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선은 넘지 마오>

프롤로그(Prologue)

by 조이홍

2023년 새해, 날파리 한 마리도 어쩌지 못하는 20대 앳된 아가씨에서 무적의 바퀴벌레를 물티슈 한 장으로 거침없이 압사시키는 '절대자'로 흑화한 한 여성의 스펙터클하고 감동적인 서사를 담은 서간문(書簡文), <님아, 그 선은 넘지 마오>를 연재합니다. '님'은 한 집안의 절대 지배자인 아내를 의미합니다. 수영과 마라톤으로 단련된 코어를 자랑하며 대장 위에 '병장'이라는 제대 말년 포스를 풀풀 풍기는 절대자님은 평소 입버릇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칩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엄격함과 가혹함에 필적할만한 '내마리곧법'을 앞세우며 스스로 세운 원칙을 백성에게 강요하되 자신은 적용받지 않는 국회의원 면책 특권에 버금가는 전능함을 보여줍니다.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는 백성들은 그저 절대자님을 받드는 신민일 뿐입니다.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은 없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법입니다. 절대자님의 불가침권과 치외 법권도 백성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계몽됨에 따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시작은 아주 미비했습니다. 절대자님이 하해와 같은 마음을 품고 친히 몸을 작동하시어 정성스레 만든 '요리'에 손을 대지 않는 백성이 하나둘 늘어난 것입니다. 신라 고승으로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사상을 중심으로 불교 대중화에 힘쓰며 수많은 저술을 통해 불교 사상 발전에 크게 기여한 원효대사께서는 잠결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으나,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좋은 재료가 많이 들어갔는데 신기하게도(혼잣말), "아무 맛이 나지 않으니 맛이 없다고 대답할 뿐입니다"라고 굳이 정직하게 말해 절대자님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절대자님은 신(臣)을 바라보시었고, 신은 가졸(家卒)로서 백성들에게 '착한 거짓말'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망극하옵게도 절대자님도 백성도 아무 맛이 나지 않아 손대지 않던 그 음식은 모두 신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다이어트 책을 여러 권 독파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커다란 바위에 생채기를 만드는 것처럼 이런 일들이 하나둘 늘어나자 드디어 백성들도 절대자님의 전능함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불경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신하 된 자로서 도리일진대 백성들의 키와 몸무게가 이제 신을 능가하니 마냥 틀어막을 수만은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신은 절대자님을 받들되 백성들의 안위도 보살펴야 할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에 조선시대 선비들이 상소로 임금의 마땅한 도리를 깨닫게 하듯이 우국충정을 담아 절대자님에게 편지를 띄우려고 합니다. 일찍이 김훈 선생님은 <하얼빈>에서 이토의 작동을 막아 동아시아의 평화를 되찾으려는 인간 안중근의 고뇌를 그렸습니다. 신의 간절함이 그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님아, 그 선은 넘지 마오>에서 집안의 안녕과 평화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진심입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음식이 질렸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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