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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교환의 법칙

by 조이홍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하다 가위가 손바닥을 그었다. 플라스틱 음료수 병에서 라벨을 떼려다 일어난 작은 사고였다. 웬만하면 좀 잘 떼어지도록 만들지,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지구를 생각하지 않는 기업의 불성실함에 쓴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딱 가위가 지나간 자리만큼 빨간 줄이 생겼다. 그래 내 피는 여전히 붉은색이었구나, 덕분에 내 혈관에 흐르는 핏빛을 확인했다. 지구를 위해 흘리는 피라 그런지 아깝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동네책방에서 '위스키 클래스'를 진행했다. PT 자료를 50장이나 만들었다. 줄이고 또 줄였는데도 이만큼이나 되었다. 글라스를 장만하고 '테이스팅 맵'까지 준비했다. 거의 모든 게 완벽했다. 시음을 진행하려 술을 개봉하는데 '주석실링'에 그만 손바닥을 베었다. 꽤 깊이 들어갔는지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수없이 개봉했던 술인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전문가답지 못했다. 그래도 나여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물리고 내가 다쳐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루 차이로 벌어진 일이었다. 왼손잡이의 왼손이 거덜났다. 덕지덕지 반창고를 붙여야 하니 번거로웠다. 이제 나이 들어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았다. 그래도 서럽지는 않았다. 몸의 상처는 잘 아물지 않지만, 마음은 더 단단해졌으니 말이다. 이런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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