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조금 불편했다.
끼니는 거르는 시대는 아니었다. 아버지 월급날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통닭 한 마리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다리는 언제나 남자들(아버지와 아들) 차지였다. 어머니는 튀김옷 말고는 딱히 먹을 것도 없는 앙상한 목 부위만 드시고도, "목이 얼마나 맛있는데, 벌써 배부르다!" 혼잣말하셨다. 어머니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닭다리는 어린아이가 이겨내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시장 어귀에 있던 허름한 분식집에서 좋아하는 떡볶이도 사 먹었더랬다. 늘 모자랐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아쉬워도 참을만했다.
잊으려고 마음먹으면 잊히는 가난이었다.
5녀 1남, 막내라 가끔 언니들(결혼 전까지 누나라는 말이 어색했다. '언니들' 사이에서 자랐으니 언니라 부르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옷을 물려 입었다. 그래도 속옷(팬티)은 너무하다 싶었다. 리본 달린 분홍색 팬티를 입은 날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버텼더랬다. 가난과 어깨동무하고 온 결핍은 '상상력'이라는 근사한 선물을 주었지만, 이에 상응하는 부작용도 남겨놓았다.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었다.
불편해도 그럭저럭 참을만했지만 더러 견딜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여자 팬티가 그중 하나였다. 누가 보는 건 아니지만 그걸 입고 학교 가는 건 명랑 만화 주인공이라도 할 수 없을 터였다. 가장 늦게 등교하다 보니 늘 마른 수건이 부족했다. 아니, 수건 자체가 가족 규모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욕실이란 건 텔레비전에서나 봤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 겨울에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마당에서 머리 감고 세수했다. 이미 젖을 대로 젖은 차가운 수건을 살에 대면 하얗게 닭살이 돋았다. 비 오늘 날도 너무 싫었다. 내 몫으로 돌아오는 우산은 언제나 맛이 간, 우산대가 부러지거나 찢긴 녀석들뿐이었다. 가랑비 정도는 그냥 맞는 편이 나았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다고 학교 가기 싫은 날 여자 팬티와 젖은 수건이 아침부터 반갑게 인사했다. 억수 같이 퍼붓는 비도 늦어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삼단 콤보는 감당할 수 없었다.
물욕이 없는 편이다.
탐욕을 늘 경계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정직하게 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런데도 욕심내는 물건은 있다. 바로 속옷, 수건, 우산 3종 세트다. 서랍장에 팬티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욕실 수납장에 수건이 빼곡하게 차있고, 우산꽂이에 길고 곧은, 우산대가 온전한 우산들이 한 다스는 꽂혀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정작 삼분의 일도 사용하지 않지만, 빈자리가 보이면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결핍의 부작용이었다.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는데 욕실 수납장에 가득 찬 수건을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고작 수건 정도에 말이다. 결핍의 진짜 부작용은 이런 거였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비밀 금고에 무기명 채권과 현금 다발이 가득하고, 비자금 통장에 0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야 행복한 거 아닐까. 고작 수건 정도가, 팬티 정도가, 우산 정도가 넉넉해서 무엇에 쓰려고. 결국 필요한 건 언제나 하나뿐인데 말이다. 씁쓸했다. 기울어지다 못해 직각에 가까워진 운동장에서 뭐 하러 탐욕을 경계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했을까. 별 노력하지 않고도, 수십수백 억을 버는 사람이 지천에 널렸는데 말이다. 정작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애쓰는 분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늘 쪼들려 사는데. 아버지처럼 말이다.
4학년 때 공부와 관련해 한 마디도 없던 아버지가 별안간 이런 말을 꺼내셨다.
"경찰 해라. 아버지는 못했지만, 넌 할 수 있을 거야. 조금 굽히면 할 수 있을 거야." 아버지는 남이 듣기 좋은 말도, 보기 좋은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당신의 신념대로, 원칙대로 행동하셨다. 당신은 못했지만, 아들은 적당히 타협해 편하게 살라고 당부하신 거였다. 에둘러 말해도 행간을 읽지 못한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당부는 끝내 지키지 못했다.
"저도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 닮았잖아요."
DNA는, 이기적 유전자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조금 불편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수납장에 팬티와 수건이 가득한 것에 만족하기로, 멀쩡한 우산들에 흐뭇해하기로, 욕심은 딱 거기까지만 부리는 걸로. 정직하기로. 결핍이 준 상처까지 끌어안고 살기로 했다. 본디 사람이란 모든 걸 누릴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다 가지려고, 더 가지려고 혈안이 된다. 작은 것에 만족해도 행복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