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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24. 2022

새해 당신이 갖고 싶은 재능은?

책사공 <시크릿 게임>  "당신이 원하는 재능과 성격을 드립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 편향'과 믿는 것과 실제 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제거하려는 '인지부조화'라는 '재능' 덕분에 스스로 만든 튼튼한 동굴에 살기 때문이다. 먼 조상들에게는 이런 재능이 생존에 유리했을 터였다. 아니면 자손을 퍼뜨릴 만큼 매력적인 재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와 동시에 이기적인 유전자는 '후회'라는 재능도 선택했다. 집단생활을 영위해야 생존에 유리한 선조들에게 고질불통 외골수보다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행동 또한 필요할 터였다. 우리는 다양한, 때로는 서로 배치되는, 재능을 DNA에 각인시킨 채 진화했다. 전자(확증 편향과 인지부조화)에 기대어 사는 건 편하다. 후자(후회)를 발현시키려면 왠지 불편하다. '용기'라는 또 다른 재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그런 뇌에게 '용기'란 참 번거로운 재능이다. 왜 매번 새해 계획은 작심삼일로 끝나 버리는가. 뇌가 이전 생활을 안정적이고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새해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뇌를 괴롭혀야 한다. 내 뇌를 괴롭히라고, 그게 가능한가? 당연히 어렵다. 그래서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작심삼일. 


 '환생'이라는 소재로 엄청난 사랑을 받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뒤늦게 시청하고 있다.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어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가 반감되지만, 결말이 궁금해 최종회까지 시청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훤히 꿰뚫고 환생했으니 인생이 얼마나 쉬울까 싶었는데 고난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환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지금과는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이다. 나만 그런가, 나만 쓰레기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봤으리라(제발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누군가 툭 던진 한마디에 위로가 되는 날이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아닌 그 말이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워준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던가. 만약 누군가 내가 갖고 싶은 재능을 선물해 준다면? 당신은 그 재능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네책방 모임 '책사공'의 <시크릿 게임>은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평소 나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재능을 누군가에게 선물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마법 같은 상상력에서 말이다. 그리고 어제(23일) 고즈넉한 의왕의 '사각사각책방'에서 책사공 회원과 참가자들은 갖고 싶은 재능을 선물 받았다. 책은 보너스였다.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를 보낸 참가자는 '온전한 자유'라는 재능을 얻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5분 만에 뚝딱 식사 준비하기' 재능을 위해 사각사각 책방지기님은 전 재산(백만 원)을 올인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인지도 모르게 바쁜 나날을 보냈던 한 참가자는 모임 자체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지는 산장 같은 분위기의 책방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시크릿 게임>을 위해 여섯 책방지기가 준비한 재능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어떤 재능을 갖고 싶을지 고민했지만, 사실 스스로 필요한 재능일지도 몰랐다. 내가 그랬다. 

공동체 정신

절제의 미덕

기업가 정신

귀 기울여 듣기

내가 되는 글쓰기

내 편 만드는 말하기

10대를 이해하는 능력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능력

제대로 나랄 사랑하는 법

마음을 정의하는 법

할 수 있다는 믿음

온전한 자유

가족과의 소통

내면의 편안함

스스로 행복해지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기

5분 만에 뚝딱 식사 준비하기

 <시크릿 게임>은 '경매'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재능이 하나씩 소개될 때마다 참가자는 지급된 100만 원 내에서 갖고 싶은 재능에 베팅했다. 최고 금액을 제시한 참가자는 해당 재능과 함께 '비밀책'을 선물 받았다. '내 편 만드는 말하기' 재능이 꼭 필요했던 터라 30만 원을 제시해 낙찰받았고, 비밀책으로 이금이 작가(아나운서)의 '우리, 편하게 말해요'를 선물 받았다. 경쟁이 치열했던 '마음의 편안함' 재능은 혈투 끝에 50만에 낙찰되었고 류대성 작가의 '질문하는 삶'이 주어졌다. 이런다고 재능이 생기겠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가자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재능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신나게 웃고 즐겼다. 재능을 정말 얻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다가올 새해를 힘차게 시작할 에너지를 충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책'이라는 매개체가 있어 즐거움이 두 배였다. 각 재능마다 어떤 책이 선물로 주어질지 다들 궁금해했다. 책이 소개될 때마다 감탄사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마음도 따뜻하다. 


 한 참가자가 <시크릿 게임>에서 얻은 재능으로 2023년은 용기 내 살아보겠다는 소감을 밝혔을 때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은 역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구나 실감했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장난처럼 느껴질 책방 행사에서 한 해를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니 가슴에 쿵 하고 묵직한 바위가 내려앉은 듯했다. 아무리 센 척해도 사람은 누군가의 위로가, 격려가 필요한 존재였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 사소한 그 행동이 생명을 살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행사에 참여하느라 깜빡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드렸다. "애들이랑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엄마도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했다. 올해 들어 가장 춥다던 12월 밤이 왠지 그리 춥지 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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