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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가치를 가진 이웃 나라?

by 조이홍

대통령 3.1절 기념사가 논란이다. 지난 이틀 동안,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언론과 여론은 갑론을박 중이다. 한편에서는 '미래'로 나가자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따져 묻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제의 국권 침탈을 정당화하는 역사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직 대통령께서 쓴 책들을 읽어 보니 대통령은 참 어려운 자리인 듯하다. 말 한마디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하니 말이다. 백 번 양보해서 다른 행사였다면 모를까, 3.1절 기념식에서 해야 할 말인가 싶었다. 존경하는 두 전직 대통령도 가끔 지지자들 견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다. 어떻게 매번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나라님 자리란 묻고 따져야 할 사항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더구나 국제 관계(외교)에서라면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그래, 대통령은 참 어려운 자리지. 가슴속에 부처님과 예수님 두 분을 함께 모셔 놓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런데 해명 과정 중에 나온 말은 해도 해도 너무 하다 싶었다.


'보편적 가치를 가진 이웃 나라와 연대하고 협력해 번영의 미래를 가져오는 것이 3·1 운동의 정신'이란다. 일본(정부)이 보편적 가치를 가진 나라였던가, 현재 일본 정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단 말인가.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면 진작에 피해자 분들께 무릎 꿇고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어디 이뿐인가. 주요 정치인사들이 해마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약 2백4십7만 명의 군인 및 전쟁을 수행한 이들의 명부를 합사 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다'라는 뜻을 가진 바로 그 야스쿠니에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사상적 스승이자 일본 제국주의사상의 밑거름이 된 '요시다 쇼인' 봉인되었다. 요시다 쇼인은 에도 막부 말기에 쌓였던 여러 가지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서구 열강에 대적할만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한론(征韓論)'이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삼한정벌설(三韓征伐說)'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조선 침략에는 '한반도는 원래 자신들의 땅'이었다는 속내가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삼한정벌설은 전설에 지나지 않는 터무니없는 야사일 뿐이다.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을 신으로 모신 야스쿠니 신사에 천황조차 가지 않는데, 해마다 일본 유력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을 정말 보편적 가치를 가진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가.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할아버지는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 전쟁을 발발시킨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총리) 내각에서 상공 대신을 지내고 패전과 함께 A급 전범 용의자로 복역했던 '기시 노부스케'다. 전후 석방되어 총리직까지 오른 그의 평생 꿈은 평화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해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것이었다. 아베 전 총리가 집권 2기에 얼마나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 노력했는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뉴스가 수두룩하다. 현 기시다 내각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이들이 군대를 가지려고, 무력을 가지려고 애쓴다. 일본 국민들조차 찬반이 갈리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를 밀어붙이려는 일본 정부의 시커먼 속내를 보편적 가치를 지닌 사람으로서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 적어도 일본이 아시아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 무장하려는 것은 아닐 터였다. 일본이 단순히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미래를 위해 구슬리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다.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인간도 지혜롭지만은 않은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와 협력해 번영의 미래를 가져오는 것이 3.1 운동의 정신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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