터가 그려진 운동화였다. 엄마가 평소에 사주지 않는 캐릭터 운동화라 무척 마음에 든 눈치였다. 입이 귀에 걸린 첫째 아이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걱정하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첫째 아이는 동생을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맞이해 주었다. 어린 동생을 보살펴 주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기꺼이 손 내밀어 주었다. 낯선 사람이 동생에게 다가오면 앞장서 막았다. 오랫동안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 비로소 완성되었다. 두 조각으로 시작해 네 조각으로 완성되는 완벽한 퍼즐이었다. 


 선물에 유효 기간이 있었을까? 인간은 본디 선하게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첫째 아이가 로봇 캐릭터에 실증 낼 나이가 되면서 형제 사이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의좋은 형제'처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하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형제 사이도 '삼한사온' 겨울 날씨처럼 나흘 포근하면 사흘은 냉랭했다. 공부와 사생활(?)을 핑계로 함께 노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 인(人)'처럼 서로 의지하고 기대랬더니 '칼날 인(刃)'이 되어 서로를 위협했다. 아이들이 자라 더 이상 '착한 거짓말'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현실은 디즈니 만화와 달라서 해피 엔딩 따위는 없었다. 주위 어른들이 '고맘 때는 다 싸우면서 자란다', '철들면 바뀐다'라고 말하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재산(결국 돈) 때문에 혈육 간에 싸우는 집이 하나둘이던가. 


 며칠 전 둘째 아이한테 "내 귀엽고 착한 아이를 삼킨 너는 누구냐?"라고 물었더니 "아빠,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해. 내가 고등학교 가면 지금이 엄청 그리울걸." 하는 게 아니던가. 우문현답.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밖에. 도(道) 닦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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