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단어만으로 소설이 될까?

출사표, '열 단어 소설'을 시작하며…

by 조이홍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너무 바빠서 숏폼이나 5분 순삭은 시청해도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엄지족을 위해 아주 짧은 소설을 썼더랬다. 손바닥만 한 분량 안에 소설의 3요소 인물, 사건, 배경을 담았다. 반전의 반전, 열린 결말로 읽는 재미를 더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한뼘 소설'이 탄생했다. 2분 만에 읽고 1분 동안 내용을 곱씹어보라는 의미에서 '3분 소설', 스마트폰으로 보기에 적합해 '스마트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초단편 소설'을 쓰는 김동식 작가처럼 유명해지지 않은 걸 보면 결국 혼자서만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 극소수이지만 몇 분의 독자가 생긴 게 소득이라면 소득. "왜 요즘은 한뼘 소설 안 써요? 너무 재미있던데."라고 말씀해 주는 독자도 있었다. 한뼘 소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초단편 소설처럼 한뼘 소설 역시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로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하기에 특이한 설정을 할 때가 많다. SF 장르가 많은 이유이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설명해야 하는데 한뼘 소설은 그럴 만한 지면이 없다. 단어 몇 개, 몇 문장만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 사회를 그리더라도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상생해야 한다. 설득력이 부족하면 독자는 언제라도 등을 돌린다. 아직 키보드 워리어를 만나지 못한 건 행운이었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미래, 인공지능이 지배할 미래, 메타버스 안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인류 등을 이야기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지만 결국 '인간다움'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클리셰라도 그것이 '소설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한뼘 소설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이미 몇 차례 밝혔지만,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소설 덕분이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친구들과 여섯 단어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내기한 헤밍웨이는 냅킨에 세상에서 가장 짧고 유명한 소설을 완성했다. 헤밍웨이 승!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고작 여섯 단어의 조합에 감동을 받을까? 개인적으로는 왜 울컥했을까. 직관적으로 우리는 아기 신발이 왜 새것인지 눈치챌 수 있다. 어떤 이는 문장을 읽는 순간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손가락 두 마디밖에 안 되는 새하얀 아기 산발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꼬물거리는 아기의 투명에 가까운 손발이 떠올랐을지도…. 좋은 글이란 이렇게 분량(길이)에 상관없이 독자로 하여금 심상(감각 기관에 대한 자극 없이 의식 속에 떠오르는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헤밍웨이의 이 소설은 단지 여섯 단어의 조합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상상력 속에서 장편소설 못지않은 서사를 갖춘 이야기로 재탄생했던 것이다. 독자를 웃고 울리기에 문장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장르도 중요하지 않다. 단, 그 독자가 배경지식과 감정이 충만할수록 유리하다.


먼 길을 에둘러 돌아왔다. 새해 목표를 정하며, 흔하디 흔한 다이어트와 함께 한뼘 소설을 리부팅하고, 기획했던 장편 소설을 시작해야지 다짐했는데 그 사이사이에 '열 단어 소설(가칭)'을 써보기로 했다. 정확히는 열 단어 이하로 된 문장을 쓴다는 게 적절하겠다(문장 부호는 포함되지 않는다). 혼자만 쓰지 않고 '열 단어 소설 백일장'이나 '열 단어 소설 낭독의 밤' 같은 이벤트도 브런치 동료 작가님들과 진행해 볼 계획이다. 물론 아직은 이면지 위에 연필로 쓱쓱 그린 구상 단계일 뿐이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해볼 작정이다. 당장 헤밍웨이처럼 멋지게 쓰지 못하더라도 쓰고 또 쓰다 보면, 함께 쓰다 보면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언젠가 꿈에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문장을 썼다. 내 꿈이니 내 마음대로겠지만, 어찌나 문장이 완벽한지 내가 써넣고도 연신 감탄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메모지에 옮기려고 했는데 그 짧은 순간 까먹어 몇 날 며칠을 애태웠더랬다. 그런 문장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 새해 소망 중 하나이다. 결국 쓰는 길밖에는 없고, 쓰는 사람이 곧 작가 아니겠는가.




거창하게 출사표를 던져두고 정작 '열 단어 소설'을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 터, 첫 작품을 소개해 볼까 한다. 비겁하지만 다소 쉬운 길을 택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문장을 시각화하고 그 이미지를 배경지식에 버무려 한 편의 소설로 상상할 수 있는 숙련된 독자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여보, 현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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